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땐 역시 '집토끼'?..색깔 감추지 않는 친문과 친박
위기의 순간에 믿을 건 ‘집토끼’뿐인가. 최근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박’, ‘친문’의 구심력이 드러나고 있다. 지지층 확산을 위해 여간해선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던 핵심 계파가 ‘발등의 불’이 떨어지자 색깔을 감추지 않는 모양새다.
5.18 폄훼 논란이 터졌을 때 한국당 지도부가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초기 대응을 한 것도 태극기 부대를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극우 지지층, 이른바 ‘집토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민주당도 손혜원 의원의 목포 땅 투기 의혹,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 순간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손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장에는 홍영표 원내대표가 함께 섰다. 야당에서는 손 의원이 김정숙 대통령 부인의 친구라는 점 등을 앞세워 “친문 호위무사”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핵심 지지층도 결집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11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28.9%로 전주 대비 1.5%포인트, 민주당 지지율은 38.9%로 전주 대비 0.7%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으로선 ‘집토끼 전략’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분석한다.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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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SNS의 양극화
유권자들의 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나타난 '과잉대표' 현상이 집토끼 전략을 부추기고 있다. 선명하면서도 편향된 의견이 일반 여론을 과잉대표하지만, 여론을 주도하는 데는 먹힌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유튜브 정치'에 골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극소수 오피니언리더의 의견이 부각되는 트위터나 자극적 콘텐트가 잘 팔리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선 현실보다 훨씬 양극화된 여론이 형성된다”며 “지지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한 정당 입장에서는 밋밋한 중도보단 선명한 콘텐트를 생산해 집토끼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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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적폐청산의 부메랑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양당 간 적대 구도는 강화했다. 사단법인 정치발전소의 박상훈 학교장은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양당제는 문재인 대통령 책임”이라고 말했다.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한국당이 반대쪽 극단에 서는 전략으로 활로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제3 정당의 출현으로 정치가 중도로 이동하는 ‘온건 다당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탄핵과 촛불 혁명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독점하려 하면서 탄핵에 동참했던 제3정당과 연합하는 온건 다당제가 실패했다. 이게 극단적 양당제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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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아직 먼 선거
전국구 선거가 없다는 점도 집토끼에 집중하는 이유로 꼽힌다. 중도 표심이 주요 변수인 총선과 대선이 아직 1년 넘게 남아서 당장은 중도 확장보단 핵심 지지층을 단속하는 게 더 실속이 있다는 것이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선거가 임박하지 않은 시점에는 언제 변할지 모를 중도층보다 활발하게 의견을 표출하는 유권자인 양극단에 구애하는 게 지지율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성지원·남궁민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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