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열아홉 유관순, 아우내에 부릅뜬 눈

천안(충남)=박정웅 기자 2019. 2. 14.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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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 함성 들린다
민족열사 나고 자란 곳, '독립과 자주정신' 생생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한 아우내봉화제. /사진=뉴스1
국가보훈처는 기해년 첫달의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를 선정했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해다. 유 열사의 선정 의미는 그래서 더욱 크다. 때마침 유 열사의 서훈 조정 여론이 들끓고 있다. 역사적 의미에 비해 그의 훈격(건국훈장 3등급)이 낮다는 지탄이다.

김구 선생과 안중근·윤봉길 의사는 1등급(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다. 김성수를 비롯해 건국훈장을 받은 친일파도 수두룩하다. 일부는 뱉어내긴 했지만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서훈 논란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는 이 같은 애달픔이 건국훈장을 ‘셀프 추서’한 이승만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해산해 35년 일제청산의 기회를 날려버린 장본인이다.

그 결과, 친일·부일분자들이 득세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덕술이다. 독립투사를 고문·탄압한 그는 해방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그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얘기는 민족의 수치다. 그런 노덕술이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빨갱이’ 사냥에 편승해 받은 훈장만 3건이다. 그의 훈장은 여전히 살아있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는 유 열사의 서훈 조정을 촉구하는 서명지(상훈법 개정)가 놓여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프랑스는 불과 4년여의 예속이 끝난 뒤 나치와 그 협력분자를 대거 청산했다. 재판 5만5000여건, 사형선고 6700여명, 사형집행 760여명, 종신 노동형 2700여명, 강제 노동형 1만여명, 금고형 2000여명, 유기징역 2만2000여명….

우리는 어떤가. 기소 200여건, 판결 40건, 그리고 사형 ‘0’건.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자 50대의 나이에 대위 계급으로 재입대했다. 이후 나치 치하의 조국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1944년 잡혀 총살 당한다. 그는 미완의 저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역사는 시간 속의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일제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 민족은 1945년 이전과 다를바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그 시간 속에 기록된 일그러진 친일파를 역사적으로 소명하지 못했고 그들은 현재를 쥐락펴락하며 득세한다. 역사에 대한 무지를 일깨우는 수많은 가르침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질곡의 틈바구니에 빛나야 할 '인간'은 기념식 노래 한소절에 채 담기지 못한다.

◆매봉산 자락에 깃든 100년의 혼

유관순 열사 동상. /사진=박정웅 기자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1월의 독립운동가 고향을 찾았다. 충남 천안의 병천이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병천의 매봉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의 5남매 중 둘째딸이었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됐다. 유관순 열사는 이 대열에 참여했고 체포됐다. 강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와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집안과 주변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4월1일 아우내장터에서 3000여명이 모인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만세운동으로 열사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순국하고 3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에도 주눅 든 법이 없었다. 모진 고문 끝에 1920년 9월28일 순국했다. 열아홉의 나이였다.

유관순 열사 초혼묘. /사진=박정웅 기자
매봉산 자락에는 유관순열사 사적지가 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곳이다. 열사의 자취와 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념관, 추모각, 초혼묘, 봉화대, 생가(매봉산 뒤편) 등으로 구성됐다. 수형자기록표와 재판기록문이 있는 기념관 앞에는 열사의 훈격 조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경내 왼쪽 오솔길을 따라 매봉산을 오르면 초혼묘다. 유관순열사는 순국 뒤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일제의 만행에 기막힐 따름이다. 초혼묘는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1989년 봉안했다. 매봉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다. 3월31일 유관순열사가 산 아래 생가에서 직접 올라 봉화를 올린 곳이다. 당시 이 봉화를 신호로 목천·천안·안성·진천·연기·청주 등 인근의 산봉우리 24곳에서 봉화가 잇따랐다.

유관순 열사 생가. /사진=박정웅 기자
매봉산을 넘어가면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있다. 당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조형물이 복원돼 있다. 생가 옆에는 유 열사 일가가 다녔다는 매봉교회다. 사적지와 생가지를 잇는 매봉산 오솔길을 걸으면 숨이 꽤나 차다. 그럼에도 한달음에 달렸을 열사의 뜻을 생각하며 마저 걸어보는 것이 좋다. 다시 사적지로 돌아오는 둘레길, 열사의 부모(애국지사 유중권·이소제의 합장묘)와 작은아버지(애국지사 유중무의 묘) 앞에서 예를 갖춘다.

