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형 일자리' '구미형 일자리'도 만든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차가 31일 '반값 임금' '임·단협 유예'를 골자로 하는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을 맺고 2021년부터 광주에서 신설 자동차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다. 계획대로 협약이 진행되면 1998년 르노삼성 부산 공장 이후 23년 만에 생기는 국내 자동차 공장이 되며, 새로운 노사 상생 일자리 모델이 될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광주에 이어 자동차 부품 관련 군산형 일자리, 전자 부문의 구미형 일자리 등 '○○형 일자리' 모델을 잇따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협약식에 참석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식인데 입춘(立春)과 설을 앞두고 국민께 희망을 드리게 돼 매우 기쁘다"고 했다. 이어 "광주형 일자리는 혁신적 포용 국가로 가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적정 임금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했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새 일자리 1만개
'반값 임금'과 '임단협 유예'가 핵심인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면 그동안 고임금·강성 노조에 발목 잡혔던 한국 자동차 산업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직원 1000여명을 직접 고용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주 44시간 근로에 연봉 3500만원을 받는다. 광주시가 지원하는 주거·의료·교육 등 약 700만원 상당의 복지 지원도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현대차의 평균 연봉은 9000만원에 달해 '반값 임금'으로 표현되지만, 광주시 제조업 평균 임금(2000만원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괜찮은 일자리'다. 광주시 입장에선 부품·물류 등 간접 고용 효과까지 따지면 1만여명의 추가 고용 효과가 나는 사업이다.
◇성공하려면 세 가지 숙제 풀어야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려면 ▲사업성 확보 ▲민주노총 반발 극복 ▲부족한 자본 유치 등 세 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가 최대 주주(지분 21%)인 사실상 시영(市營) 공장이다. 2대 주주(지분 19%)인 현대차는 자본금 530억원만 투자하고 이 공장에서 생산만 위탁하게 된다. 현대차는 "주주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할 뿐 경영진 파견 등 직접 경영 관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광주시가 능력 있는 경영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광주 공장이 연간 7만대를 생산하기로 한 경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미지수다. 경차(배기량 1000㏄ 이하)의 국내 수요는 2012년 20만대에서 지난해 13만대까지 줄었다.
민주노총의 반발도 문제다. 광주형 일자리는 설립 초기 '노사상생협의회'에서 임금·근로 조건을 결정하고, 누적 생산 35만대까지 이 결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무노조 상태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원 과반수가 노조를 결성하면 협상 대표권을 갖게 되고, 민주노총에 가입한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날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기본권을 무시한 재벌과의 뒷거래"라며 투쟁을 예고했고, 현대차노조 간부 600여명은 이날 파업을 벌였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 간 신뢰 등을 전제로 한 모델"이라며 "신뢰가 무너지면 공장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당장 급한 것은 남은 자본 유치다. 광주시는 남은 자본금 1680억원과 차입금 4200억원을 끌어와야 한다. 광주시는 상반기 내 투자 유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지만, 자동차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차입금 4200억원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리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도 예전처럼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로 '묻지 마 대출'을 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를 올 상반기 내에 다른 두세 지역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제2, 3의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노사민정(勞使民政)이 임금, 근로조건, 지역 경제 비전 등에 대타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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