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탕, 일본산이냐 러시아산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9. 2.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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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일부 언론의 ‘생태탕 판매 금지’ 보도로 때아닌 생태탕 원산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잡힌 명태의 모습. 고성/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생태탕 판매 금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달 22일부터 국내산 명태 포획을 전면 금지한 데 이어 지난 12일부터 육상단속 전담팀을 꾸려 횟집 등에서 발생하는 불법 유통 행위를 집중 단속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적발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며 ‘으름장’도 놓았습니다. 일부 누리꾼은 “생태탕 판매 자체가 금지됐다니…” “생태탕 식당들은 어쩌라고…” 등의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도 ‘생태탕 판매 금지’가 올랐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해수부는 즉시 보도자료를 내어 “일부 언론이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음식점에서 생태탕 판매가 금지됐다는 보도를 내보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습니다. 해수부는 “국내산이 아닌 외국산 명태를 활용한 생태탕의 유통·판매는 가능하다. 금지 조치는 국내산 명태의 어획과 판매에 대해서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소동은 언론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해수부가 지난 11일 누리집에 올린 보도자료를 보면, 육상단속반을 꾸려 유통·소비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도 지도·단속한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명태’나 ‘생태’라는 단어는 단 한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생태탕 판매 금지”라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지난달 22일부터 국내산 명태 조업이 전면 금지된 데 이어 해수부가 식당 등에서 집중 단속을 한다고 하니 앞으로 생태탕도 먹을 수 없다는 논리였을 겁니다. 결국 이번 소동은 생태탕은 얼리지 않은 신선한 명태를 재료로 쓰니 으레 ‘국내산’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온 오해 탓입니다.

이미 식당에선 10여년 전에 ‘국내산’ 생태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1981년 10만t을 넘어섰던 명태 어획량은 점차 줄어 2007년 ‘1t 이하’로 급감했고 결국 2008년 ‘제로’를 기록했습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가 먹은 생태탕의 명태는 어디에서 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일본 앞바다에서 잡힌 명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의 무역통계서비스를 확인해보면, 지난해 수입한 생태의 96.8%가 일본산입니다. 그다음이 캐나다산(1.8%)과 러시아산(1.4%)이었습니다. 잡아서 바로 얼린 동태는 거리가 멀어도 상관없지만 냉장 상태의 생태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가까운 거리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동태는 96.6%가 러시아산이고 일본산은 1.4%에 그칩니다.

이렇게 우리가 먹는 생태탕 대부분이 ‘일본산’ 명태를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엔 ‘생태탕 원산지 논란’이 불붙는 분위기입니다. 누리꾼들은 “내가 먹던 생태탕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일본산이었다니. 앞으로는 생태는 절대 먹지 말아야겠네” “생태가 다 일본산이라는 것에 충격받았음”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산 생태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뒤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위험이 커지자 대형마트 등이 한동안 수입을 중단하면서 식탁에서 자취를 감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산 생태를 주로 취급하던 생태탕집이나 횟집들은 문을 닫거나 주력 메뉴를 대구탕이나 동태탕 등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일본산 생태탕이 부활한 셈입니다. 그나마 생태탕집 원산지 표시에 ‘일본산’이라고 표시한 곳은 양심적인 곳입니다. 방사능 검사를 통과한 생태만 수입한다고 하니 정부를 믿어봐야죠.

하지만 단골인 생태탕집이 ‘러시아산’ 생태를 쓴다고 하면 한번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생태 가운데 러시아산은 1.4%에 불과합니다. 반면 동태는 96.6%가 러시아산입니다. 단골 생태탕집이 원산지를 정확하게 표시했다고 가정하면, 정말 어렵게 구한 러시아산 생태를 재료로 쓰거나 러시아산 동태를 해동해 생태로 팔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동태는 생태에 견줘 살이 퍽퍽하다고 하지만 해동을 잘 시켜 탕으로 끓이면 일반인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산물 원산지 표시를 관리·감독하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도 “품질관리원은 ‘원산지 표시를 했느냐’와 표시를 했다면 ‘거짓으로 했느냐’를 단속할 뿐이다. 러시아산 동태를 해동해 생태로 파는 행위는 단속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칼칼한 국물이 생각나는 아침. 꺼림칙한 일본산 생태탕을 먹느냐, 속는 셈 치고 러시아산 생태탕을 먹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박수혁 전국2팀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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