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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와대 앞에 간 스쿨 미투 "페미니스트 대통령 어디 갔습니까"

입력 2019.02.16. 17:26 수정 2019.02.1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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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미투, 청와대 앞에서 집회 열고 "대한민국 정부 응답하라" 외쳐
학교·정부 방관 속 문제 해결 나선 학생들 '2차 피해' 지적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등 구체적인 방안 제시
‘스쿨 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 집회 참가자들.

용인외대부고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김나윤씨는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시절 학내 성폭력 문제를 고발했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와 경찰은 김씨에게 “네가 예민했던 것 아니냐” “피해 사실은 없던 일로 하자. 어차피 처벌이 어렵다”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눈을 감으면 꿈속에서 경찰과 단둘이 있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학교와 경찰은 왜 저의 간절했던 손을 잡아주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1년 전, 스쿨 미투가 시작된 이래 전국 80여개 학교에서 고발이 터져 나왔다.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충청, 인천 등에서 집회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에 대한 성적착취와 성적 학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사전 심의에 초청하기도 했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대표, 장보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 청소년 당사자 3명이 2월4일부터 9일까지 제네바를 찾아 한국의 학내 성폭력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였다. 가해 교사들이 경찰에서 줄줄이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학교에서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12월21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학내 성폭력 표본조사 △양성평등 교육강화 등 겉핥기식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도 끊이질 않았다. 피해자들은 학교에서 같은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2차 가해를 당하고, 심지어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에게도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스쿨 미투’ 운동을 벌여온 당사자들을 비롯해 청소년 단체 22곳, 시민단체 등 공동주최 49개 단체가 모였다.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페미니스트 대통령 어디 갔습니까”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에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예비)교사에 대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 “학교와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발언자들은 “학교와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학교와 정부가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리는 동안 학생들은 성폭력과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나윤씨는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이고, 적절한 환경을 만들고 우리에게 귀를 기울일 의무는 학교와 나라에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광남중학교에서 스쿨 미투에 참여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발언자는 광남중학교에서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은 도덕 교사의 사례를 언급하며 “해당 교사가 교육청 감사에선 대부분의 추행 사실과 성희롱 발언을 인정했음에도 경찰은 그의 추행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해 교사가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걸린 5달 동안 피해 학생들은 욕설, 죽이겠다는 협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렸다”며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길고 끔찍한 악몽을 꾼 것”이라고 토로했다.

북일고등학교에서 온 이유진씨도 학교의 방관 속에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학교는 많은 가해자 중에서 단 1명을 지목해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사건을 축소했다”며 “상담교사, 경찰관, 변호사 등이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남성 중심적 해결 과정 속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쟤는 페미니스트라 불순한 의도로 미투를 한 것”이라는 등의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모임 대표는 정부가 책임 있는 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씨는 “문재인 정부는 고발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성평등한 학교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스쿨 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실제 가정통신문 내용을 가져와 소개하는 참가자들.

■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등 실질적 대책 필요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에 구체적인 방안들도 제시했다. 먼저 이들은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생이 충분히 응답할 시간을 주고, 익명성과 안전성은 물론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나윤씨는 “스쿨 미투는 개별적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런 구조에 책임을 지고 적극적인 전수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비)교사에 대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학내 성폭력 고발은 대부분 교사에 대한 고발로 학생과 교사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물론 교사의 재교육 필요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현재 교육대학교에서 3년째 공부하고 있는 예비교사 여름(활동명)은 “교육대학교 안에서도 성폭력적인 문화가 만연하다”며 “이들이 교사가 됐을 땐 교사로서의 권력에 힘입어 폭력적인 행동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학교가 평등한 공간이 돼야 교사들도 안전할 수 있다”며 “교사들에 대한 꾸준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립학교법 개정 요구도 있었다. 국공립 교원과 달리 사립학교 교원은 징계 권한이 학교법인에 있어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돼왔다는 지적이다. 문지혜 인천페미액션 활동가는 “인천에 있는 10개 학교에서 스쿨 미투가 있었고 이 가운데 5곳이 사립학교”라며 “교사들은 재단에 충성하고, 성 비위 교사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과 은폐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씨는 “국회가 법령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사립학교 학생들도 스쿨 미투 이후 성평등한 학교를 체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1시30분께부터 시작돼 오후 4시께까지 이어졌다. 약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페미니즘 학교를 만들자” “스쿨 미투가 학교를 바꾼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은 ‘스쿨 미투 1년,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해야 합니다’라는 성명서를 읽은 뒤 집회를 마쳤다. 이들은 이 성명서를 교육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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