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보경찰, '의원 관리카드' 만들어 인맥 사찰

2019. 2. 1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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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2011년 정보경찰 동원 '입법 로비' 정황

정보경찰, 수사권 조정 논의 때
의원 성향 중립·반대 등 분류
인맥 파악한 뒤 로비에 활용
검찰 "불법사찰..수사 확대"

여상규 의원 '중립'으로 평가
"종친회 부책임자 통해 간접 설득"
이한성 의원 '반대'로 분류
"전 보좌관이 신문사 대표와 친구
지역 언론 활용해 반대 철회 유도"

경찰이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당시 일선 ‘정보경찰’을 통해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대인관계 등을 파악한 뒤 국회 입법 논의에 활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의원별 관리 카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정보경찰은 여야 정치인들이 언제 지역구를 방문하고, 누구를 만났는지 등을 수시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비공식 민원에 상시 노출되는 정치인에게 지역 밑바닥 정보에 밝은 경찰의 이런 정보수집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당시 경찰이 수집한 일부 내용이 불법사찰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의원 관리 카드 작성, 촘촘한 인맥 ‘사찰’ 10일 <한겨레> 취재 결과, 2011년 경찰청 정보국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맡은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별로 관리 카드를 작성했다. 관리 카드는 △기본사항 및 주요경력 △경찰 수사권 관련 입장 △정보활동 방향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시 사개특위 위원이던 여상규(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한나라당 의원 카드에 경찰은 판사 출신인 여 의원의 경찰 입장 동조 여부에 ‘중립’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정보활동 방향’으로 여 의원의 지역구 선거 책임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지난 총선에서 의령 여씨 종친회 부책임자를 맡았던 여○○(50) 남해군 ○○마을 이장을 통해 간접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여상규 카드’에는 “○○○ 하동서장을 남해·하동 읍면별 의정보고회 기간 조찬간담회에 참석시켜 경찰 입장 홍보 예정”이라는 내용도 있다. 범죄 등 치안정보와 무관한 정치인의 친분관계를 파악해 입법 로비에 이용하는 한편,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선거 관련 수사 등을 맡을 가능성이 큰 관할 경찰서장까지 정치인 로비에 동원한 셈이다.

검찰 출신으로 경찰 입장에 ‘반대’로 분류된 이한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 카드에는 지역구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언론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신문 등 지역 언론을 활용해 반대 입장을 철회하도록 유도” “유력 인사로는 ○○신문사 ○○○ 대표와 친구인 ○○○ 전 보좌관”이라고 기재돼 있다.

경찰청 정보국의 결정이 수뇌부에 보고된 뒤, 일선 경찰은 물론 그 가족까지 일사불란하게 동원된 정황도 확인된다. 2011년 4월 정보국이 작성한 ‘4·1 사개특위 이후 전망 및 고려사항’ 문건에는 “경찰관 가족 등을 통해 우호 여론 지속 견인” 등의 내용이 나온다. 당시 국회 사개특위 회의에서 경찰의 ‘수사개시권 명문화’ 등이 논의됐는데, 이를 확산하기 위해 13만여명에 이르는 경찰과 그 가족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또 같은 해 말 작성된 ‘수사권 관련 행안·법사위원 등 대응실적’ 문건에는 당시 경찰이 국회의원 홈페이지 및 포털 사이트 등에 경찰 입장을 옹호하는 국회의원은 칭찬하고, 반대하는 국회의원은 비난하는 게시글을 매일 작성했던 사실과 함께 그 ‘실적’(2011년 11월23일~12월31일, 4만420건)이 기록돼 있다.

■ 검경 갈등 겹쳐 ‘정보경찰’ 개혁 먼 길 정치인 관리 카드 등의 문건은 지난해 검찰의 경찰청 정보국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는 이명박 정부 시절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사찰’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수사팀은 경찰이 국회의원의 지역구 방문 시기나 활동, 만난 사람들을 수시로 파악하고 총선이나 지방선거 판세를 분석해 당선자를 예상하는 등 치안정보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문건으로 작성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경찰의 정보수집 활동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의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항목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달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개념과 경계가 모호한 ‘치안정보’ 대신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 및 대응 관련 활동’으로 정보활동을 제한하는 ‘정보활동 경찰규칙’을 제정했다. 다만 시민·인권단체 등에선 이 역시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정보경찰의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검찰은 “정보기구가 수사권까지 갖는 것은 과거 ‘나치의 게슈타포’와 유사하다. 올바른 수사권 조정과 공룡 경찰화를 막기 위해서는 ‘정보경찰 분리’가 반드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설명자료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해 경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번 검찰의 수사 확대가 수사권 조정 논의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서 경찰개혁위원회 등은 ‘정보경찰 폐지’를 추진했으나 경찰 안팎의 반발에 밀려 ‘정보경찰 재편’ 쪽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하기로 한 청와대도 정보경찰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사정기관에서 정보수집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인사는 “경찰 정보가 없으면 청와대 입장에서도 시야가 가려진 느낌이 들어 문제를 알면서도 방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사찰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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