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의회 사태 배후가 청와대라고요?

2019. 2. 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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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의원 2명 제명으로 한국당 색깔은 더 강해져
"청, 김태우 논란 덮으려 예천군의회 사태 키워" 소문 돌아
거짓 해명과 모르쇠로 버티다 커진 사태 문제 핵심 외면
지난달 11일 경북 예천군 예천군의회 앞에서 몇몇 주민들이 공무국외여행을 가서 추태를 부린 예천군의원들을 대신해 국민들에게 사죄의 108배를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설연휴가 시작됐지만 경북 예천군은 설 분위기가 잘 나지 않습니다. 예천군의원들의 공무국외여행 중 추태 사건으로 인구가 5만명 밖에 되지 않는 예천군은 뒤숭숭합니다. 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천군의회 주변은 지역 이장협의회와 농민회, 한국농업경영인 예천군엽합회 등이 걸어놓은 의원 전원 사퇴 요구 펼침막이 가득합니다. 예천군 농산물이 판매가 줄어 주민들은 울상입니다. 지난달 31일에는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최교일(57) 의원이 2016년 미국에서 스트립바에 갔다는 의혹까지 나왔습니다. 여러 악재가 겹친 예천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지난 한 달 간 예천군의회 사태는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예천군의원들은 지난해 12월 20~29일 7박10일 일정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공무국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3일 종합일간지와 방송사에서 박종철(54) 의원이 국외여행에서 현지 여행 가이드를 폭행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경북 북부 지역언론에서도 조금씩 보도가 나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언론의 확인 취재에 폭행 사실을 부인하던 박 의원은 지난달 4일 부의장직에서만 물러났습니다.

지난달 15일 경북 예천군 예천군의회 의장실에 주민들의 항의글이 가득 붙어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박 의원의 가이드 폭행 의혹으로 시작된 예천군의회 사태는 지난달 8일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박 의원에게 폭행당한 가이드가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권도식(61) 의원이 자신에게 여성 접대부를 요구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또 <안동문화방송>도 이날 박 의원의 폭행 장면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날부터 예천군의회 누리집 게시판에는 4천건이 넘는 비판글이 쇄도했습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형식(54) 의장은 지난달 9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 의원을 제명하고 나도 의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의원 전원 사퇴 요구 목소리가 커지자 예천군의회는 지난달 21일 제225회 제1차 본회의를 열어 박 의원과 권 의원, 이 의장 등 3명을 징계하기로 하고 윤리특별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예천군의회는 이날 윤리특별위를 구성하면서 신향순(62) 의원을 새 부의장으로 선출하는 것은 빼먹지 않았습니다. 징계 대상 의원 3명을 뺀 6명 의원으로 구성된 윤리특별위는 지난달 30일 제3차 회의를 열어 의원 3명을 모두 제명하기로 의결했습니다. 하지만 예천군의회는 지난달 30일 제2차 본회의를 열어 무소속인 박 의원과 권 의원의 제명안만 가결하고, 자유한국당 소속인 이 의장의 제명안은 부결했습니다. 애초 무소속이었던 권 의원의 제명으로 예천군의회는 자유한국당 색채가 더 강해졌습니다.

지난달 21일 경북 예천군 예천군의회 김은수 의원 사무실 문에 주민들의 항의글이 가득 붙어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의원 2명을 제명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주민들은 의원들이 애초부터 이 의장을 제명할 마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달래기 위해 윤리특위에서 ’쇼‘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은 의원들을 주민소환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만일 박 의원이나 권 의원이 제명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하면 지루한 법정 다툼이 이어집니다. 미국에서 가이드 쪽이 제기할 수백억원대 소송도 예천군과 예천군의회에는 부담입니다. 최교일 의원의 미국 스트립바 방문 의혹도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예천군의회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요즘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폭로한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등을 덮으려고 청와대가 예천군의회 사태를 키웠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한국당 성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일부 주민들은 실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다고 합니다.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등으로 조국 민정수석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것은 지난해 12월31일입니다. 예천군의회 사건이 보도 되기 시작됐을 땐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일부 주민들의 ‘믿음대로’ 청와대가 예천군의회 사건을 키웠다고 한다면 더 일찍 키웠을 것입니다. 예천군의회 사건을 키운 것은 청와대가 아니라 바로 예천군의원들이었습니다.

예천군은 경북에서도 정치적 다양성이 매우 없는 지역입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에서 당시 홍준표 후보는 경북에서 가장 많은 득표율(48.62%)을 얻었습니다.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예천 주민들은 5번째로 높은 59.23%의 표를 홍 후보에게 몰아줬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도 자유한국당 소속인 최교일 의원이고, 예천군수도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동 군수입니다. 예천군의 도의원 2명과 군의원 9명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거나 아니면 무소속입니다. 예천의 정치인들을 대신해 국민 앞에 사죄의 108배를 했던 예천 주민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언론을 탓하고 청와대를 배후라고 믿는 예천 주민들은 누구를 탓하기 앞서 자신들이 지금 어떤 예천을 만들어놨는지 되돌아봐야할 것입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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