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파업' 어머니 대신 '3대 독자' 차례상 첫 도전기

2019. 2.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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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설 차례상을 직접 차려봤다. 이병준 기자

누나만 둘 있는 3대 독자(27세)로, 집에서는 1년에 차례와 제사를 4번씩 지냈지만 한 번도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땐 고모가 부엌을 드나들며 음식을 만들고 고모부는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20년 넘게 수많은 차례‧제사상을 차려오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지난해 "더 이상 제사상을 차리고 싶지 않다"며 ‘명절 파업’을 선언하셨다. 차례상도 차릴 겸, 그간 어머니의 고충을 이해하고 싶어 올해 명절 음식은 직접 한 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설 차례상을 차릴 재료를 사는 데에만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이병준 기자


어머니의 '명절 파업' 선언, 시작된 도전
부모님께 계획을 말씀드리자마자 “할 수 있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 명절 음식으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 떡국‧조기구이‧쇠고기산적‧동태전과 고사리‧도라지‧시금치나물, 호박전‧동그랑땡‧두부부침을 준비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장 보는데 3시간, 재료 손질에 3시간, 요리하는데 반나절 걸릴 거다”라고 하셨지만 ‘그렇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겠나’ 싶었다.

가까운 안양중앙시장으로 나섰다. 시장은 설 명절을 앞두고 붐볐지만, 대부분 중장년층 여성들이었고 기자와 같은 젊은 남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얇게 썬 쇠고기, 손질된 동태, 다짐육 등을 샀다. 황태포와 깐 밤, 배도 담았다. 조기구이를 할 생 조기도 처음 사봤다. 재료를 다 사니 양손 가득 10개가 넘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들고나올걸 싶었다. 족히 10kg은 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집까지 40분 동안 들고 갈 자신이 없어 결국 택시를 탔다. 장 보는데 90분, 비용은 7만2300원이 들었다.

장보기를 끝내니 양손이 묵직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였다. 이병준 기자

7시간 서서 요리 6개 완성…기름 냄새 잔뜩, 온몸이 뻐근
장 봐온 재료를 쭉 펼쳐놨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득했다. 이병준 기자

재료는 샀는데 어디서부터 요리를 시작할지 막막했다. 어머니가 “재료 손질 먼저 하고, 고기 양념도 미리 해둬야 한다”고 귀띔해주셨다.

오후 3시, 시금치·도라지·고사리 나물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한 봉지 그득하던 시금치는 데치니 한 그릇 분량으로 줄어들었다. 사 온 고사리가 이미 데쳐져 있길래 들기름에 5분 정도 볶고 냈더니, 어머니가 “간장, 물을 넣고 오래 볶아야 된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7분 정도 더 볶자 그제서야 부드럽게 나물이 완성됐다.

길게 잘린 도라지를 그냥 볶으려 하자 어머니가 “그렇게 길게 그대로 볶으면 어떡하냐”며 아예 식칼을 뺏어서 직접 도라지를 길이에 맞춰 자르셨다. 도라지는 식용유와 다진마늘, 다진파를 넣고 볶아냈는데,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빼는 과정을 빠뜨리는 바람에 약간 쓴맛이 남았다.

비교적 쉬운 애호박전을 할 때에만 겨우 사진 찍을 짬을 낼 수 있었다. 이병준 기자

쉬울 줄 알았던 쇠고기산적 양념도 쉽지만은 않았다.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간장, 물엿, 참깨, 마늘 등을 섞어 내일 구울 고기를 미리 재웠다. 그릇이 작아 얇게 편 쇠고기 2개만 쟀는데, 어머니께서 “제사상에는 홀수로 음식 올리는 게 기본”이라며 타박을 하셔서 하나를 더 쟀다. 동그랑땡, 두부부침은 비교적 수월하게 끝났다. 요리하는 내내 외할머니는 ‘뭔가 못마땅한 눈치로’ 부엌을 서성이셨다. 이번 설엔 외할머니를 모셔왔기 때문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차례도 따로 지냈다.