◆"번득이는 태극기를 따르라"

구미산 아우내장터 기미독립운동 기념비. /사진=박정웅 기자
"2000만의 민족이 있고 3000리의 강토가 있고 5000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민족의 대표 33인이 선봉이 되었으니 13도 2000만 민중은 뒤를 이어 때를 잃지 말고 궐기하라. 분투하라. 인도 정의의 두 주먹으로 잔인무도한 일본의 총칼을 부수라. … 주저할 것 없이 오늘 정오를 기하여 병천시장에 번득이는 태극기를 따르라. 모이라. 잃었던 국토를 다시 찾자. 기회를 놓치면 모든 복도 가느니 두 주먹을 힘차게 쥐고 화살같이 모이라. 반만년의 문화민족이 노예시 야만시하는 일본의 굴욕을 감수할 것이냐." 1919년 4월1일, 아우내장터독립선언서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4월1일 천안의 아우내장터에서는 3000여명이 참여한 충청지방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유관순과 함께 김구응, 조인원, 이백하, 김교선 등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명이 순국했다. 일본인에 대한 살인이나 방화는 한건도 없었다. 다만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을 따랐음에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매봉산 오솔길. 유관순 열사는 이 길을 올라 봉화를 올렸다. /사진=박정웅 기자
거사 하루 전인 3월31일, 유관순열사는 매봉산에 올라 불을 피웠다. 오는 28일 아우내봉화제가 열린다. 매년 2월 말일 열리는 봉화제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한 전국 최대규모의 3·1운동 행사다. 유관순열사 기념관 광장과 아우내장터 일원에서 봉화탑 점화, 횃불행진, 독립만세운동 재현, 불꽃놀이가 열린다.

병천장 우체국 뒤편 구미산은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다. 야트막한 산마루에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비가 있다. 병천장(아우내장터)은 잡목과 건물에 가로막혀 잘 보이질 않는다. 구미산은 지역 어르신들의 공간이 됐다. 그라운드골프장의 담소가 끊임없다.

1919년 4월1일 3000여명이 만세운동을 전개한 아우내(병천). /사진=천안시
병천은 본래 아우내였다. 백전천과 갈전천, 두 물길이 어우러진 곳이라는 뜻이다. 순 우리말 지명이 식자들에게 듣기 좋은 한자어로 탈바꿈했다. 그럼에도 병천에는 뜨거웠던 아우내의 함성이 살아있는 듯하다. 옛 장터를 대신한 순대특화거리가 장사진이다. 조그마한 시골 장터에 50여곳의 순댓집이 진을 친다. 순대가 유명해진 건 주변에 돼지가공 공장이 생기면서부터라고 한다.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부드러운 소창을 사용해 냄새가 적고 맛은 담백하다. 병천장은 1·6일장이다.

◆역사문화둘레길

이화학당 시절의 유관순 열사(오른쪽 원). /사진=박정웅 기자
병천을 비롯한 천안지역에는 역사인물이 많다. 여유가 있다면 이들의 흔적을 찾아도 좋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로 향하는 '열사의거리'는 천안의 역사인물을 소개해놨다. 이동녕 선생, 조병옥 선생, 담헌 홍대용, 충무공 김시민, 어사 박문수 등이다. 

이동녕 선생은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녔다. 의정원은 요즘으로 치면 국회다. 이동녕 선생 기념관은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선생의 업적을 기린다. 조병옥 선생은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해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생가는 유관순 생가지와 가깝다.

애국지사 유중권·이소제의 합장묘.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은 아우내 만세운동에서 순국했다. 맞은편에는 같은 날 순국한 작은아버지 묘소가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담헌 홍대용 선생은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했다. 홍대용과학관은 체험위주의 천문우주과학관이다. 충무공 김시민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끈 명장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유명하다. 은석산에는 어사 박문수 테마길이 있다. 박문수는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 은석산을 하사받았다.

유관순열사 기념관과 아우내장터를 아우르는 역사문화둘레길도 눈여겨보자. 8개 코스 총 22.4㎞의 걷기여행길이다. 대부분 역사문화 유적을 연결한다. 1코스는 병천사거리-유관순기념관 1.3㎞ 대한독립만세길이다. 2코스는 유관순길로 유관순사적지-유관순생가지-조병옥생가지 2.1㎞ 구간이다. 유관순사적지까지는 천안역에서 401번 버스로 연결된다. 400번 버스를 타면 병천 면소재지(종점)에서 내려 조금 걸어야 한다.

독립기념관과 겨레의탑. /사진=박정웅 기자
차로 20여분 거리인 목천에는 독립기념관이 있다. 3·1운동을 비롯해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았던 선열들의 독립의지와 자주정신을 기념한 곳이다. 이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유관순열사 사적지와 병천순대거리는 ‘천안 12경’으로 꼽힌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9호(2018년 2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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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충남)=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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