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절대 고리'가 사라진다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2019. 2. 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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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니의 '마지막 선물'이 밝혀낸 비밀
토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큰 고리를 가지고 있다. 밀도가 높은 주요 고리가 토성으로부터 약 8 만km까지 퍼져있다. 고리는 수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에서 수 m에 이르는 입자들로 구성돼 있는데, 대부분이 얼음이고 암석과 먼지도 섞여 있다. Exploration Production Inc

토성의 고리는 토성 자신의 너비만큼이나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암석과 먼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얼음 입자로 구성돼 태양빛을 받아 빛나기까지 한다. 태양계 내의 ‘절대 반지’, 아니 ‘절대 고리’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 토성의 고리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17년 토성 탐사선 ‘카시니’의 마지막 임무였던 ‘그랜드 피날레’에서 결정적 단서가 나왔다.

모든 어린이가, 아니 사실은 그럴 기회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토성을 그릴 때 ‘고리’를 떠올린다. 그러나 ‘고리의 제왕’ 토성이 고리를 가진 유일한 행성은 아니다. 가까이 태양계만 보더라도 목성, 천왕성, 해왕성 등 고리를 가진 행성이 많다. 이제는 왜소행성으로 분류된 명왕성을 제외한다면, 여덟 행성 중에 절반이 고리를 가진 셈이다. 좀 얇긴 하지만.

태양계 밖 ‘슈퍼 토성’이 있다?

우주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고리의 제왕은 더욱 늘어난다. 2012년 에릭 마마젝 미국 로체스터대 물리천문학과 연구교수(현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외계행성프로그램 부수석)팀은 지구에서 430여 광년 떨어져 있는 별 ‘J1407’의 주위에서 토성보다 더 큰 고리를 가진 행성 ‘J1407b’를 찾아냈다.

최근 업데이트 된 연구에 따르면 J1407b의 고리는 토성 고리보다 약 200배나 넓다. doi:10.1088/0004-637X/800/2/126 J1407b가 목성보다 40배가량 큰 행성임을 감안해도 어마어마한 고리를 가진 셈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J1407b를 ‘슈퍼 토성(Super-Saturn)’이라고 부른다(입장 바꿔 J1407b에 사는 외계인이 있다면 이들은 태양계의 토성을 ‘꼬마 J1407b’라고 부를지도!).

슈퍼 토성은 많은 것을 일깨워줬다. 첫째, 고리가 있는 행성은 태양계 밖에도 많을 수 있다는 것. 둘째, 고리는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천문학자들은 J1407b의 거대한 고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옅어지다가 수백만 년 뒤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모(母)항성(J1407)이 나이가 1600만 년에 불과한 젊은 별이기 때문에, J1407b의 고리가 새로운 위성의 산실로 쓰인 뒤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생성 과정에서 소멸의 힌트를 얻다

‘고리 비’ 어떻게 발견했을까 - 미국 연구팀은 토성의 이온층을 이루는 삼원자수소 이온(H₃+)의 밝기가 위도마다 다른 것에 착안해 ′고리 비(ring rain) 현상을 밝혀냈다. 전하를 얻은 작은 고리 입자가 자기력선을 따라 중위도 지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기로 떨어진 입자와 대기 중 H₃+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고리 비가 내리는 곳에서는 H₃+의 밝기가 어둡게 나타난다. 자료: NASA Goddard

행성이 생겨날 때와 비슷하게, 고리를 이루는 입자들은 주변에서 씨앗 역할을 하는 물질로 몰려가 위성으로 자란다. 실제로 J1407b의 고리 간극에는 그런 위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리를 이루는 입자 대부분이 위성으로 자라면 고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행성의 고리가 모항성 주위에 있는 행성(이 만들어지고 남은) 부스러기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이론은, 토성 고리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첫 번째 가설이다.

