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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임기환 입력 2019. 02. 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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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64] 당나라 때 편찬된 역사책 '수서(隋書)'에서는 백만 대군을 동원한 612년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의 실패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겨우 요수 서쪽 적(고구려)의 무려라(武麗邏)를 빼앗고, 요동군과 통정진을 설치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빈정거리는 투가 역력한 위의 표현은 아무래도 수왕조를 대신하여 등장한 당왕조의 입장에서 수양제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위 문장의 행간을 깊이 읽어보면 당나라 사관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고구려 역사의 일면을 찾아낼 수 있다.

요하 서쪽에 위치한 '무려라'는 고구려의 최전방 군사 거점이다. '라(邏)'는 소규모 군사 초소나 요새를 뜻하는 고구려 말이다. 이 무려라에 대해 '자치통감'에는 "고구려에서는 요서 서쪽에 라(邏)를 두어 요하를 건너는 사람들을 통제하였다"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무려라가 요하 서쪽에서 통행로의 경찰 업무나 영역 관리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 '수서' 기록에서는 이런 소규모 군사 초소를 빼앗아 요동군과 통정진을 두었다고 쓰고 있다. 무려라에다 통정진을 두었다고 한다면 진(鎭) 역시 군사 거점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려라를 빼앗은 곳에 요동군을 두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없다. 요동군은 거점이 아니라 다수의 현을 거느리는 지방통치 단위이기 때문이다. 즉 지도상에서 표시하자면 점이 아니라 면인 것이다.

그런데 위 '자치통감'의 주석을 보면 고구려는 요서 지역에 여러 곳에 '라(邏)'를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무려라는 그중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수양제가 요동군을 설치했다는 것은 단지 무려라 군사 거점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고구려 '라(邏)'를 빼앗았거나 일정한 영역을 새로 확보하였음을 뜻한다. 적어도 이렇게 해석해야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612년 수양제는 완전히 빈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고, 요하 서쪽의 고구려 영역을 빼앗은 정도의 전과는 거둔 셈이다. 다만 백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한 것 치고는 매우 초라한 전과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런데 수양제의 전과를 뒤집어 보면, 요서 지역이 그 이전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배운 역사책에는 고구려의 서쪽 영역을 대체로 요하를 경계선으로 하는 지도가 실려 있다. 현행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그런 지도가 나와 있다.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진다. 요서 땅이 언제부터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으며, 그 영역 범위는 어디까지였을까? 요서가 고구려의 영역이었다면 왜 우리 역사 교과서 지도에는 그런 경계선이 그려지지 않았을까?

우리 역사교과서의 지도는 대체로 고구려 전성기 때 즉 장수왕~문자왕 때의 영토를 보여준다. 여러 자료로 보건데 당시 고구려의 영역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북으로는 지금의 중국 길림성 농안에서 송화강 유역에 있는 길림과 장춘을 잇는 선까지 올라가는데, 여기는 옛부여의 땅이었다. 동쪽으로는 지금의 두만강 하류에서 중국 훈춘지역이 되겠고, 서쪽으로는 요하가 경계선이 되겠다. 남쪽 경계선은 지금의 남양만에서 죽령 일대를 거쳐 동해안의 울진,영덕 일대를 잇는 선이 될 것이다.

다만 당시의 영토라는 것이 오늘의 국경선처럼 분명하게 선이 그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서남북 사방의 주요 거점이나 중심지를 파악하고 이를 중심으로 각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나 지리적 형세를 중심으로 대략의 범위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략 우리들이 눈에 익숙한 고구려의 영역 지도가 되겠다.

