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록 안 남고 녹음도 안돼..불편해도 '보이스톡' 뜬다

김기정 입력 2019.02.17. 11:01 수정 2019.02.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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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근무하는 A 변호사는 최근 대학 동기인 검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친구가 휴대전화 메신저 카카오톡의 무료대화 서비스인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A 변호사가 보이스톡을 통해 연락한 이유를 묻자 검사 친구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통화기록 감추려 '보이스톡' 유행
보이스톡 무료 대화 화면엔 통화 '녹음 기능'이 빠져있다. 상대방에 통화기록이 남지 않고 음성 녹음도 되지 않아 보안에 민감한 사람들 사이에 보이스톡이 유행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최근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서 휴대전화 메신저의 무료대화 기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이 인기다. 전화 대신 보이스톡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연 보안 때문이다. A 변호사는 "보이스톡은 데이터로 통화가 이뤄져 기록이 남지 않고 녹음기능도 없다"며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사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기록은 사정당국이 수사에 나섰을 때 피의자에 대해 가장 먼저 확보하는 내역 중 하나다. 경찰 출신인 백기종 경찰대 외래교수는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통화내역과 기지국 위치 등을 확인하는 건 수사의 가장 기본"이라며 "사건 대상자가 어디에 있었고 누구랑 통화했는지 등을 확인한 다음 수사를 진행하면 수사가 한층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톡 휴대전화 화면 캡쳐 모습. 대화 시간만 기록에 남고 녹음 기능도 없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유추하기 어려워 보안에 민감한 사람들 사이에 보이스톡이 유행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이와 관련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강연은 유명하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11월 서울 광진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여러분은 절대로 사고를 치면 전화기를 빼앗기면 안 된다"며 "전화기에는 여러분의 인생 기록이 다 들어 있다. 어디서 전화했는지 언제 몇시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디서 뭔 사진을 찍었는지 싹 다 본다. 이거 하나만 분석하면 여러분들이 이 전화기를 산 이후로 어디서 무슨 짓을 몇시에 뭘 했는지 다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유명클럽 '버닝썬'과 관할 경찰의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관련자들의 통화내역부터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청와대가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을 감찰할 당시에도 비위 혐의 확인을 위해 통화내역을 먼저 들여다봤다.


광범위 수사·감찰에 "알아서 몸조심"
이렇다 보니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메신저의 데이터 통화를 쓴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보이스톡을 자주 사용한다는 사정당국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과 관련한 검찰 수사와 공무원에 대한 감찰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다 보니 알아서 몸조심에 나서는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14일 오전 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 산하 특별감찰반원이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폭로전도 보이스톡 사용을 부추기는 단초가 됐다. 김 전 수사관은 민감 정보의 언론 유출과 관련해 청와대 특감반이 외교부와 기재부 소속 공무원에 대해 감찰에 나선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당시 특감반은 감찰 대상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받아 통화 내역을 비롯한 민감한 개인 정보를 대거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도 보이스톡 사용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야당 소속 국회의원실에 근무하는 비서관은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국회의원에게 비공식 업무보고 할 때도 보이스톡을 종종 이용한다"고 말했다. 녹음을 피해 기자들에게 보이스톡으로 연락하는 정치인도 있다. 둘 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대해 "법을 어기는 것을 막아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 편법을 쓴다"는 비판 목소리도 적지 않다.


텔레그램은 이미 고전…"앞장서 편법 쓴다"는 비판도 나와
보이스톡이 유행하기 전에도 통화기록을 숨기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차명 전화, 이른바 '대포폰'의 사용이다. 차명 전화의 경우 외국인 명의의 선불폰을 여러 대 개통해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정당국 관계자는 "차명 전화는 들고 다니기 번거로운 데다 자주 사용할 경우 수사 과정에서 실사용자가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국정농단' 사건과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도 여러 피의자의 차명 전화 사용이 특검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캡처를 할 수 없고, 정한 시간대별로 대화 기록 자동 삭제가 가능하다. 김민상 기자
메시지 보안을 위한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 사용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 전 수사관의 폭로로 청와대 특감반이 텔레그램을 통해 수시로 업무지시와 보고가 이뤄진 게 알려졌다. 앞서 2016년엔 수사 보안을 위한 명목으로 강남경찰서 경정 이상 간부들이 한꺼번에 '텔레그램 망명'을 시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프로그래머가 개발하고 독일의 한 업체가 운영 중인 무료 메신저 서비스로 화면을 복사하는 캡처(capture) 기능도 제한할 만큼 보안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김동원씨와 텔레그램은 물론이고 미국 IT업체가 개발한 시그널 메신저도 사용했다. 보안 전문가들은 시그널 메신저가 텔레그램과 비교해 암호화 수준이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 보이스피싱 같은 일반 범죄 집단들은 중국에 기반을 둔 메신저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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