두 번째 가설은 혜성이나 소행성과 같은 작은 천체가 행성에 근접했다가 깨지면서 그 잔해물이 고리로 자랐다는 이론이다. 태양계의 나이에 비하면 인류가 태양계 내 행성을 관측한 역사는 극히 짧지만, 우리는 작은 천체가 목성에 충돌한 사례를 두 번이나 목도했다.

1994년 7월에는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이 목성에 근접했다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마침내 충돌하는 모습의 전, 중, 후를 모두 볼 수 있었다. 만약 이때 조각난 혜성 잔해가 목성에 충돌하지 않고 목성 주위를 도는 궤도에 편입됐다면, 그러다가 다른 위성이나 고리 입자에 부딪혀 연쇄적으로 파편화됐다면, 목성 고리의 구성원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렇게 생겨난 작은 입자들이 안정적으로 궤도운동을 하며 고리의 일부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말이다.

토성 고리의 기원을 설명하는 최근의 가설은 토성의 위성이 토성에 흡수되고 남은 흔적이 고리라는 이론이다. 위성은 규산염으로 된 암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토성 궤도의 낮은 온도 때문에 표면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이 위성이 토성 쪽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오다가 ‘로슈한계’라는, 위성의 중력보다 토성의 기조력이 더 강한 지점까지 다가오면 위성이 부스러진다. 이 파편 가운데 무거운 암석 부스러기는 자체 중력 때문에 빠르게 토성에 흡수되지만, 가벼운 얼음 입자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혹은 흡수되지 않고 토성 주위를 도는 고리로 남을 수 있다.

‘고리 비(ring rain)’의 존재를 밝히다

카시니는 마지막 임무인 ‘그랜드 피날레’를 통해 초당 100톤(t)의 고리 입자가 토성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NASA JPL

그렇다면 생겨난 고리의 입자는 영원히 안정적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2018년 11월, 제임스 오도노휴 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연구원팀은 1억 년 뒤 토성의 고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미국행성과학회 저널인 ‘이카루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토성의 고리를 이루는 입자들이 엉뚱한 경로를 따라 토성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중력 때문이라면 입자들이 토성의 적도 지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doi: 10.1016/j.icarus.2018.10.027

연구팀은 2011년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 정상에 있는 켁(Keck) 천문대에서 지름이 10m인 천체망원경의 근적외선 분광계(NIRSpec)로 토성을 관측했다. 그 결과 삼원자수소 이온(H3+)의 방출선(파장 3.953μm, 3.622μm)의 밝기가 위도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H3+는 토성의 이온층을 이루는 주요 성분 중 하나로, 토성 대기가 태양빛을 받을 때 생겨난다. 그런데 관측해보니 H3+의 밀도가 위도에 따라 들쑥날쑥했다. 단순히 태양빛의 효과로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2013년의 관측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었다.

토성 고리에 있는 얼음 입자의 크기는 수십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에서 수 m에 이른다. 그중 아주 작은 입자들은 태양빛을 받거나 미소유성체가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플라스마 구름을 만날 때 전하를 얻게 된다. 전하를 얻은 입자는 자기력선에 붙들린다. 자기력선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동시에 중력이 이끄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며 자기력선이 토성과 만나는 중위도 지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빨려 들어간 고리 입자는 비처럼 토성 대기로 떨어진다. 이것을 연구팀은 ‘고리 비(ring rain)’라고 명명했다. 전하를 띤 고리 입자가 이온층의 H3+과 화학작용을 하기 때문에 고리 비가 내리는 곳에서는 H3+의 방출량이 줄어든다.

