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교생에 '파업' 가르치는 서울교육청

주희연 기자 2019. 2. 14.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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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노동인권 자료' 내용 논란
"파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키워드 5개를 적어봅시다."

"파업은 헌법으로 정한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하지 못하는 편협한 생각이 문제일 뿐입니다."

서울교육청이 제작해 13일 공개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의 한 대목이다. 서울교육청은 앞으로 이 자료를 관내 고등학교 320곳에 배포해 노동인권 수업 때 참고 자료로 쓰게 할 방침이다. 서울교육청이 이 자료를 만든 건 지난해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의 사망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여성가족부 조사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청소년 세 명 중 한 명(34.9%)이 '최저시급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서울교육청은 "청소년기부터 올바른 노동관을 심어줘야 하는데, 그동안 다른 기관에서 펴낸 노동인권 교육 자료들은 교재로 활용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아, 이화여대 연구팀과 일선 교사들에게 맡겨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교육청이 노동인권 교재를 직접 만든 건 전국 시도교육청 중 처음이다. 노동인권 교육 활성화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교재 내용에 상생이나 협력을 강조한 분량은 적고, 노사 간 대립과 집단행동을 강조한 분량은 많아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교재는 전체 24개 단원 중 6개 단원에서 노동운동의 역사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파업에 대해선 따로 한 단원을 할애했다. 하지만 기업의 긍정적인 역할이나 협상의 중요성을 별도로 다룬 단원은 없고, 단체교섭권에 대해 설명하는 단원에 일부 들어 있는 정도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 관계자는 "이런 교육은 자칫 학생들 머릿속에 '파업은 무조건 옳은 일, 파업을 비판하는 건 나쁜 일'이라는 또 다른 고정관념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했다.

파업이 헌법으로 정한 노동자의 권리라는 내용은 강조하면서, 불법 파업이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재는 노사 협상 분쟁 해결의 실제 사례로 2004년 택시 회사 노조원이 분신한 사건을 들고 있다. 노조가 분신, 파업, 점거 농성을 감행하고, 사측과 고소·고발전을 하다가 가까스로 타협한 극단적인 경우를 '분쟁 해결 실제 사례'로 든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업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건 맞지만, 이것이 노사 간 의견이 갈릴 때 불가피하게 사용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며 "(노사 협력보다) '투쟁'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학생들에게 실제 필요한 것은 수당, 근로 시간, 임금과 관련한 기본적인 개념과 해고당했을 때 권리를 찾는 방법, 모성보호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라면서 "노동조합 활동 같은 단체행동만 강조하는 건 과도하다"고 했다. 직장 내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하며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단체행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내용 위주로 가르치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안에 중학생용 노동인권 지도 자료를 만들고, 내년엔 초등학생용 자료를 만들어 관내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서울교육청은 "이 자료를 의무적으로 수업 시간에 활용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교실 안팎에서 참고 자료로 쓰도록 만들었을 뿐 모든 학생이 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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