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뉴스 저격] 이런저런 복지 없애고, 모두에게 '기본소득' 50만원씩 준다면..

김민철 선임기자 2019. 2. 8.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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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비효율 커지면서 '기본소득제' 도입하자는 주장이 국내외서 솔솔
서상목 前 복지장관

나라에서 주기적으로 상당한 액수를, 그것도 무조건적으로 주는 꿈 같은 일이 실현 가능할까. 4차 산업혁명 진행에 따라 인공지능(AI)이 점차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소득분배 실패, 즉 양극화가 깊어지는 점에 대한 우려는 보수든 진보든 큰 차이가 없다. 이를 자산 조사나 근로 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주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해 해결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 도입 주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주로 일부 진보 진영의 담론이었다. 여기에 일부 보수 인사도 "포퓰리즘적 정치가 만연하면서 복지제도가 크게 늘어나 비효율이 너무 커졌다"며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기존 복지제도를 대폭 축소해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여러 강연과 기고를 통해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 전 장관을 만나 주장하는 이유와 근거를 들어보았다.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16년 이코노미스트가 커버스토리로 기본소득을 다룬 것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즘은 강의할 때마다 기본소득 도입 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강의 처음엔 '그것 하면 나라 망한다'고 반대가 압도적인데, 강의를 마치고 다시 조사해보면 절반 이상이 찬성으로 바뀌더라."

―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정책을 잘하면 성장도 하고 분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분배가 나빠지고 있다. 임금 격차가 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우연이 아니고 기술혁신과 관련 있는데 그 물결을 타면 임금이 오르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임금에 시달린다. 근본적으로 누가 집권해도 분배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1분기 수익이 15조원 아니냐. 그래서 기술혁신 과정에서 생긴 과실을 배당 형태로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기존 복지제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자꾸 이런저런 제도를 만들어 복지제도가 너무 복잡해졌고 원칙도 없어졌다. 공공 부문이 너무 비대해지고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기존 복지제도는 많이 없애야 할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실업수당, 기초연금, 아동수당, 근로장려세제 등은 필요없을 것이고 최저임금제도 노사 자율에 맡길 수 있다. 장애인 정책 등 꼭 필요한 것은 남기고 기존 복지제도를 재건축해야 할 것이다." (반면 요즘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진보 인사들은 대체로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얹자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

"모든 사람에게 먹고살 만큼 주자는 것이다. 선진국 대부분이 월 1000달러(약 110만원)를 얘기하는데, 우리는 소득수준이 좀 낮으니까 50만원 정도가 어떨까 싶다. 애들은 절반으로 하고. 그럼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150만원이다. 너무 작게 하면 의미가 없고 기존 복지제도를 없앨 수 없다."

―재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기존 복지제도에 쓰이는 예산이 적지 않고 앞으로도 복지를 더 늘려야 하니까 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기본소득 재원을 충당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선거 때마다 수십조짜리 복지제도가 새로 나올 텐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일을 안 하려고 해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지금은 분배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경제에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서 경제는 경제 원리에 따르도록 놔두면서 '기업가 정신'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 국가가 최저한의 안전판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면 근로 의욕 고취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쯤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나.

"당장 기본소득을 도입하기는 어렵지만 중장기적 과제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재정 부담 등 때문에 미국·캐나다도 못하고 북유럽도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요원한 얘기일 수 있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제도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 검토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많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기본소득은 지금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기본소득은 공동체 의식의 끝이다. 기본소득 개념 자체가 공동체 의식이 충분히 성숙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복지국가 단계도 성숙하지 않아 무리"라고 말했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도 "기본소득은 현금복지인데 현금 복지는 근로 동기를 침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사회 서비스를 늘려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을 건너뛰고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했다. 안 교수는 "하다 하다 안 되면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은 기본소득보다는 일자리 늘리는 복지부터 얘기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1인당 50만원' 계산해보니… 年300조원, 정부 예산의 64%
진보 진영선 "10만원씩이라도 당장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매달 얼마를 주자고 할까. 그럴 경우 예산은 얼마나 들까.

진보 쪽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월 30만원을 가장 많이 얘기하고 있다. 시작이 중요하지 액수가 중요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낮은 금액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 5000만명에게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180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 예산 469조원의 38% 정도다. 이들은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여기에다 기본소득을 추가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낮은 금액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온다'의 저자 김교성 중앙대 교수는 "시작부터 높게 잡으면 좋겠지만 상징적으로 1만원, 10만원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상목 전 복지부 장관이 주장하는 월 50만원(아이들은 절반, 4인 가족 기준 월 150만원)으로 할 경우 대략 300조원(올해 정부 예산의 64%)의 재원이 필요하다. 서 전 장관은 "재원은 기존 복지제도를 대폭 재건축하고 앞으로 늘어날 복지 비용까지 포함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청년과 장년 근로 시민에게 기본소득 이용 기회를 주는 '청·장년 근로 시민 기본소득 이용권' 도입을 제안했다. 청년기에 2년, 장년기에 2년 등 자신이 필요할 때 4년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로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예산은 약 18조원(2017년 기준) 들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2016년 스위스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를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조건은 모든 복지를 없애는 대신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284만원)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핀란드는 2017년 1월 실업자 2000명에게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실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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