오후 10시, 일단 6개 요리를 완성했다. 7시간이 걸렸다. 내내 서서 일한 탓에 다리가 무겁고 온몸이 뻐근했다. 기름 냄새가 벌써 옷에 뱄다. 외할머니는 “네가 하루종일 계속 일했으니 얼마나 팔이 아프겠냐” 걱정하셨다. 야근이 끝나고 늦게 들어온 작은 누나는 부엌을 보더니 “왜 하지도 않던 짓을 하냐”며 의아해했다.

다음날, 오전 8시부터 남은 요리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동태전, 쇠고기 산적, 떡국을 우선 해치웠다. 동태전은 계란물이 잘 묻지 않아 뒤집으면서 계란옷이 자꾸 벗겨졌다. 지켜보던 어머니는 “젓가락 말고 숟가락으로 계란물을 떠서 같이 팬에 올리면 낫다”고 한마디 거드셨다.

마지막으로 조기구이를 준비했다. 태어나서 처음 생선을 손질해봤다. 기자가 칼날로 비늘을 벗겨내려고 하자 어머니께서 화들짝 놀라시며 “칼등으로 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조기는 내장을 빼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지느러미를 가위로 자르고 비늘을 긁어낸 뒤, 밀가루를 살짝 묻혀 기름에 노릇하게 구웠다.


20분 만에 끝난 차례, 준비는 12시간
전날보다는 빠른 속도로 요리를 끝내고, 오전 9시가 되자 차례상을 차렸다. 상을 펴고, 흰 종이를 깔고 제기를 꺼냈다. 10년 넘게 쓴 제기지만 아직도 붉고 반들반들하다. 물행주-마른행주-신문지로 3번 닦은 뒤 신문지로 싸서 보관한다고 했다. 음식을 놓는 위치를 잘 몰라 인터넷으로 ‘차례상 제수 배치’라고 검색해 본 뒤 상을 차렸다. 대추를 빠뜨린 걸 이때 알았지만, “할 수 없지”하고 그대로 상을 차렸다.

차례는 20분 만에 끝났다. 다시 앞치마를 둘렀다. 요리에 쓴 그릇과 제기들까지, 개수대는 꽉 찼고, 개수대 옆까지 한가득 설거짓감이 쌓였다. 제기를 닦고 챙겨 넣는 데에도 40분이 넘게 걸렸다. 부엌 정리까지 끝내니 오전 11시 17분이었다. 장보기부터 요리, 설거지까지 총 12시간이 걸렸다.

기자와 가족들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내용

어머니는 “조상님이 손주가 차린 차례상 받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없을 거다”고 칭찬하시면서도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냐”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사진을 본 큰 누나는 “오 웬일이래~ 잘 차렸다”고 말해줬다.

큰 누나는 그동안 어머니의 일을 가장 많이 도왔던 사람이다. ‘처음 한 것 치고는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뿌듯함보다는 피곤함이 더 컸다.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주며 딱 한 번 차린 차례상이지만, 이틀을 쓴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의 ‘명절 파업’은 이유가 있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 '차례상 도전기' 기사에 대해 독자분들께 알려 드립니다

「 2월 6일 오전 6시에 보도한 <‘명절파업’ 어머니 대신 ‘3대 독자’ 차례상 첫 도전기>와 관련, 독자 여러분이 혼란을 겪으신 부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리며 관련 내용을 설명드립니다.

최초 보도 내용에 담긴 삼촌·숙모·형수는 외삼촌, 외숙모, 외사촌형수 등 모두 기자의 어머니 쪽(외가) 식구를 뜻합니다. 기사에 처음 적은 '할머니'도 외할머니입니다. 차례나 제사와 관련해 친가와 외가 쪽의 기억을 함께 쓰다 생긴 일이며 혼란을 없애기 위해 친가(고모·고모부) 쪽 얘기로만 수정했습니다. 이번엔 외할머니가 기자의 집으로 오셔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차례도 별도로 지냈기 때문에 오해가 커졌습니다.

이번 기사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들이 차례 음식을 차려본다는 취지에서 작성됐고 장보기부터 뒷정리까지 기자가 직접 했습니다. 기사에서 밝힌 ‘3대 독자’도 사실입니다. 이병준 기자는 1남 2녀 중 막내, 기자의 아버지는 1남 5녀 중 넷째, 기자의 할아버지는 외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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