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민 교수 "조카가 '당숙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2019. 2. 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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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란 무엇인가' 저자에게 듣는 '중년'
설 친척모임? 기존 권력관계 드러나는 자리
멘토와 꼰대 사이..'멋진 중년'은 형용모순
조언도 일종의 특권, 합당한 비용 지불할것
깜짝 놀랄 용돈도, 솔선수범 노력도 좋아
'무엇인가'란 무엇인가? 정체성 묻는 질문
플랭크·스쿼트와 함께 생각의 근육 키워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추석을 맞아서 모여든 친척들이 취직은 했는지, 결혼 계획은 있는지, 아기는 언제 나올 건지, 살은 언제 뺄 건지, 이런 것들을 물어오거든. 그들이 평소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언제 취직 할 건가' 질문을 하면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다' 그러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지난 가을에 경향신문에 실렸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의 일부를 제가 지금 읽어드렸습니다. SNS 등에서 워낙 화제가 되었던 글이다 보니까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오늘 김현정의 뉴스쇼 설 특집 2부에서는 이 칼럼의 주인공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를 초대했습니다. 오늘은요. '설이란 무엇인가' 이 얘기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새로운 무엇에 대한 질문도 던져보려고 해요. 설이면 어느 새인가 젊은이들에게,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 과연 '중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한번 던져보겠습니다. 김영민 교수와 인사 나누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 교수님.

◆ 김영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김영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김현정> 정치학 교수세요.

◆ 김영민> 그렇네요.

◇ 김현정> 정치학에서도 종류가 많잖아요, 세부 전공. 어떤 걸 하시는 겁니까?

◆ 김영민> 그렇죠. 그 안에서 정치사상 분야를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고요. 또 그 안에서는 동아시아 정치사상사(史)를 담당합니다.

◇ 김현정>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이름만 들어도 어렵네요.

◆ 김영민> 어려울 뿐만 아니라 되게 취직이랑 거리가 먼 것들의 결합이죠. 정치, 사상, 역사, 동아시아. 이것들이 다 먹고사는 일이랑 직결되지는 않지만, 그 모든 것들에 관심 있는 사람이 할 만한 전공입니다.

◇ 김현정> 그 모든 것들에 관심 있는....

◆ 김영민> 정치도 관심 있고, 사상도 관심 있고, 역사도 관심 있고. 그런 분들은 이런 걸 하면 되죠.

◇ 김현정> 잡다한 관심도 많으신 분이에요. 사실은 제가 그걸 칼럼을 보면서도 느꼈어요. 만화책, 디저트 이런 데도 일가견이 있으시다는 말씀도 들었고요.

◆ 김영민> 일가견까지는 아니고 다만 애정하고 즐기는 것들인데요. 영화 같은 경우는 예전에 만든 적도 있고.

◇ 김현정> 영화를 만드셨어요?

◆ 김영민> 네, 영화 만든 적이 있습니다.

◇ 김현정> 어디서 어떻게?

◆ 김영민> 독립영화판에서 만들고 실제로 영화제 출품한 적도 있는데요. 그런데 일종의 일종의 흑역사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건 밝히지 않습니다.

◇ 김현정> (웃음) 제목만 말씀해 주세요, 제목만.

◆ 김영민> 절대로 밝히지 않고요. 누구든 어려운 어두운 과거가 있죠. 그리고 신춘문예 이런 것 때문에 아마 일가견이라는 말을 하시는 거 같은데. 그렇지는 않고 그냥 제가 애정하는 분야고요. 만화책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만화책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면 에세이를 써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고. 아마 이번에 출판한 그 에세이집에도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이름의 꼭지가 있습니다. 디저트는 제가 여러 번 강조를 했어요. '달콤한 연대, 스위트 솔리더리티(sweet solidarity)'라고.

◇ 김현정> 아니, 어떻게 그런데 사실 정치학 교수시고. 그중에서도 그 어려운 사상사 이런 거라 책상에만 앉아 계시고, 어렵고 두꺼운 책만 보실 것 같은 분이 디저트, 만화책... 좀 안 어울려요.

◆ 김영민> 그런데 다들 그게 외부의 이미지일 뿐이잖아요. 김현정 PD도 밖에서 생각하면 굉장히 샤프하고 늘 정치,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미리 많이 프로를 준비할 것 같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현실은 좀 다르겠죠.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까. 저도 음악을 좋아하고 저도 영화 좋아하고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까. 자는 것도 좋아하고.

◆ 김영민> 뭔가 빈 구석도 있을 수 있고, 사람이.

◇ 김현정> 빈 구석 너무 많고. 그렇군요. 우리가 그러고 보니 선입견이라는 게 참 많아요.

◆ 김영민> 그렇습니다.

◇ 김현정>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럴 것이다'라는 것을 완전 깨주신 분이 김영민 교수예요. 저는 이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담긴 칼럼들. 사실 제가 제일 처음 만난 건 그 '추석이라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만났지만,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도 제목은 굉장히 무거운데 여기 실린 칼럼들을 쭉 들여다보면 내용들이 기발해요. '우선 새해에는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이 칼럼. 지금 오늘은 이제 설이기도 하고 하니까 저는 이 칼럼을 한번 골라 봤는데 말입니다. 잠깐 좀 읽어도 되겠습니까, 교수님?

◆ 김영민> 예.

