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클럽 '버닝썬' 사건] "네 발로 걸었잖아"..성폭행보다 억울한 '무검출' 마약

이문현 입력 2019.02.12. 20:34 수정 2019.02.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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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클럽 버닝썬 사건 보도 이후, MBC로 제보가 쏟아졌는데요.

그 중에는 클럽에서 남성이 준 술을 마신 뒤에 정신을 잃고,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호소가 많았습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범죄 약물인 'GHB', 이른바, 물뽕에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져도 제대로 처벌조차 못한다고 합니다.

대체 왜 그런지, 먼저 이문현 기자의 보도를 보시죠.

◀ 리포트 ▶

서울 강남역 인근의 클럽.

지난해 5월 20대 여성 A씨는 이 클럽에서 만난 남성에게 보드카 석 잔을 받아서 마셨습니다.

주량이 소주 2병 반 정도인 여성은 이후 기억이 끊겼고, 눈을 떴을 땐 호텔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A씨/피해 주장 여성] "(남자가) 외국어를 쓰는 애니까 '나 집에 가고 싶다', 영어로, '집에 가고 싶다'. '보내달라'고 계속 울면서 그랬던 게 기억이 나요."

A씨는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새벽 3시쯤 호텔을 빠져나왔습니다.

숙박업소에서 맨발로 뛰쳐나온 여성은 이 길을 따라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아파트까지 달아나 경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 "단지 술에 취했다고 보기는 좀…느낌이 좀 그랬어요. 그분(경찰)들이 오셔가지고 보니까 약물 의심이 간다고 그래서…"

당시 A씨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달아났고, 그러다가 여러 번 넘어져 곳곳에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A씨는 클럽에서 만난 남성이 술에 약을 타서 먹인 걸로 보인다며 준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약물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데다, 여성이 호텔까지 걸어 들어가는 게 CCTV로 확인됐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6~7개월 동안 정신과 상담도 받고 우울증 약도 먹었거든요. 약물이 안나왔다고 하니까…다 내 탓으로 돌렸는데…"

비슷한 일이 작년 12월 클럽 버닝썬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클럽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태국 남성이 준 술을 마신 뒤 정신을 잃고, 성폭행까지 당했다는 또 다른 20대 여성.

[B씨/피해 주장 여성] "침대로 머리를 계속 쾅 쾅, 일어나니까 계속. 그게 반복되면서 목이 계속 꺾였어요. 그러면서 '제가 죽겠구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때부터 엄청 소리 지르고 울고…"

하지만 이 여성 역시, 약물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고, 경찰은 태국 남성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방침입니다.

두 여성은 성범죄자들이 흔히 쓰는 약물인 GHB, 이른바 '물뽕'에 당한 걸로 보입니다.

문제는 물뽕으로 범죄를 저질러도 증거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몸에서 금방 빠져 나가 약물 검사에서 반응이 안 나타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해란/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GHB를 복용하게 되면 반감기(약물 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시간)가 30분, 길어야 한 시간이 넘지 않기 때문에…6시간 정도만 지나도 인체에서 검출될 확률은 굉장히 적은 편입니다."

더구나 물뽕은 복용 이후 나타나는 행동도 다른 약물과 다릅니다.

쓰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겉보기엔 멀쩡히 걸어 다니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숙박업소까지 제 발로 걸어갔다고 해서 약물 범죄가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다는 얘깁니다.

[장춘곤/성균관대 약학과 교수] "치매환자들 보면 행동 멀쩡하게 하잖아요. 그런데 지나간 일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이렇게 처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물뽕에 당했다는 피해 호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문현입니다.

이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