문희상 "집권 3년차 되면 독단 빠져..국회 뜻, 국민 뜻으로 읽어야"

안병수 2019. 1. 3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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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집 인터뷰] 정치권, 대통령에 기대지 말아야 / 文대통령엔 "국회 존중"공개 경고 / 北, 경제 절박.. 비핵화 실현 확신 / 김정은 답방 이후 남북 국회회담
“지금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잖아. 민주주의의 요체가 뭐냐면 국민의 뜻과 국회의 뜻은 등가라는 거야. 다 나아가서 투표를 못하니까 대표를 뽑아 그들(국회의원)이 법을 만드는 거야, 그게 국회야. 국회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고 읽어야 돼. 대통령한테 주문하는 거야.” 문희상 국회의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국회를 무시하면 안 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 주문’을 보냈다. 대의제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회의 뜻이야말로 국민의 뜻이라며 문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더 존중해 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여야 정치권의 협치를 통한 국회개혁과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정부의 향후 과제 등을 역설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노무현정부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집권여당 위기 때마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와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문재인정부를 향해서도 애정 어린 쓴소리를 거침없이 던질 수 있는 이유다. 문 의장은 물론 여야 정치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개헌이든 선거제 개혁이든 국회가 입법할 수 있고, 국회 할 일만 하면 된다”며 “국회는 누굴 탓할 일 아니다. 왜 대통령한테만 미느냐”고 일침했다. 문 의장을 지난 28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만났다. 그의 언변은 수치와 사자성어 등을 섞어 거침없었고, 내용은 공자에서 마키아벨리, 막스 베버까지 종횡으로 내달렸다.

―2월 말로 예정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어떻게 보는가.

“만절필동(萬折必東·결국은 본뜻대로 됨)이라는 말처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어쩔 수 없이 한반도 평화 레일 위에 오를 수밖에 없고, 경제 제1주의를 좇을 것이다. 북한의 절박함을 알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너무 나가는 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호랑이 눈을 뜨고 주변을 주도면밀하게 살피면서 가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고 한다. 이 또한 바른 시각이다. 대비되는 시각인데, 두 개의 시각을 같이 유지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잘될 것 같은가) 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국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일단 2차 북미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란 전제를 깔겠다. 그 뒤엔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도 성사될 것으로 보고, 답방 전후로 국회회담도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이전의 국회회담이 남북관계 해빙의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풀린 관계를 촉진하고 지원한다는 의미다.”

―협치를 내세웠지만, 협치가 아직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협치라는 게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하듯이 단번에 이룰 수 없다. 협치가 실패했다는 일각의 지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우리 정치문화는 이분법적으로 뿌리가 깊어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모든 대화는 만남에서 시작하고, 협치의 출발도 만남이다. 그간 여야 5선 이상 중진의원 모임인 ‘이금회’와 5당 대표 회담인 ‘초월회’, 원내대표회동 등에서 여야를 끊임없이 만났고 소기의 성과도 냈다. 지난해 11월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합의사항을 12개나 발표했고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만드는 등 이전보다 협치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무엇보다 협치는 20대 국회의 숙명이다. 원내 1당인 민주당조차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야 간 연대가 불가피하다. 물론 여야 정쟁에 휘말려 대통령과 정부가 할 일을 못한다면 이 점도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문 의장은 지난해 7월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며 당선인사에서 “대화와 타협, 협치를 통한 국정운영은 제20대 국회의 태생적 숙명”이라며 “후반기 국회 2년은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될 것”을 약속했다.

―‘실력국회’를 강조해 왔는데, 20대 하반기 국회를 평가하면.

“일단 20대 국회 전반기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일을 해냈다. 대통령 탄핵이다. 이런 민주주의 정신을 잇고 제도화할 책임이 후반기에 있었지만 하나도 안 됐다. 낯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국회 개혁의 원칙은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폐지했고, 국회혁신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인사·예산·조직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라고도 했다. 외교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회외교활동자문위원회를 마련해 국회의원의 외유성 출장 논란이 원천 차단되도록 했다. 또한 ‘소위원회 활성화 및 정례화’ 법안을 운영위에 제안했다. 예전에는 싸우지 말라고 ‘동물 국회’라 놀렸더니, 지금은 일은 안 하는 ‘식물국회’, 심부름만 하는 ‘심부름국회’가 됐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선거제 개혁 논의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했지만, 지금 앞이 캄캄한 것 같은데.

“원래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선거제 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촛불민심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제 개혁의 대원칙은 득표수에 비례하는 의석수다. 현행 선거제도는 실제 얻는 표심을 왜곡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승자가 독식했던 지난 두 번의 지방선거 결과는 현재의 정당 지지율에 얽매여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보여주는 증거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선관위의 안도 있어서 이를 구체화할 방안을 정치개혁 특위에서 논의 중이다. 의원정수를 유지하면서도 비례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한 건 아니라고 본다. 국회가 합의를 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면, 예산을 동결해 10% 정도 증원하는 방안도 어떨까 한다. 한국의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2015년 기준·현재 37개국) 중 네 번째로 많다.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문재인정부가 임기 3년차를 맞는다.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에 전 세계 일곱 번째로 가입하는 등 성취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실력을 보여줘야 개혁 동력이 유지될 수 있다. 한국은 과거 단기간에 걸쳐 근대화,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압축 성장했다.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 시점에서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주도면밀한 예측과 상황 분석으로 체질개선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경제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불황을 겪는 때에 조바심을 내선 곤란하다. 호시우행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했는데,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은 어떻게 문 대통령을 모셔야 하는가.

“한마디로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된다. 그게 참 힘들다. 임기 3년차가 되면, 민심에 따르겠다고 하지만 다 독단에 빠진다. 총기가 흐려지는 게 아니라 너무 일방적인 보고만 받으니까. 대통령 입맛에 맞는 보고가 올라오고 정보를 독점하기 때문에 판단이 착오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레임덕으로 자동으로 가게 된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법대로 하세요’라고 한다. 법이 강조되면 공안정치로 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역사랑 대화하겠다’고 한다. 그게 뭐냐면 국민의 뜻을 외면하겠다는 것이다.”

―‘문희상 정치’를 설명하면.

“나는 이제 정치 인생 종착역에 왔다. 공교롭게도 오늘(28일)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강연 100주년이라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막스 베버는 좋은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균형감각, 그리고 책임감, 세 가지를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는 책임감을 꼽았다. 100년 전에도 정치인이라면 동기가 옳았어도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책임을 지라고 했다. 새겨들어야 한다. 내 정치의 요체도 세 가지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신뢰), 화이부동(和而不同·공정한 자세), 선공후사(先公後私·공익 우선)다. 이를 후배들이 이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945년 경기도 의정부 출생(74) △서울대 법학과 졸업△제14·16·17·18·19·20대 국회의원 △김대중정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국정원 기조실장 △노무현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열린우리당 의장△국회의장

대담=김용출 정치부장
정리=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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