◇ 김현정> 김영민 교수의 칼럼. 새해에는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있다'가 아니라 '없다'입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에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걸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이렇게 쓰셨어요. 아니, 분명히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셨을 거고...

◆ 김영민> 아니, 공부 얘기가 여기 왜... (웃음)

◇ 김현정> (웃음) 모범생이셨을 거고. 그러면 새해마다, 1월 1일 아침마다 한 해 계획 쭉 세우고 시간표 짜고 이러셨을 거 같은데. 너무 모순된 칼럼 아닙니까?

◆ 김영민> 일단 행복은 계획해서 되는 일은 절대 아닌 거 같고요. 대개 행복이란 돌이켜보니 행복했다, 이런 느낌으로 남는 게 중요한 거고. 행복 계획하면 긴장만 되고 그리고 대개 행복해지도 않고 그러니까 새해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김현정> 그럼 새해는 설은 어떻게 맞아야 좋은 거예요, 교수님? 새해를 맞는 자세 같은 거.

◆ 김영민> 저는 최대한 일상을 유지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부분의 명절에 대해서 크게 반기지 않는 이유는, 명절이 되면 갑자기 즐거워야 될 것 같고 기대 수위가 높아지는데 기대 수위 맞추기 어렵고. 그리고 늘 하던 재미있는 연속극이나 드라마들도 설 특집 방송한다고 안 하잖아요. 그런데 대개 하던 연속극보다 더 재미가 없습니다.

◇ 김현정> (웃음) 맞아요, 맞아요. 설특집이라고 맨날 성룡 나오는 영화 또 하고, 이소룡 나오고 이러니까.

◆ 김영민> 여러가지로 실망스럽고. 그래서 최대한 일상을 유지하는 게 저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평정심을 그냥 유지하자. 너무 축제일 거다라고 기대하지 말자'...그러면 오히려 더 외로워질 수도 있어요.

◆ 김영민> 기대 수위 맞추기 되게 어렵습니다.

◇ 김현정> 어려워요. 모두 다 축제일 거 같고 모두 다 행복한데 '나는 왜 안 그렇지?' 오히려 또 이렇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 의미인 거군요. '새해에는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는 칼럼 속 의미 들어봤고요. 여러분들에게 많이 알려진 칼럼 '추석이라 무엇인가' 이건 어떻게 쓰게 되셨어요?

◆ 김영민> 그때만 해도 시사 칼럼을 쓰던 시기라서. 그냥 그때 다가온 어떤 시절이나 상황에 맞춰서 글을 쓰게 되죠. 마침 또 추석이 왔길래 제가 그명절에 대해서는 인식을 재고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또 쓰게 된 거죠. 사실 추석에 대한 에세이로는 많이들 읽어 주시는 그 에세이가 처음으로 쓴 건 아니고, 추석에 대해서 세 번째 쓴 글이죠. 그래서 그 에세이 세 편을 다 책에 모아 놨는데요. 추석에 대한 제 집요한 관점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현정> 결국 그러면 '추석이란 무엇인가'가 '설이란 무엇인가'랑 마찬가지인 거네요, 통하는 거네요?

◆ 김영민> 크게 보면 명절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추석이나 명절이나 아까 말한 대로 느닷없이 즐거워져야 되는 그런 부담을 주면서, 동시에 대규모로 모였을 때는 기존의 권력 관계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런 현장이기도 하죠.

◇ 김현정> 여러분, 못 읽으신 분들을 위해서 제가 조금만 더 읽어 보겠습니다. 추석이라 무엇인가. 설이란 무엇인가 마찬가지예요.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취직은 했는지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나올 것인지 살은 언제 뺄 것인지 등등. 그러나 21세기의 냉정한 과학자가 느끼한 연애 편지를 쓰던 20세기 청년이 더 이상 아니듯이 당신도 과거의 당신이 아니며, 친척도 과거에 친척이 아니며, 가족도 옛날의 가족이 아니며, 추석도 과거의 추석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은 집어치워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해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을 하라. (중략) 거기에 대해서 '아니,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 하라.

이렇게 일부를 좀 발췌해 봤습니다. 저 이거 읽고 진짜 한참 웃었거든요. '나는 과연 이렇게 실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

◆ 김영민> 그런 질문을 가끔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정말 싸움 나는 거 아니냐.' '그것도 나름대로 선의 표현인데 그렇게 하면 되냐.' 그래서 책이 출간되고 나서 출판사한테 제가 제안을 했는데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사실은 포스트잇이나 마그넷 같은 걸 만들어서 정면에서 그런 질문하기 어려우면 조용히 옆에서 붙이거나, 그 사람 등 뒤에다 붙일 수 있게. 그래서 책이 좀 많이 팔린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은 일종의 '굿즈'라고 그러죠. 그래서 그 무엇인가 굿즈. 포스트잇, 마그넷 같은 거가 나오게 될 겁니다, 책이 충분히 많이 팔린다면. 그러면 정면으로 나서서 그런 질문하기 어려우신 분들은 당숙 옷깃 같은 데에다...

◇ 김현정> 끼워요? (웃음)

◆ 김영민> 붙이고. 냉장고 문 앞에다 붙여 놓고 그렇게 해도 됩니다.

◇ 김현정> 교수님은 정작 이런 질문을 받아보셨을 텐데 이럴 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앞에서?

◆ 김영민> 저는 그런 상황에 마주한 적은 없는데 저는 제가 만약에 당숙의 입장이 된다면 그런 상황까지 안 몰릴 거 같습니다.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당숙의 입장이 된다면?

