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문 열자 몰려든 실업자들.. 직원 "오늘만 2000명, 전화 3만통 왔다"

최원우 기자 입력 2019.02.14. 03:31 수정 2019.02.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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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 122만명] 수도권 8개 고용지원센터 가보니

지난 11일 단일 센터로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노원구 북부고용지원센터 2층과 4층 실업급여 업무 창구 21곳에서는 쉴 새 없이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실업급여 문의를 위해 2000명이 방문했다. 한 직원은 "문의 전화는 매일 3만통 넘게 걸려 온다"고 말했다. 고용 시장이 악화되면서 센터 직원들은 업무가 늘어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다. 한 직원은 "일자리를 잃고 이곳을 찾은 분들의 어려운 사정을 아니까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고 했다.

빈자리 없는 실업급여 강의실 - 13일 오전 서울 구로구 관악고용복지플러스센터 2층 약 100㎡(30평) 크기 강의실은 300여 명이 몰려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센터 관계자는 “실업급여 신청 요건 등을 안내하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 표정이 어두운 분들이 많아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같은 날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직원들도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실업급여 수급 자격과 신청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가 11시부터 시작됐다. 강의실에 200여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이모(58)씨는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집에서도 한다는데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런 거 몰라서 직접 왔다"면서 "사람이 많아서 30분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관악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는 약 100㎡(30평) 크기 강의실에 300여 명이 들어찼다. 사람들이 몰려 신분증 확인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둘러본 서울 동부·관악·강남·서부·남부·북부고용지원센터와 경기 수원·의정부센터 등 수도권 소재 고용센터 8곳은 어느 곳이나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최후의 '피난처'로 몰리고 있었다.

◇"일해서 월급 받고 싶은데…"

"이 줄은 자꾸만 길어지기만 하네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남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김모(30)씨는 자꾸 얼굴을 감싸면서 한숨을 쉬었다. 4년간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는 그는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실직했는데 업계가 어려워서 경력직도 잘 뽑지 않는다"면서 "제빵 기술을 배워볼까도 싶었지만 그동안 쌓은 경력이 아까워서 결심을 못 했다"고 했다. 김씨 바로 옆줄에 서 있던 김모(74)씨는 건설업체 구내식당에서 일하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저녁 식사를 하는 직원들이 줄어 일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7년간 힘든 줄 모르고 아침에 출근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고 했다.

다른 센터들에서도 비슷한 사연들이 쏟아졌다. 은행 청원경찰로 17년 일했다는 김모(64)씨는 "실업급여로 버텨보다가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면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공장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는 김모(33)씨는 2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1년 5개월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 것 같아서 정규직이 안 돼도 좋으니 계약 기간만이라도 일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재취업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일자리를 못 찾겠다"고 했다.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가 지난해 15만명을 넘어 외환 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했을 정도로 재취업은 '좁은 문'이다.

경기 수원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아온 유모(59)씨는 대기업에 다녔다고 했다. 그는 "잠 좀 못 자고, 밥 제때 못 먹어도 월급 받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일자리 만들겠다고 세금은 더 많이 걷는다는데 정부가 그 돈을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강남센터는 다른 센터들보다 상대적으로 방문자가 적었다. 센터 직원은 "청소나 경비 등 서비스업에서 일하시던 분들도 오지만, 전문직이나 대기업 경력이 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찾아온다"면서 "하루에 200명 정도 방문한다"고 했다.

◇실업급여 문턱 더 낮춰준다는 정부 실업급여는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의 당장 생계를 돕고, 구직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최장 240일간 지급된다. 하지만 일선 센터에는 구직보다 일단 돈이나 받고 보자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IT 회사에 다니다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했다는 김모(33)씨는 "당장 취업할 생각은 없지만, 실업급여는 받아야 하니까 형식적으로 취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실업급여를 받았다는 최모(41)씨는 "매번 구직 활동 내역을 대충 제출했지만, 한 번도 문제 된 적 없다"고 했다. 이런 실업급여 부정 수령을 줄이기 위해 일선 센터들은 '허위 구직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곳곳에 걸어놓고 있었지만,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달부터 실업급여를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필요한 재취업 활동 내역 신고를 4주에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그동안 허용하지 않았던 토익시험 응시와 어학원 등록도 구직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실업급여 수급자의 부담을 덜고, 실질적 재취업 지원은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일자리 못 늘리는 정부가 대신 실업급여 문턱을 낮춰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업급여 지급액은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연간 지급액이 처음으로 6조원을 넘어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급여가 높아진 것도 있지만, 실업자가 늘면서 전년보다 1조5000억원 가까이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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