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판결문' 보니..'둘리 진술' 결정타, 재판부의 단정적 판단도
[경향신문]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댓글조작 혐의로 김경수 경남지사(52)에게 실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31일 살펴보면, 재판부는 ‘둘리’ 우모씨의 진술, 댓글 알바 관련 언론 보도 후 김 지사가 보인 행동을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부 대목에선 개연성만으로 단정적인 판단을 하기도 했다.
■‘둘리’ 우모씨 진술이 결정적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김 지사를 유죄로 판단하는 근거로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의 진술, 김씨 사무실에서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시연했다는 2016년 11월9일 컴퓨터 로그 기록, 김 지사와 김씨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내용을 제시했다. ‘둘리’(경제적 공진화 모임의 ID명) 우씨 진술은 결정적이었다. 우씨는 김씨에게 직접 킹크랩을 시연했고, 김씨가 킹크랩 개발에 관해 이야기하자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했다. 시연에 사용한 휴대폰이 ‘LG 옵티머스 뷰2’ 모델이었다고도 했는데 재판부는 “이러한 진술은 (수사로) 시연 날짜와 로그 내역이 확인되기도 전에 이뤄진 것”이라며 “사후에 밝혀진 객관적인 로그 내역과도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매우 신빙성이 높다”고 했다.
댓글 알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삭제한 김 지사의 행동도 재판부가 유죄 쪽으로 기우는 데 작용한 근거였다. 김 지사는 2018년 2월21일 김씨와 만나기로 했으나, 같은 달 9일 약속을 미뤘다. 재판부는 약속 연기가 2월6일 댓글 알바 관련 보도 때문이라고 봤다. 이 보도는 김씨 일당의 댓글조작을 직접적으로 다룬 내용은 아니었지만 재판부는 “기사를 보고 김 지사가 곧바로 그게 드루킹의 댓글조작이라는 점을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씨는 김 지사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비밀대화방을 캡처했다. 이때 캡처에 댓글조작 관련 내용이 기재된 ‘온라인 정보보고’ 전송 내역 등이 남아 재판에서 고스란히 증거로 인정됐다.
김 지사는 이후 김씨가 왜 비밀대화방을 삭제했느냐고 묻자 보좌관을 통해 “휴대폰을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만약 당시까지 댓글조작을 전혀 알지 못했다면 단순히 텔레그램을 삭제하거나 면담 약속을 연기할 게 아니라 적어도 김씨에게 댓글조작을 했는지 등을 확인해보는 게 자연스럽다”며 “김 지사도 댓글조작이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고 했다.
■답변 안 했는데 댓글조작 인식?
눈에 띄는 의문점들도 있다. 재판부가 김씨 진술을 지나치게 신뢰한 부분이 나온다. 온라인 정보보고만 해도 그렇다. 텔레그램 기록 등으로 전송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은 2017년 1월6일~3월13일 등 일부이고, 그 외에는 전송했다는 김씨 진술이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2017년 5월1일 전략회의팀 채팅방에 김씨가 ‘정보보고에 대한 김경수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이는 김 지사의 반응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내용”이라고 했다. 김씨가 일당들에게 영향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올렸을 가능성은 배제했다.
2016년 말 보고서를 보내면서 ‘정보보고를 보내드립니다’라는 김씨 메시지에 김 지사가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은 데 대해서도 재판부는 “김 지사가 김씨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같은 판단은 김씨의 정보보고 전송에 대해 김 지사가 특별한 답변을 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나온다. 재판부는 “정보보고는 댓글조작 상황에 관한 내용으로써 상당히 민감한 내용에 해당하는데도 김 지사가 김씨에게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고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하지도 않는 등 아무런 반응을 않고 있는 점은 김 지사의 (댓글조작에 대한) 인식을 뒷받침하는 사정”이라고 했다. 김 지사의 수동적 반응이 되레 김 지사가 댓글조작을 알았다는 근거가 된 것이다.
김 지사와 김씨의 ‘공모관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2017년 1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포럼 기조연설문 전에 김 지사가 김씨로부터 ‘재벌개혁 계획보고’ 문건을 전달받고, 이후에 김씨에게 경공모 회원들의 반응을 물었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문건이 기조연설문에 반영됐다고 봤다. 재벌개혁은 김씨 일당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던 과제였지만, 재판부는 “경공모가 단순한 지지세력이 아니라 비선 조직이 될 것임을 자처하면서 문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돕겠다는 점을 김 지사에게 분명히 표명했다”며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라고 강조했다.
■항소심서 ‘무죄 뒤집기’ 가능할까
김 지사는 이날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에서는 김씨 일당 진술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 일당의 상당수가 김 지사의 댓글조작 지시와 승인에 대해 “김씨에게 전해들었다”고 진술한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1심에서 김 지사 측은 이 같은 진술은 진술자가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게 아니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김 지사가 실제로 지시 또는 승인을 했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진술증거로는 증거능력이 없지만, 김씨가 김 지사로부터 지시 또는 승인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간접사실에 관한 정황증거로써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정농단 재판에서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놓고 공방한 것과 유사하다. 이들 재판에서도 피고인들은 해당 업무수첩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적었을 뿐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1·2심,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모두 증거능력을 인정했고, 집행유예로 석방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만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김 지사 측이 항소심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대 김씨 일당의 조직적인 진술 짜맞추기를 입증한다면 이 진술들의 신빙성은 무너진다.
댓글조작이 사실이라고 해도 형법상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도 있다. 포털사이트의 댓글은 이용자가 추천한 순으로 자동 정렬되기 때문에 방해의 대상인 ‘순위 산정 업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댓글조작으로 포털사이트 업체가 장애를 겪을 우려가 있는지도 불명확하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재판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며 “드루킹에 대한 유죄 판결은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에 조종을 울렸다”고 썼다.
이혜리·정대연 기자 i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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