◆ 김영민>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 김현정> 누군가의 당숙이 될 수 있죠.

◆ 김영민> 그런 경우에는 그런 질문 안 할 것 같고요.

◇ 김현정> '안 할 거다'?

◆ 김영민> 심지어 제 조카나 친척 아이가 그런 질문을 저한테 던지더라도 저한테는 다 대비가 되어 있습니다.

◇ 김현정> 어떻게 대비? 어떻게 하실 건데요?

◆ 김영민>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만약에 저한테 묻는다면, 저는 상당히 거액의 용돈을 주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용돈을 주면 조카가 아마 웃을 겁니다. 웃음이 번지겠죠? 그럼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아니면 조카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든 '눈물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상당한 재원을 투자하면 주도권이 당숙한테 넘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원을 투자하지 않고 그냥 '결혼 언제 할 거냐' 뭐 이런 거 묻기만 하니까 더 반발을 사겠죠?

◇ 김현정> 베풀지는 않고.

◆ 김영민> 그렇죠. 베풀어야 되는데.

◇ 김현정> 용돈 한 번 안 주면서.

◆ 김영민> 천문학적 액수의 용돈을 주면서 '너 취직 언제 할 거니' 그러면 아마 기꺼이 받아들일 겁니다. 어른은 베풀어야 되는 위치죠.

◇ 김현정> 베풀지 않고 잔소리만 하는 것은 잔소리로만 들린다. 그러면 이 추석이라 무엇인가, 당숙이란 무엇인가,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걸 던진 후에 교수님 이 칼럼 때문에 'OO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방식, 패러디가 유행어처럼 굉장히 유행을 했어요. '남편이란 무엇인가', '출근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교수님 직접 들어보신 것도 있으세요?

◆ 김영민> 이 책 나온 다음에 서평 중에 어떤 서평에서 '김영민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쓰신 서평이 있었어요.

◇ 김현정> 이 책에 대한 서평?

◆ 김영민> 네, 그래서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 김현정> 뭐라고 썼던가요, 그분이 칼럼니스트가?

◆ 김영민> 그러니까 그런 질문으로 서평을 마무리 하더라고요. 마무리 하는 멘트가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나름 중독성이 있나 싶었죠.

◇ 김현정> 중독성 있어요. 우리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번 비틀어서 고민해 보게 하는 이런 재미가 있는데. 또 어떤 질문을 'OO란 무엇인가.' 뭐 받아 보셨어요, 또?

◆ 김영민> 그게 거의 유일합니다. 제 앞에서...

◇ 김현정> 그럼 제가 한번 던져보겠습니다, 교수님.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 김영민> 결혼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요.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 김현정> 제가 이 질문 드린 이유가 있죠. 사실은요. 김영민 교수가 주례 자주 서신다면서요?

◆ 김영민> 자주는 아니지만 학생들 중에 간혹 굳이 저한테 와서 주례를 꼭 부탁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 해 줄 걸 알면서도 굳이 찾아오는 데는 또 각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 가끔 서게 됩니다.

◇ 김현정> 저희 뉴스쇼 제작진 중에 김영민 교수가 주례를 서신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이 있어요. 그 결혼식장에서 김영민 교수의 주례를 듣는 순간 '기발하다, 재미있다'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주례사가 칼럼이 되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그걸 읽었습니다. 저도 한참 웃고 한참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재미있었거든요. 교수님, 사실은 새해 많이 하는 다짐 중 하나가, 젊은이들 특히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분들은 결혼이란 것에 대해서 새해 시작하면 생각들은 하잖아요.

◆ 김영민> 그런다고들 그러더군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 김현정>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웃음) 그래서 오늘 이 설 아침에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주례사가 콱콱 가슴에 와 박히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김영민 교수가 쓴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칼럼이자 주례사 한번 제가 조금 읽어 보겠습니다. 실제 결혼식에서 하신 거죠?

◆ 김영민>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 일부 읽어드립니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고운 마음씨겠죠. 그러나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청취해 본 결과 고운 마음씨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얼굴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얼굴로 인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부부싸움의 와중에도 상대가 잘생겨 보이면 저절로 화가 누그러진다고 합니다. 화목하게 지내다가도 상대가 못생겨 보이면 저절로 화가 나서 싸우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굴이란 가정의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입니까. 결혼 생활을 하다가 느닷없이 배우자가 화를 내면 십중팔구 당신이 못생겨서입니다. 다른 이유로 화를 내려다가도 상대가 잘생겼으면 화를 참았을 테니, 결국 배우자가 화를 내는 건 당신이 못생겨서입니다.

저 여기까지 읽고 나서 일단 너무 웃었고. 진짜 너무 잘생긴 사람하고 살면 이럴 수도 있는 건가? 뭐 경험을 해 봤어야 알지? 이런 생각도 했고.(웃음) 이게 지금 무슨 이야기인 건가요, 외모 지상주의이신 거예요?

◆ 김영민> 경험을 못 하셨습니까? (웃음)

◇ 김현정> 공감은 안 되더라고요, 왠지 모르겠지만.

◆ 김영민> 그런데 보통 사회에서 요구되는 그런 외모를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누구나 본인이 분명 좋아할 만한 외모는 있고. 그리고 어떤 심미적으로 상당히 가치 있는 대상을 만났을 때 통증 완화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통이든 치통이든 굉장한 통증에 시달릴 때 아름다운 거 보는 거, 이게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거든요. 삶이라는 게 사실은 고통의 연속인데 주변에 심미적으로 향수할 만한 대상이 있으면 꼭 미술품이 아니더라도 통증을 좀 완화할 수 있겠죠.