연구팀은 토성에서 H3+방출선이 어둡게 보이는 위도대를 지나는 자기력선을 따라가 보면 토성의 고리가 존재하고, 반대로 H3+방출선이 밝게 보이는 위도대를 지나는 자기력선을 따라가 보면 토성의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 간극 부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고리에서 나온 자기력선이 토성 표면과 만나는 부분에서 고리 비가 내리는 현상을 H3+방출선이 어둡게 보이는 현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토성 탐사선 ‘카시니’의 마지막 선물

고리를 가진 행성은 우주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지구에서 센타우르스자리 방향으로 434광년 떨어져 있는 외계행성 ‘J1407b’는 반지름이 약 9000만km에 이르는 거대한 고리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J1407b 상상도다. Ron Miller

2013년 관측 결과는 2011년보다 H3+방출선의 명암 대비가 더 컸다. 계절이 바뀌고 있어서였다. 토성의 공전궤도면에 대한 자전축의 기울기는 약 27도다. 따라서 계절에 따라 고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가 넓게 보였다가를 반복한다.

1610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토성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이유도 바로 그때가 하필이면 고리가 넓게 보이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망원경으로는 고리의 형태를 명확하게 분간할 수 없었으니, 갈릴레이가 토성의 양옆에 붙은 게 ‘귀’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을 법 하다.

2013년은 2011년보다 토성의 고리가 태양빛을 더 많이 받는 각도였다. 자외선에 의한 광이온화가 더 활발해졌고, 고리 비는 더 세졌으며, 토성의 가로줄 무늬는 더 뚜렷해졌다. 연구팀은 대체 얼마나 많은 입자가 고리에서 토성으로 빨려 들어가는지 궁금했다.

그 양을 계산하는 데에는 카시니가 결정적인 답을 줬다. 2004년 토성 궤도에 도착한 이래 무려 13년 동안 토성과 그 위성들에 대한 아름답고 놀라운 사진과 자료들을 우리에게 보내줬던 카시니가 또 한 번 토성의 역사를 다시 썼다.

2017년 과학자들은 카시니의 마지막을 장식할 멋진 임무로 토성과 고리 사이를 넘나드는 궤도를 선택했다. 고리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탐사선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동안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카시니는 ‘그랜드 피날레’로 토성과 고리 사이에 있는 2400km의 틈새를 22번이나 드나드는 고난도 비행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 임무에서 우주먼지분석기(CDA)를 이용해 수십nm 크기의 입자들이 고리 표면뿐만 아니라 토성의 중위도 지역에도 몰려 있는 것을 알아냈다.

카시니의 임무는 초당 무려 100톤(t)의 입자가 고리 비의 형태로 토성에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오도노휴 연구원팀은 이런 속도라면 토성의 고리는 서서히 얇아지다가 약 3억 년 뒤에는 소멸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뿐만 아니라, 카시니는 마지막 임무를 통해 고리의 질량도 알아냈다. 그랜드 피날레 이전의 카시니 궤도는 A고리(주요 고리 중 가장 바깥쪽 고리) 밖이었기 때문에 중력을 측정하면 토성의 적도 부분과 고리의 영향이 섞인 결과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고리 안쪽으로 진입하면서 토성 자체와 고리의 중력 효과를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사피엔자대 연구팀은 이를 통해 고리가 생겨난 게 길어야 1억 년 전이라는 연구결과를 1월 17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토성의 나이가 약 45억 년이니 고리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셈이다. 관측 결과 토성의 주요 고리인 A, B, C 고리의 질량 총합은 위성 ‘미마스’의 0.41배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고리가 작은 위성들의 궤도와 주고받는 영향, 초기에 순수한 얼음 상태에서 외부 물질이 섞여 들어간 비율 등을 토대로 토성 고리의 나이를 다시 계산해냈다.  doi:10.1126/science.aat2965

이와 같은 연구들은 행성의 고리가 언제, 어떻게 생성되고 사라지는 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고리는 우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영원불멸하지 않다. 깜빡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처럼 우주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고리를 우리가 지금 태양계에서 감상하고, 탐사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까.

※필자소개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행성 천문학자. 경희대 우주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달 표면의 우주풍화 현상과 편광 특성을 연구하며 모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 : 과학동아 2월호 [SPACE] 토성의 ‘절대 고리’가 사라진다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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