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팩' 나눠주며 건강 살피고 일자리 주선.. 서울역 노숙인 상담 동행해보니

홍석호 기자 2019. 2.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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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10시경 서울역 인근에서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소속 사회복지사 윤대경 씨(왼쪽)와 방동환 씨(오른쪽)가 노숙인 거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선생님, 기술 배워보는 거 어때요?” “무슨 기술?”

지난달 31일 오후 8시 반. 사회복지사 윤대경 씨가 묻자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던 박모 씨가 몸을 일으켰다. 마땅한 기술도 없는 60대 박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지하도에서 자고 일어나 공사현장을 전전하지만 퇴짜 맞기 일쑤다. 윤 씨는 박 씨에게 서울시 자활근로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자동차 유리 코팅 기술에 관심을 보인 박 씨는 다음 날 윤 씨를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서울역 일대에는 박 씨 같은 노숙인이 약 130명 상주한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사회복지사들은 밤낮으로 이들을 만난다. 시립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산하 희망지원센터에서는 직원 50여 명이 일한다. 교대로 거리 상담을 나서는데 주요 근무시간인 오후 8∼11시에는 10명이 나간다.

목적은 탈(脫)노숙. 주거나 재활시설을 안내하고 원하면 일자리도 소개한다. 단체생활을 어려워하는 ‘만성’ 노숙인도 꾸준히 설득하며 건강 상태를 파악한다. 추울 때는 핫팩이나 컵라면 같은 물품도 건넨다. 예년보다 포근하던 날씨가 영하 5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31일 오후 8시부터 3시간 동안 사회복지사 윤대경, 방동환 씨의 거리 상담에 동행했다.

윤 씨의 스마트폰에는 서울역 일대 노숙인 정보를 담은 문서 파일이 가득했다. 이름, 생년월일 같은 기본 정보부터 주요 동선과 일과, 가족과 거주지 유무에 병원 진단기록도 담겨있다. 겨울이 되면 노숙인 사이에서는 결핵이 유행한다. 지하도 구석에서 힘겹게 기침하는 노숙인의 몸 상태를 묻고 병원 검진 일정을 잡는다. 항상 서울역 커피 자판기 옆에 있던 노숙인이 병원에 가기로 약속하고는 이날 보이지 않았다. 윤 씨는 동료 복지사들이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대화방에 그 노숙인의 이름과 외형을 묘사한 메시지를 올렸다. 윤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지하철 1호선 서울역 12번 출구에 ‘사는’ 고모 씨도 요주의 인물이다. 그는 어두워지면 언제나 같은 위치에 서 있다. 낮에 폐지를 주우러 간 사이에 다른 노숙인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으면 출구 밖으로 올라와 선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개의치 않는다. 윤 씨는 “고 씨가 앉아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정맥류가 걱정돼 정기적으로 진료를 제안하지만 고 씨가 꺼려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날 만난 30대 여성 이모 씨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사례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 씨는 부모와 자녀가 있지만 상습적으로 가출해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한다. 처음에는 복지사의 연락을 받은 가족이 데려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반쯤 포기한 상태다.

일부 노숙인은 지하도에서 술판을 벌이다 복지사에게 고성을 지르거나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윤 씨와 방 씨는 익숙하다는 듯 다가가 말을 건넸다. “오늘은 날이 추우니 센터에 와서 자라” “옷이라도 갈아입고 가라”는 제안에 위아래 앞니가 4개씩 빠진 노숙인이 웃으며 “알았다. 자기 전에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3시간 동안 이어진 거리 상담에서 두 사람은 노숙인 3명을 응급대피소로 옮겼다. 그중 한 명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공원 구석에 종이 박스로 바람막이를 만들다가 만났다. 수염이 듬성듬성한 얼굴은 허옇게 일어났고 손은 시커멓게 상해 있었다.

고기압을 유지해 외부 공기가 안으로 유입되지 않게 막는, 센터의 양압격리실에서 재운 뒤 다음 날 결핵검사를 받기로 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시 노숙인은 3133명, 이 중 여성은 639명으로 추산한다. 2011년(4586명) 이후 계속 줄고 있다. 이 중 2832명은 자활·재활시설 등 기관 43곳에 거주한다. 301명은 거리가 집이다.

서울시는 노숙인에게 식사와 잠자리가 있는 일시보호시설, 일자리·직업훈련, 재활·사회적응교육, 치료 및 요양 등을 제공한다.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지방의 노숙인 지원 여건이 열악해 상경한 노숙인이 많다. 한때의 실패로 노숙하게 된 이들의 자활을 돕는 일이 사회적 낭비가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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