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시 품은 SNS.. 무심코 퍼나른 당신을 찌른다

홍인택 입력 2019.02.12. 19:21 수정 2019.02.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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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나영석PDㆍ배우 정유미씨 허위 불륜설 유포한 10명 입건

방송작가가 소문 듣고 첫 카톡… 지라시로 작성돼 순식간에 확산

지난해 연예계를 강타했던 ‘나영석ㆍ정유미 불륜설’은 결국 가짜뉴스로 확인됐다.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씨의 완강한 부인이 아니라도 저 설을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짜뉴스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가짜 정보가 유통된 과정이나 속도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방송가에 오가던 루머를 지인들끼리 돌려보겠다며 무심코 카카오톡에 올렸다 순식간에 피의자가 된 방송작가는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다”고 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삽시간에 전국을 휩쓴 가짜뉴스는 이미 피해자들의 인생을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흔들어 놓은 뒤였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로 밝혀진 두 방송인의 불륜설은 두 가지 경로를 거치면서 사설정보지(지라시)로 둔갑했다. 경로는 달랐지만 방송가에서 떠돌던 소문을 지인에게 재미 삼아 전달하기 위해 메신저 대화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영석·정유미 불륜설 지라시 유통 경로. 강준구 기자

첫째 경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작가 정모(29)씨가 출발점이다. 지난해 10월 15일 오전 동료 작가들에게 들은 소문에 귀가 솔깃했던 그는 지인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나PD가 자신이 연출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배우 정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는 내용을 ‘~더라’ ’~했대’ 같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메시지는 4명의 카카오톡을 거쳐 정보기술(IT)기업 회사원 이모(32)씨에게 도달했다. 이씨는 이를 사설 지라시 형태의 가짜뉴스로 만들어 다시 지인에게 보냈다. 이후 50여 명의 손을 거친 가짜뉴스는 17일 언론사 기자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전달됐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급속히 퍼졌다.

두 번째 경로도 시작은 방송계였고 출발점은 방송작가 이모(30)씨. 그는 지난해 10월 14일 동료 작가들에게 허위 불륜설을 전달했다. 프리랜서 작가 정씨보다 작성 시점은 하루 앞섰지만 자연스레 ‘후속보도’ 성격으로 변모했다. 정씨의 가짜뉴스가 일반에 확산됐던 시기에 이를 ‘업데이트’ 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공개 채팅방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70여 단계를 거치며 일반에 확산된 이씨의 가짜뉴스는 사건의 내막까지 전달하는 모양새가 됐다.

주변의 사소한 농담거리가 메신저 대화방을 타고 지라시로 둔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틀 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짜뉴스가 삽시간에 퍼질 수 있었던 배경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이다. 두 방송인 불륜설의 경우 지인 두세 명 사이의 대화뿐 아니라 수백 명이 익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카오톡이 주된 통로가 됐다. 가짜뉴스를 최초로 작성한 이들은 지인 1명에게 카카오톡으로 내용을 전달했어도, 지인의 지인을 거치면서 이를 접한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얘기다. 경찰이 가짜뉴스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통로라고 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참가자만 수백 명에 이른다.

특히 네트워크로 연결된 SNS는 이용자 사이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맺는 관계가 더 느슨하다고 짐작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온라인상 유대관계도 어떤 소문이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같은 SNS에서 소통하는 다수가 아무 유대관계가 없는 듯 보여도, 사실은 미세한 친분 관계들이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SNS에서는 누구든 가짜뉴스 작성자뿐 아니라 유포자가 돼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피의자로 전락할 수 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카카오톡 대화 역시 소문이 퍼질 위험성만으로 공연성이 있다고 인정한 법원 판례가 많은 만큼, 카카오톡이 사적 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12일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 PD와 정씨의 불륜설을 만들어 유포한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로 방송작가 이씨 등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 가운데 이씨를 포함해 가짜뉴스를 작성한 3명과 이를 블로그 등에 퍼나른 간호조무사 안모(26)씨 등 6명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다는 방침이다. 이씨 등은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배우 정씨 소속사 측은 “합의와 선처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mailto:heute128@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mailto:jo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