◇ 김현정> 일단은 그게 꼭 우리가 말하는 남자면 장동건, 여자면 김태희. 이렇게 생긴 게 아니더라도.

◆ 김영민> 저는 사실은 그런 심미안에 관해서는 꽤 다른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히 글에도 썼지만 얼굴이 깃든 좋은 빛 이런 거가 있습니다.

◇ 김현정> 여러분 시작은 이렇게 됐는데요. 결국 하시고 싶었던 말씀은 뒤에 있잖아요, 뒤에. 이 칼럼의 뒤에 보면 그렇다고 '모두가 장동건처럼 생긴 사람하고 결혼하면 좋고 김태희처럼 생긴 사람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겠다' 이런 의미라기보다는. 얼굴에서 빛이 나야 한다. 그 빛이 후천적인 얼굴을 완성한다. 빛이 나는 사람을 상대를 기분 좋게 해 준다. 빛이 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건강해야 되고.

◆ 김영민> 영양 상태가 좋아야죠.

◇ 김현정> 서로 기분이 좋아야 되고.

◆ 김영민> 사회의 근로기준법이 잘 적용돼야 영양 상태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저녁이 있는 삶이 돼야 되고.

◆ 김영민>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런 결혼 생활을 하십시오'라는 게...

◆ 김영민> 꼭 하겠거든. 제 주례사의 큰 제목이 '기어이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을 위함'이라는 게 있죠. 그러니까 결혼이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리고 인류 전체 역사를 봐도 결혼이 보편화되었던 시절은 굉장히 짧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결혼이라는 게 보편적인 행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소수들의 사치재로 전락할 가능성도 굉장히 많고.

◇ 김현정> 여기서 오늘 주제랑은 상관없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네요. 이거는 역사도 공부하시고 사상사도 공부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실 수 있는 말씀 같은데 우리 인류 역사에서 봤을 때 결혼이란 제도가 있었던 게 짧아요?

◆ 김영민> 대부분 결혼이라는 건 귀족들을 위한 일이었고요. 사회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대충 같이 살았죠. 그게 이제 천천히 보편화되다가 어떤 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거의 해야 되는 거처럼 생각하지만.

◇ 김현정> 다들 짝지어서 살기는 했잖아요?

◆ 김영민> 그것과 결혼은 다르죠. 결혼은 사회적인 제도니까 그건 다른 얘기입니다.

◇ 김현정> 같이 그냥 살면서 자식 낳고 하는게 아니라, 제대로 결혼이라는 어떤 계약 같은 걸 하는 건 다르다?


◆ 김영민> 사회적인 제도로서 결혼을 말하는 거죠. 결혼이라는 것이 사실 좀 그런 것이고. 앞으로도 그럼 제도를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사회 전 구성원이라고는 저는 생각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동거라면 동거, 여러 가지 형식의 어떤 군집 생활의 모델이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명도 우리가 사실 만약에 점점 늘어서 만약에 150년을 살게 된다고 하면, 특정 시기에 잘 맞았던 상대와 100년 넘는 세월 동안 계속 잘 맞나. 20대 때 잘 맞았던 상대가 120살 때 최적의 상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거 알 수 없죠. 여러 가지 저는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여러분 지금 혹시 배우자와 함께 라디오를 듣고 계시면 너무 크게 끄덕끄덕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웃음)

◆ 김영민> 각 시기마다 최적의 인물이 따로 있죠.

◇ 김현정> 끄덕끄덕이 되네요, 그런데 사실은.

◆ 김영민> 결혼을 경험하신 분들은 일정 정도 공감하시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적령기라고 하는 그 무렵에 만나서 말이 통하던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거니까.

◆ 김영민> 그 시기에는 최적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죠. 그렇지만 10-20년 뒤까지는 모르겠지만 100년 뒤에도 꼭 그럴까요? 그거 알 수 없는 노릇이죠. 여러 가지 조건이 바뀌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네요. 수명이 길어지고 경제적인 것도 그렇고 또 가치관도 바뀌고 하면서 이 결혼이란 제도 자체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는 말씀.

◆ 김영민> 그럼요.

◇ 김현정> 재미있네요. 서울대학교 김영민 교수. 교수님 지금 '추석, 설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가지고 '새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까지 왔는데. 갑자기 던지고 싶은 질문 하나. 조금 말장난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김영민 교수는 답을 주실 것 같아요.

◆ 김영민> 못 줄 것 같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웃음)

◇ 김현정> '무엇인가'란 무엇입니까?

◆ 김영민> 대개 '무엇인가'라는 게 제가 말하는 맥락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인데요. 사람에 관련해서는 자기를 무엇하고 동일시할 건가라는 질문이랑 관계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과 자신이 스스로를 동일시할 것인가. 말이 어렵지만 보통 우리가 축구 경기할 때 대한민국이 지면 흥분하고 그런 이유는 자기가 대한민국이라는 대상과 동일시하기 때문이죠. 자기가 그 동일시를 안 한다면 그런 감정적인 격동도 생기지 않겠죠.

◇ 김현정> 지든 말든 이기든 말든.

