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정부는 왜 수소를 택했나

주영재 기자 입력 2019. 2. 10. 09:25 수정 2019. 2. 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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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제성에서는 아직 전기차가 우위… 친환경차로 공존할 가능성도

이낙연 국무총리가 1월 30일 경기도 화성시의 현대차 남양기술연구소를 방문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 부회장과 함께 수소연료전지차에 시승해 있다. / 연합뉴스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각국에서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차량 연비 기준은 2015년부터 매년 약 5%씩 강화되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의 10개 주와 중국은 무공해차 의무판매제도를 도입했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독일과 인도는 2030년부터 각각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했다.

자동차업계는 전동화, 무공해 자동차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볼보는 올해부터 모든 차종에 전기모터를 장착하기로 했고,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전기차 80종 이상 출시, 도요타는 2050년까지 가솔린 엔진차량 판매 제로를 선언했다.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고 내연기관 차의 ‘종말’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중 어느 쪽이 더 밝은 미래를 약속할까.

지난 2월 1일 서울 양재동 수소충전소에서 만난 최병호씨(52)는 수소차를 택했다. 지난해 10월 현대차의 수소차 넥소(NEXO)를 구매한 그는 “승차감은 전기차랑 거의 같은데 힘은 더 세다.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충전소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인 수소를 쓴다. 어차피 나오는 수소를 가져다 쓰는 것이라 환경 측면에서 더 해로울 것은 없다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그는 수소 생산기술이 발전하면서 환경성이나 경제성은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수소차에 대한 에너지업계의 시선은 다소 회의적이다. 경제성에서 전기차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구조가 간단해 테슬라와 중국 비와이디 같은 신생기업의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쉽다. 이미 구축된 전력망을 활용해 추가 투자 없이 대규모 보급을 하는 데 유리하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전력망이 재생에너지 확대로 강화되는 반면 수소차는 충전소와 전용 수송관 구축 등 새로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며 “비용 측면에서 전기차가 질 수 없다”고 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아우디가 한 회 충전에 500㎞ 이상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드는 등 전기차 주행거리가 내연기관 차보다 우수해졌다”며 “전기차가 대량생산기로 접어들면서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차 선택, 경제성과 편의성이 가를 듯 주행 비용도 전기차가 더 저렴하다. 수소가격은 가장 싼 울산에서 1㎏당 70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넥소가 완충시 4만4310원(6.33㎏)이 들며 609㎞를 달릴 수 있다. 1㎞ 주행에 드는 수소요금은 72.7원이다. 승용차 연간 평균주행거리인 1만3724㎞를 달렸다고 가정하면 넥소의 연료비는 1년에 약 100만원이 든다. 같은 기준으로 휘발유차(아반떼1.6, 연비 13.1㎞/ℓ)의 연료비는 157만원이고, 아이오닉 전기차(연비 6.3㎞/㎾h)는 완속충전시 연간 16만원, 급속충전시 38만원을 쓴다.

그러나 향후 수소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있다. 정부는 수전해와 해외생산으로 수소 공급을 늘려 1㎏당 수소가격을 2030년 4000원, 2040년 3000원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이다. 수소가격이 ㎏당 3000원이 되면 연간 연료비가 43만원 정도로 전기차 급속충전 비용에 가까워진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위해 충전시 전력량 요금을 50% 할인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없어지면 수소차와 전기차의 연료비가 역전될 수도 있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수소차와 전기차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수소차는 충전시간이 5분 내외로 짧지만 충전소 인프라가 부족하다. 전기차는 충전시간이 30~50분 정도로 길지만 집에서도 충전할 수 있다. 다만 운전하는 도중 충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땐 무척 번거로울 수 있다. 급속충전이 대체로 낮시간대에 이뤄지기 때문에 전기차가 대중화하면 여름처럼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주행거리로는 수소차가 더 유리하다. 트럭이나 버스, 트램과 같은 큰 힘이 필요한 이동수단을 전동화할 때도 배터리보다는 수소연료전지가 더 효율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서로 역할이 달라 마지막 단계에선 수소차와 전기차가 궁극의 친환경차로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수소차는 대중화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에서 당장은 전기차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889대에 머물렀던 수소차를 올해 4000대 이상 신규 보급할 계획이다. 충전소도 올해 14곳에서 2020년 31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부 로드맵에 따라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12월 수소연료전지를 만드는 현대모비스 2공장 신축에 들어가는 등 생산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의 친환경차 분야 연구개발 투자도 전기차보다 수소차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적 시선이 존재하는데도 정부와 현대차는 왜 수소차를, 수소경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을까.

왜 수소차를 택했나?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가 유일한 국내 완성차 업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 투자가 부진한데 현대차가 수소차를 밀겠다고 하니 정부나 부품업체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준희 교수도 “정부가 거대 자동차업계의 ‘연환계’에 묶였다”고 표현했다.

세계적 수준의 연료전지 기술을 확보한 현대차로서는 수소차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현대차로선 전기차 원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다른 업체 걸로 써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소차가 대중화되면 수소차만이 아니라 연료전지도 팔 수 있다.

현대차 측은 이에 대해 미국 환경청 평가에서 아이오닉 전기차가 연비 1위를 차지하고, 코나 전기차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는 점을 들며 전기차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수소차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퍼스트 무버’의 이점에서 찾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차를 최초로 상용화해 세계 시장을 휩쓸 때 우리는 특허 장벽 때문에 따라가기 힘들었다”며 “전기차는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든 뛰어들 수 있지만 수소차는 특허가 촘촘히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대응할 수 없고, 현대차는 또다시 게임체인저가 아니라 패스트팔로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프리우스를 판매해 수요부터 만들었고, 그 결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손에 넣었다. 2016년 기준으로 도요타가 일본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절반이 하이브리드 차다. 도요타가 이런 전략을 수소차에도 똑같이 적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현대차 측은 “수소차 한 대를 팔면 보조금을 감안해도 적자지만 시장 활성화를 위해 판매하고 있다”며 “도요타가 미라이를 한국에서 팔면 똑같이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수소차 보조금은 현대차 지원책이 아니라 수소 지원책”이라고 말했다.

김창희 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수소경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95%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한 나라에서 한국의 ‘수전해 기술’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수입하면, 에너지 수급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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