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조선일보 출신 서청원 "5.18 당시 북한군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입력 2019.02.12. 18:51 수정 2019.02.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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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광주CBS와 단독 인터뷰 통해 '5.18 망언' 정면으로 반박
5.18 당시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9박 10일간 광주 현지 취재
"내 눈으로 봤고 청문회 때도 북한군 넘어왔다는 얘기 나온 적이 없다"
"광주시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에 감명받았다"는 월간조선 특집 기사 출고
■ 방송 : [CBS매거진] 광주 표준FM 103.1MHz (17:05~18:00)
■ 제작 : 조성우PD, 구성 : 박지하
■ 진행 : 이남재 시사평론가
■ 방송 일자 : 2월 12일 화요일

◇이남재> 5.18 역사왜곡 파문에 자유한국당이 사면초가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5.18 논란을 당 윤리위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럼에도 갈수록 파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회 최다선 의원이자 5.18 당시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9박 10일 간 광주를 생생하게 취재했던 분이 있습니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인데요. 서청원 의원이 SNS상에 글을 올렸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서청원 의원과 나눠보겠습니다. 서청원 의원님 안녕하세요.

무소속 서청원 국회의원(경기 화성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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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의원 육성 인터뷰 오디오는 포털에서 안 보일 수 있습니다. 노컷뉴스 홈페이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서청원> 네 안녕하세요.

◇이남재> 네, SNS에 장문의 글을 올리셨는데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공청회 파문이 일파만파입니다. 의원님은 이 상황 어떻게 보셨나요?

◆서청원> 글쎄요. 저도 뒤늦게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습니다. 이건 잘못됐는데... 현장을 본 사람도 있고 아직 광주시민들 수십만 분이 살아계신데 일부의 잘못된 이야기들을 듣고 잘못된 공청회를 한 것 같다 라고 생각을 하고 우려를 했는데요. 지금 큰 파장을 낳고 있어서 저도 굉장히 큰 걱정을 하고 빨리 수습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의원들 발언이 5.18 당시 사건을 잘 몰라서 이런 파장이 된 것 같은데 제가 어제도 이분들에게 국민들에게 간곡한 사과를 드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사과한 의원도 있었고요. 당에서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정중히 사과를 하고 윤리위원회 회부를 했습니다. 당의 윤리위 제소 문제나 징계 문제는 제가 당의 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저도 지켜보겠지만 거기에 관여한 사람들은 분명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폄훼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남재> 의원님께선 그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광주 현장에 직접 내려오셨죠?

◆서청원> 그렇습니다. 제가 5월 19일 저녁에 내려갔는데 당시 18일 처음 학생들의 데모가 있었는데요. 광주지사에서 올라온 글과 사진이 한마디로 잔혹했습니다. 예를 들면 원산폭격 장면이라든가 무차별 곤봉으로 때리는 장면이 신문에 실리고 제가 광주 현장을 지켜보고 총지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자선배와 함께 광주로 갔습니다.

19일 전주를 가니 이미 광주로 가는 기차나 차들이 모두 끊겼고 송정 쪽에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차나 사람이 못가니깐 잘못하면 위험하다, 그래서 전주에서 1박하고 아침 7시쯤에 택시를 타고 송정을 거쳐서 광주지사가 있는 금남로에 가서 20일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그때 다시 가톨릭센터에 유리창 파손은 물론, 수류탄 가스 냄새가 가득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이남재> 그때 도청 앞에서 집단발포 사태도 지켜보셨나요?

◆서청원> 봤죠. 20일 낮 공포가 되고 데모가 시작됐는데 공포탄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모여서 데모가 시작됐습니다. 아주 격렬하게 시민들이 저항했었는데 제가 보니 원인은 시위하는 학생들을 마구 때린 것뿐만 아니라 금남로가 굉장히 번화거리 아닙니까?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때리니깐 그곳에 있던 시민들이 굉장히 분노를 한 겁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시민들이 모두 나서서 데모가 시작됐고 그 다음에 도저히 견디다 못한 공수부대가 22일 날 철수했습니다. 저희가 버스, 택시 앞세워서 헤드라이트 켜고 데모를 하고 그러니깐 못 견뎌서 철수를 시작했죠. 중요한 것은 시위 과정보다 완전히 철수한 이후인 22일부터 27일까지 광주가 무정부상태였죠, 그때 학생과 청년들이 도청을 지키고 밤에 질서를 지키고 거리의 질서회복을 하고 이상한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금은방 하나 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도청에는 청년들이 무장하고 밤새도록 지켰고 그러면서 또 낮에 번화가나 뒷골목도 가게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무상으로 음식도 팔고 우리 취재하는 분들도 여관 생활하고 거기서 밥 먹고 했는데 그 분들이 질서를 지켜서, 무정부질서 상태에서 아무 사건 사고가 없었습니다.

요즘 북한 군인들이 개입됐다고 막 그러는데 기자의 눈이라는 게 매섭잖습니까. 그런데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신군부가 과잉 진압하고 쿠데타를 이끄는 부분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을 구타하고 총으로 쏘고 했는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무정부 상태에서 북한 무장군이 있었으면 도청도 다 폭파 됐을 거고 아마 광주가 쑥대밭이 됐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왜곡된 이야기들) 참 잘못된 것이다...

저는 취재 다녀와서 월간조선에 취재 9박 10일을 쓰면서 광주 시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에 감명을 받았다는 기사를 쓴 게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의 일을 쓰고 나서 항의전화를 받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을 이야기 한 거고 당시를 경험한 광주 시민들도 다 살아계시고 본 사람들이 있고 한데 일부 이것을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잘못 오해하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 의원들이 아주 잘못됐다고 보고요, 그러니 사과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 본 사람이고 청문회 때도 북한군이 넘어왔다는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나오지 않은 거예요. 너무 과잉진압을 해서 광주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그런 사태가 발생한 건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기사를 쓰게 됐습니다.

◇이남재> 네, 의원님 이야기가 광주 시민과 청취자 분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거 같습니다. 오늘 말씀 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