◆ 김영민>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거. 무엇을 자신의 일부로서 동일시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이랑 동일시할 테고 어떤 사람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랑 동일시할 수도 있고. 하여튼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 자기가 함께하고 싶은 대상을 고르는 과정이죠. 그런 면에서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기가 어떤 사람으로 무엇과 동일시하면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그러네요. 나는 그럼 뭔가...?

◆ 김영민> CBS랑 혹시 동일시하나요?

◇ 김현정> 방송과 동일시를 저는 하고 있던 게 아닐까?

◆ 김영민> 아, 가족보다는?

◇ 김현정> 아니, 왜 가족 사이를 이간질하세요? (웃음) 물론 가족도 중요하지만, 그건 누구나 비슷하니까. 가족과 자신과의 동일시 뭐 이런 건 비슷하니까. 그거 빼고는 일이 아니었나. 저는 그런 생각이...

◆ 김영민> 많은 사람들이 자식과 동일시하기도 하고, 배우자랑 동일시하는 경우는 그보다는 작은 거 같고, 훨씬. (웃음) 일하고 동일시하는 사람은 더 작고. 그러니까 이제 자신이 무엇과 동일시하는 사람인가.

◇ 김현정> 교수님은 어떠세요? 뭐하고 동일시 스스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 김영민> 동일시하는 게 있는데 비밀입니다. 대외비입니다.

◇ 김현정> 비밀이 너무 많으세요. 만화입니까?

◆ 김영민> 대외비입니다.(웃음)

◇ 김현정> (웃음) 비밀 많은 김영민 교수와 함께. 오늘 자꾸 화두를 던져주시는 게 참 좋네요.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거리를 계속 던져주고 계시는데. 사실 오늘 주제는 '중년이란 무엇인가'였어요. 사실 중년의 사전상의 정의를 들여다보니까 중년의 정의는 놀랍게도 '40대 안팎의 나이'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40대 안팎이면 그러면은 30대 후반도 중년이란 얘기, 사전상으로는. 딱 보고는 너무 젊은 거 아닌가. 이게 중년인가? 이런 생각이 들던데. 어때요?

◆ 김영민> 상당히 게으른 정의로 보이는데 여기 핵심은 안팎을 어떻게 볼 것이냐겠죠, 40 안팎. 그런데 중년은 중세처럼 우리 역사 구분할 때 중세 시기를 얘기하잖아요. 이게 1000년이 넘는 시기를 '중세'하고 하거든요. 대개 한 5세기부터 시작해서 15세기 넘어까지. 그런데 1000년이 넘는 시간이 과연 하나의 '중세'라는 말로 포괄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시기는 절대 아니겠죠, 그렇게나 긴 시간을. 중년이라 그래 놓고 지금 심지어 그렇게 30대 후반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저희가 만약에 이제 앞으로 지금 태어나는 세대는 150살 살 텐데 110살까지 중년이라고 부르게 되면 이게. 그러니까 중년이라는 건 어떻게 얘기할 수 없는 아주 막연한 개념이 되어가고 수명의 연장과 더불어서. 그래서 마치 유럽 사회 중세와도 같은 개념이다...

◇ 김현정> 그러면, 그러면 언제쯤을 중년이라고, 그러니까 어떤 시그널을 가지고 중년이라고 느끼게 될까요?

◆ 김영민> 저는 그건 나이로 결정될 수 있는 건 아니고, 사회에서 그렇게 불러줄 때 중년이 되는... 왜 시도 그런 시 있지 않습니까. 김춘수 시인의 '꽃'도 있고 대머리라고 패러디할 수도 있죠. '상대가 저를 대머리라고 불러주지 않았을 때는 하나의 두피에 지나지 않았다. 니가 나를 대머리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대머리가 되었다.' 이건 모발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의미가 있죠.

마찬가지로 중년도 그 사회에서 어떻게 어느 시기부터 어느 시기까지 중년으로 부를 것인가. 그런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경제적인 요소, 사회적인 요소, 정치적인 요소가 있겠죠. 중년에게 가장 많은 상품을 거기다 팔 수 있으면 중년의 범위를 넓힐 테고. 그러니까 굉장히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개념이라고 봐야죠.

◇ 김현정> 교수님은 실례지만 지금 중년이십니까?

◆ 김영민> 모르겠습니다. 저를 보고 중년이라 불러주는 사람이 얼마냐에 따라 다른데 아무도 '저를 중년이다' 부르진 않는데. 가끔 가다 '철이 덜 들었다'는 이런 얘기를 가족들한테 듣기는 하는데. 그래서 모르겠습니다, 제가 중년인지 아닌지.

◇ 김현정> 사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숫자. 숫자로는 중년이시잖아요, 숫자로는. 그렇죠?

◆ 김영민>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면 그렇겠죠.

◇ 김현정> 아까 그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중년이세요.

◆ 김영민> 정신은 훨씬 늙었을 수도 있고, 내장은 더 늙었을지 모르지만.

◇ 김현정> 맞아요. 중년이에요. 저도 뭐 그 사전적인 의미에 의하면 중년인데. 스스로 느끼기에는 저는 중년 같지 않거든요. 저 아직 청년 같거든요. 교수님 그렇지 않으세요?

◆ 김영민> 뭐 제가 느끼는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 김현정> 저는 그런데 사회적인 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데요. 자기가 느끼는 게 훨씬 중요하지 않나요?

◆ 김영민> 저도 사회적으로 결정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는 생각하죠.

