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권고의견 8호' 수정 막히자, '친족 로펌' 사건 어물쩍 선고 맡겨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입력 2019. 2. 8. 06:00 수정 2019. 2. 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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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김명수 ‘대법 공직자윤리규정’ 무력화

김재형·김선수·노정희 등 ‘제척 대상’ 대법관 늘자 수정 제의 윤리위 난색 표명에 ‘일제 징용공 사건’ 전원합의체 회피 거부 로펌 출신 헌법재판관 2명도 대상…윤리위 “예외 인정 검토”

어떤 법관은 특정사건을 맡지 못한다고 소송법에서 정한 경우가 있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가까운 친족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법률용어로는 제척(除斥)이다. 해당 판사가 사건을 맡아 재판을 하면 불법이고 재심 사유다. 그 외에 법관이 스스로 사건을 맡지 않겠다는 회피와 당사자가 법관을 바꿔달라는 기피 제도가 있다.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기피하거나 회피해 재판부를 교체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사건을 맡은 로펌에 재판부의 친족이 있어도 회피나 기피가 되지 않았다. 대형 로펌에 속한 변호사가 수백명에 이른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로펌은 사건 수임을 법인 이름으로 해서 담당 변호사를 정한다. 그런데도 담당 변호사만 문제 삼으니 로펌들이 빠져나갔다. 이 때문에 공정성에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사건을 수임한 로펌의 변호사 가운데 2촌 이내 친족이 있으면 무조건, 4촌 이내 친족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재판을 맡지 말라고 했다. 2013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정한 권고의견 8호다.

이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이를 지켜 재판부의 친족이 일하는 로펌의 사건은 맡지 않도록 했다. 하급심 법원은 재판부가 많아 다른 재판부로 사건을 재배당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하나뿐이어서 대체가 불가능했고, 문제 대법관이 빠지는 수밖에 없었다. 소부사건은 나머지 2개부로 나눠 배당했다.

이런 문제에 걸리는 대법관은 2017년까지는 2016년 취임한 김재형 대법관뿐이었다. 부인이 법무법인 KCL에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제수(2촌)와 조카사위(3촌)가 각각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있는 김선수 대법관과 노정희 대법관이 취임했다. 같은 해 조희대 대법관의 딸(1촌)이 법무법인 화우에 들어가고, 법무법인 지평의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렇게 되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가을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권고의견 8호를 수정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런 사실을 언론과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 무렵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서두르도록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일본 기업을 대리했다. 김선수·노정희 대법관이 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직자윤리위가 수정에 난색을 표했고 김 대법원장은 두 대법관을 제외하지 않고 그대로 판결을 선고했다. 권고의견 8호를 무너뜨린 것이지만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김선수·노정희 두 대법관이 김앤장에 불리한 판단을 했으니 괜찮지 않으냐는 얘기만 흘러나왔다.

헌법재판소도 비슷한 상황이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이선애 재판관이 법무법인 화우 출신이고, 이석태 재판관이 법무법인 덕수 대표였다. 두 재판관은 소송법이 정한 기피와 회피 사유에 속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신이 속했던 로펌이 가져온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건을 회피한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기피 신청이 없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위헌을 주장하는 개인들은 위헌정족수가 재판관 6명으로 고정돼 있는데 굳이 재판관을 빼달라고 해 밉보일 이유가 없다. 합헌을 주장하는 국가 입장에서도 같은 국가기관끼리 재판관을 빼달라는 요구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대법원장의 결정은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지금은 판사 선발을 연수원을 갓 수료한 법조인 가운데 하지 않고 일정한 경력 변호사 가운데 하고 있어 로펌과의 이해충돌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김 대법원장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는커녕 국민적 감정이 뜨거운 사건을 이용해 슬쩍 넘어간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헌재에 대해서도 “두 재판관이 계속해서 회피를 거부한다면 과거에 속했던 로펌의 돈벌이에 도움을 주는 결과가 된다”고 법조인들은 말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 측은 “권고의견 8호를 수정하지는 않지만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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