7차 교육과정 고구려 전성기 지도. 국정 국사 교과서의 지도가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영역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형세나 고구려의 대외진출, 혹은 주변국가와의 충돌 양상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문헌 기록에도 이런 변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고구려 영역을 가장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위서』에는 "동쪽으로는 책성, 남쪽으로는 소해에 이르고, 북쪽은 옛 부여에 닿는다. 그 땅의 크기는 동서 2천여 리이고 남북은 1천여 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장수왕대의 영역 범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고구려 전성기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기록의 '동서 2천 여리, 남북 1천여리'라는 고구려 영역은 그 뒤의 중국 사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주서』에는 "동쪽으로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를 넘어서 (동서) 2천리이며, 남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말갈과 이웃하니 (남북) 천여 리 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서』는 "동서 2천 리이고 남북 천여 리이다"라고만 가장 간략하게 쓰고 있다. 동서 2천 여리, 남북 1천여리'라는 표현은 이어지는데, 『주서』에서 "서쪽으로 요수를 넘는다"라는 표현은 앞서 본 『수서』의 무려라 기록을 고려할 때 주의를 기울일 만한 표현이다.

그런데 『구당서』에 이르면 고구려 영역에 대해 전혀 다른 기록이 등장한다. 즉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르며,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백제에 이르고, 북쪽으로 말갈에 이른다. 동서 3,100리이며, 남북 2,000리이다." 『신당서』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기록이 나오며 다만 동서 남북 리수는 쓰여있지 않다. 혹 "동서 3,100리이며, 남북 2,000리"라는 『구당서』 기록이 오류일까?

당나라때 편찬된 『통전』에는 고구려 영역이 수나라때부터 점점 커져서 6천리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당나라에서는 고구려 영역에 대해 앞 시기와는 다른 또다른 정보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또 그 과정에서 고구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얻고 있었던 정황을 고려하면, 『구당서』 기록은 나름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된다.

『구당서』에는 서쪽 경계를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르고 있다고 쓰고 있다. 영주는 당나라 영주도독부를 가르키는 것으로 치소는 지금의 조양시이지만, 영주의 관할 범위가 넓기 때문에 어느 지점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서』의 무려라 기록과 연관해보면 요하 서쪽 상당한 범주가 고구려의 영역 관할 아래에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구당서』의 "동서 3,100리이며, 남북 2,000리"라는 기록을 그대로 다 인정하기는 힘들지만, 서쪽 경계선이 요하를 건너 요서의 어느 지역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면, 동서와 남북의 리수를 고려하면 북쪽이나 동쪽의 고구려 영역 범위도 장수왕, 문자왕대의 그것과는 변화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북쪽과 동쪽에서 말갈의 등장과 관련된 정세 변화에 따른 것이리라.

고구려 하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영위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우리 누구에게나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역사교과서 지도상에서 지리적 영토의 넓이로만 따지고 본다면 발해의 영토가 더 크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대개 고구려를 오히려 더 큰 국가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고구려의 영역과 발해의 영역이 갖고 있는 영토의 성격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발해 땅을 과소 평가하려는 뜻은 아니지만, 한반도 북부 및 요동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고구려 땅이 갖고 있는 영역의 질이 발해와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영역에 무슨 질이 있냐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다 똑같은 땅은 없는 법이다. 주민 거주성과 인구밀도, 생산력의 차이, 전략적 중요성, 교통로와 주변 지역과의 연결성 등등, 따지자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교과서에 나오는 고구려 지도에 나타난 그런 정도의 크기로는 대제국 고구려의 명성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북쪽으로는 훨씬 북쪽의 시베리아 지역까지 확장하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요서나, 더나아가서는 지금의 북경이나 그 너머까지 진출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은 실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근거를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어쨋거나 어느 정도 영역의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영역이 고구려의 중심 무대라는 점은 틀림없다. 영역의 질적 수준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고구려 영역의 경계선이나 각 지역의 성격, 그리고 영역 지배의 양상에 대해 몇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우리들은 고구려를 주로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는 면에서 역대 다른 왕조와는 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렇게 머리 속으로는 넓은 영토를 꿈꾸면서도 정작 우리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한반도 그중에서도 남쪽의 일부 땅. 좁다면 좁은 한국 땅인데, 거기서도 서울과 수도권에 죽기살기로 모여들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 보라.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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