◇ 김현정> 그렇죠. 누구나 일단 내가 중년인가, 혹은 나는 중년 같지 않은데 남들이 자꾸 중년이라 그래서 좀 우울하신 분들이 있다면 일단은 그건 다...

◆ 김영민> 우울해할 필요는 없죠.

◇ 김현정> 그렇죠. 마음이 청년이면 언제나 청년일 수 있는 거고.

◆ 김영민> 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웃음)

◇ 김현정> 그러면 일단 그걸 떠나서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그 중년. 중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근심 걱정이 좀 많아진 건 사실인 거 같아요. 중년, 40대 들어서면서, 저 같은 경우는. 젊은 시절에 명절이면 듣던 질문. '결혼은 언제 하니, 남자친구 있니.' 결혼하고 나서는 '애는 언제 낳니', 하나 낳고 나니까 '둘째는 언제 낳니' 이런 것들을 다 들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설에 친척들 모이면 누군가한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더라고요. 그제서야 '아, 나 나이 들었구나. 흔히들 말하는 중년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그런 생각이...

◆ 김영민> 저하고는 좀 반대네요.

◇ 김현정> 어떠신데요?

◆ 김영민> 그런 식으로 중년을 생각한다면 저는 중년에서 청년이 되어 가는 중이라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결혼이 필요하고 결혼을 언제 할 거냐 이런 건 오히려 제가 옛날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은데, 해가 갈수록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도대체 결혼할 필요가 있나, 애를 낳을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이 나이 먹을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저는 청년이 돼가는 건데요, 그런 식이라면.

◇ 김현정> 그럼 혹시 친척들 쭉 만났는데 젊은이가 자꾸 '남자친구가 없어서, 여자친구가 없어서 어떻게 사귀어야 되나.' 뭐 이런 얘기하면은 '굳이 왜 사귀어야 돼, 왜 결혼해야 돼?' 이렇게 오히려 말리세요?

◆ 김영민> 그거 꼭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얘기하고요. 꼭 하겠다면 뭐 팁을 줄 수도 있다. 뭐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굳이 하겠다면, 꼭 하겠다면 그걸.

◇ 김현정> 아니, 진짜 이분은 뭐 흔히들 말하는 꼰대하고는 아주 거리가 머시네요, 우리 교수님은.

◆ 김영민> 그런가요. 하여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김현정>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흔히들 요즘 말하는 그 '꼰대'. 좋은 용어는 사실 아니고 은어인데 워낙워낙 요즘은 많이 쓰이고 있어서 이 이야기를 잠깐 좀 풀어보겠습니다. 꼰대. 요새 그런 말을 젊은이들이 아주 많이 쓴다는 거 알고 계시죠, 대학에 계시니까.

◆ 김영민> 네.

◇ 김현정> 굉장히 싫어하죠. 꼰대라는 것에 대해서?

◆ 김영민> 네. 그런데 그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이건 제가 들은 얘기인데. 저희 학교 학생 하나가 학장실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는데. 학생회 간부였다고 그러든가. 서로 얘기를 하는데 학교 일로 서로 싸우게 됐나 봐요, 언쟁이 오가는데. 굉장히 흥미롭게 제가 들었던 얘기는 (학생이 학장에게)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이렇게.

◇ 김현정> '아, 저를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학장님!' (웃음)

◆ 김영민> 네. 그래서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이제. (웃음) 어디 학교 밖이 아니라 여기는 직업적으로 가르치는 데인데.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한다는 게 놀랍다, 흥미롭다. 학교에서도 이런 얘기가 이제 나오는구나.

◇ 김현정> 교사, 교수는 가르치는 게 직업인데.

◆ 김영민> 네. 그 사람의 직업인데.

◇ 김현정> 스승한테 가르치지 말라고.

◆ 김영민>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이런 말이 학교에서 나온다는 게. 아,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김현정> 그럼 왜 이렇게 젊은이들이, 요즘의 젊은이들은 꼰대라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 자신에게 가르치려 든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까요?

◆ 김영민> 저도 그런데, 누가 가르치려 들면 그게 거부감이 드는 건 저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러면 예전에는 다 그냥 너무 고분고분해서 그랬던 걸까요. 예전에는 우리는 다 어른이 얘기하시면 다 일단은 수긍했죠, 다.

◆ 김영민> 참았겠죠. 그런데 누가 뭘 가르치려 든다면 가르친 사람이 아무래도 우위에 있게 되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아래에 있게 되니까 일종의 권력관계가 발생하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에. 가르치겠다는 사람도 왜 굳이 그런 부담을 감수하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가르치는 사람도 사실은 상당히 심리적인 부담이 있거든요.

◇ 김현정> 일단 저는 아이들한테 뭘 가르쳐요. '이건 이렇게 해라, 이건 이러면 안 돼. 어른 보면 인사해.'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집 사는 어른 만났을 때 아이가 인사를 안 하면 바로 저는 고개를...

◆ 김영민> 목을 꺾으시는군요. (웃음)

◇ 김현정> (웃음) 이거 안 가르쳐주면 얘가 어디서 이걸 배우나. 예의 없는 아이가 될 텐데 이런 생각들 하는 건데. 그럼 애가 싫어하죠. 그럼 이거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그럼 바른 것인가.

◆ 김영민> 그건 유아교육의 차원에서는 다른 경우가 있을 텐데, 저 같은 경우에는 주로 상대하는 게 대학생들이니까. 대학생쯤 되면 저는 그렇게 일부러 가르칠 건 아니고. 여러 가지 사례들이나 경우의 수를 일종의 참고 체계, 레퍼런스로 알려주는 게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 경우의 수를 알려주고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기를... 그렇게 해서 본인이 판단을 잘못해서 뭐 망가지면 본인이 책임이죠.

◇ 김현정> 여러분이 지금 흥미롭게도 듣고 계실 거예요. 이게 자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뭐 우리가 주변에서 대하는 후배에 대하는 얘기들, 직장에서의 어떤 동료인데 나이 어린 동료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고. 다 적용들이 되실 텐데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꼰대가 아닌 멘토가 될 것인가. 젊은이들에게,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혹은 후배에게, 동료에게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멋있는 중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답을 좀 찾아봤으면 좋겠는데.

◆ 김영민> 그런데 멋있는 중년 이거 형용모순 같은 거예요. (웃음)

◇ 김현정> (웃음) 그런데 교수님, 조금 전에 자녀교육 얘기했잖아요. 자녀들에게 내가 꼰대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얘기했었는데. 갑자기 드는 질문이 최근에 화제가 된 드라마 '스카이캐슬' 보셨어요?

◆ 김영민> 다는 못 받고요. 뒷부분은 좀 봤습니다.

◇ 김현정> 여기를 보면 우리나라 이른바 최상위 클래스라고 불리는 그 사람들의 세계. 그래서 아이들을 그야말로 '학종 괴물'처럼 키워가는, 다시 자신들의 그 클래스에 넣기 위해서 괴물처럼 키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데. 수년째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고 계시니까 여쭤봐요. 혹시 그런 괴물 같은 학생은 못 보셨어요?

◆ 김영민>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게 최상위 계층이라고는 저는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거기는 아등바등해서 어떻게든 좋은 직업을 마련해 줘서 계속 특정한 지위를 누리게 하려는 건데, 진짜 최상위층은 아마 거대한 자산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아이를 들볶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차상위 계층 쯤 되는 사람들인거 같고요.

◇ 김현정> 최상위지만 그 안에서 단계를 나눈다면 차상위일 거다.

◆ 김영민> 좀 아래에 해당하는 사람들, 자신의 노동을 갖다가 계속 자본으로 바꿔야 되는 사람들. 그 계층의 얘기라고 해야지 아마 정확할 것 같고요.

◇ 김현정> 그러네요.

◆ 김영민> 그런데 그런 괴물 같은 모습들, 거기 충분히 괴물 같다고 할 만한 모습들이 많이 나오는데. 저는 각 계층마다 그 나름의 불행과 행복이 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계층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괴물같이 불행하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아주 최악으로 그리는 건 사람들이 그런 걸 보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겠죠. 저 사람들은 좀 저렇게 더 불행하게 그려지는 게 보고 싶다. 그런데 그 톨스토이의 소설에도 있듯이 다 각 계층 각자들은 그 고유의 행복과 불행과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그 계층은 그 계층의 몫의 불행이 있을 뿐이지, 특별히 그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괴물처럼 더 불행할 거라고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 김현정> 그건 또 새로운 시각이네요.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가 저런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불행해야 돼'라는 그런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건 아닌 것인가.

◆ 김영민> 글쎄, 뭐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잘 모르죠. 그 사람들의 심리가 안 돼 봤으니까 그건 알 수 없는데. 어떤 면에서 행복과 불행은 공평한 면이 있어서 그 사람들도 적당한 불행과 적당한 행복 속에서 일상을 뒹굴며 살겠죠, 그 사람들도.

◇ 김현정> 아니, 말씀하시는 거 하나하나가 다 철학이에요. 다시 한 번. 한 번에 이해가 안 되고 다시 한 번 자기 전에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은 그런 답들을 주고 계시는데. 이야기를 다시 그러면 우리 중년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꼰대와 멘토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 중년들이 멋진 중년이 되자. 꼰대가 되지 말자' 이 얘기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좀 멋있게 나이 드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교수님?

◆ 김영민> 나이 드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건강도 나빠지고 제정신 유지하기도 어렵고 그런데. 멋진 중년까지 바라기는, 그건 욕심이 너무 심한 것 같고 적당히 민폐나 끼치지 않고 조용히 늙어가는 것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젊은 세대한테 굳이 그렇게 잘 보이겠다, 그것도 너무 힘든 과제니까 늙어가는데 부담이 될 것 같으니까 일부러 그렇게까지 하실 건 없을 것 같고.

◇ 김현정> 너무 노력... 하여튼 모든 걸 너무 애쓰지는 말라는 말씀이시네요.

◆ 김영민> 힘들어 죽겠는데 뭐 그렇게 아랫세대한테...그런데 아랫세대를 괴롭히지는 말아야죠. 굳이 꼰대질을 하고 싶다, 뭔가 조언을 하고 싶다 그러면 일단 용돈을 굉장히 많이 주면서, 한 세 번 조언할 걸 한 번으로 줄여서 용돈을 세 배로 불려서 약간 상대를 압도할 정도로 용돈을 주고, 상대가 약간 어이없어하는 순간 한마디 하는 거죠. '책 좀 읽어라.'

◇ 김현정>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결국은 '말로만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베풀어라'라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 김영민> 그러니까 조언을 할 때 많은 걸 베풀면서 동시에 해야지. 조언도 일종의 윗사람으로서 권력을 향유하는 거니까, 거기에 대한 비용을 치러야겠죠. 그게 심리적 비용이든 진짜 경제적 비용이든.

◇ 김현정> 그러네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런 얘기가 하나 생각나요. 저희 그 인터뷰 잠깐 화제 인터뷰 했던 고려대학교의 신지영 교수가 본인의 에피소드를 저한테 얘기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교수님은 어렸을 적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살 빼야 된다고 줄넘기를 하루에 1000개씩 시키셨대요. 그런데 핵심은 아버지가 같이 하셨대요. 그러니까 뭔가 부모가 아이한테 '너 숙제해' 하고 나는 자는 게 아니라, 나도 같이 책 읽고.

◆ 김영민> 그럼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일종의 권력의 행사인데 그 권력의 행사가 공짜로 될 수는 없고 거기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죠.

◇ 김현정> 그게 저는 굉장히 와닿네요.

◆ 김영민> 그 신 교수님 아버님은 육체적인 비용을 지불하셨군요.


◇ 김현정> 결국 바르게 어떤 내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면 나도 그만큼 무언가를 해야 한다. 좋은 어른, 멋진 어른이 되는 방법이라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네요.

교수님,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때가 다 돼 가는데 이 책 내신 거 있잖아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게 굉장히 역설적이에요. 아침이면 얼마나 희망차고, 새싹이 돋아날 것 같고, 삶을 생각해야 되고. 이런데 죽음을 생각하는게 좋다니 이게 무슨 뜻인지는 꼭 한번 여쭤보고 보내드리고 싶어요.

◆ 김영민> 그런데 놀랍네요. 매일 출근하셔야 되는 김현정 PD께서 아침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새싹이 돋아나고... 믿을 수 없습니다. (웃음)

◇ 김현정> 그래야 될 것 같다는 거죠.

◆ 김영민> 믿을 수 없습니다, 그걸 그렇게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게.

◇ 김현정> 아침에 좀 피곤하긴 합니다. (웃음)

◆ 김영민> 그런데 저는 보통 이 제목을 보면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에 압도가 되는데. 저는 죽음만큼이나 '아침'이라는 말, '생각'이란 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단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되죠. 죽은 사람은 생각할 수가 없으니까.

◇ 김현정> 그러네요.

◆ 김영민> '살아 있으라'는 메세지가 있고요. 그리고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라는 건 일단 '오전 중에 일어나라'는 거죠. 늦잠 자는 건 좋지만 정오를 넘기지 않고 웬만하면 오전에 일어나라라는 메시지가 또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라'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런데 생각이라는 게 ,우리가 몽상에 잠기거나 그런 거랑은 달리 사실은 상당한 생각의 근육을 사용을 해서 논리적이고 명철한 정신으로 해야 되는 정신활동이죠. 그래서 몽상에 잠기는 게 아니라 진짜로 생각을 해 봐라. 죽음 같은 근본적인 문제. 생각이라는 게 몽상하고는 달리 제대로 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죠.

◇ 김현정> 맞아요.

◆ 김영민> 그래서 '평소에 늘 플랭크, 스쿼트를 통해서 체력단련을 하라'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줄넘기보다는 아까 줄넘기 말씀을 하셨는데 줄넘기는 무릎 관절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랭크, 스쿼트를 제대로 한 자세로 매일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비로소 체력이 생겨서 어려운 작업인 생각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아침에 일어날 수도 있고. 이런 깊은 뜻을 담고자 했습니다, 사실은 책 제목이.

◇ 김현정> 그러면 그냥 제가 봤을 때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 저는 보통은 다 '죽음'에 꽂히게 되는데.

◆ 김영민> 그 안에 플랭크, 스쿼트란 내용까지 다 들어 있습니다, 제목에.

◇ 김현정> 운동방법까지, 운동방법까지.

◆ 김영민> 그럼요, 아주 구체적으로.

◇ 김현정> 그러네요. 여기서 또 한 번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죠, 여러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을 보면 우리는 읽는 순간 너무나 고정관념에 빠져서 '왜? 뭐지?'라고 했는데. 사실은 아침에 방점이 찍혀 있고, 생각에 방점이 찍혀 있고, 죽음이 아닌 살아 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고. 재미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김영민 교수하고 제가 한 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생각이 그동안 얼마나 갇혀 있었나,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됐어요.

◆ 김영민> 진심으로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웃음)

◇ 김현정> 그리고 저는 나름대로 저는 청년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마음만은 청년이야 이랬는데. '더 청년이 돼야겠다. 더 좀 뒤집어서 생각해 봐야겠다. 고정관념에서, 선입견에서 벗어나야겠다.' 이런 생각을 좀 해봤어요.

◆ 김영민> 앵커로 산다는 게 굉장히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출연자한테 이렇게 긍정적인 멘트를 늘 남기기 쉽지 않은 일인데. (웃음)

◇ 김현정> 오늘 끝나고 나서 앵커란 무엇인가 써야 될 것 같아요. (웃음)

◆ 김영민> 어쨌든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현정> 앵커는 보통 이런 거 마무리할 때, 설 특집 이런 거 마무리할 때 꼭 해야 되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새해 덕담 한마디, 우리 청취자들께.

◆ 김영민> 새해 플랭크, 스쿼트를 열심히 하셔서 죽음 같은 무거운 주제까지도 기꺼이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을 기르시기를 기원합니다.

◇ 김현정>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 김영민> 고맙습니다.

◇ 김현정>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김영민 교수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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