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특수군 증거라는 '5·18무명열사 5명'은 누구..DNA통해 가족확인 가능
[경향신문] 만 네 살로 추정되는 아이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북한군 특수부대원’으로 지목됐다. 지난 8일 국회에서 5·18모독 공청회를 연 지만원씨 등 5·18왜곡 세력들이 이름없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묻힌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이는 1980년 5·18당시 광주 남구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5·18직후 시립묘지였던 옛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너무 작았던지 쌀 포대가 관을 대신했다. 이 아이처럼 ‘무명열사’로 5·18묘지에 잠든 희생자는 모두 5명.
지씨 등은 이들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 증거’라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5·18당시 시신들의 신원이 뒤바뀌거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혼란스런 상황에서 11구의 시신이 ‘무연고자’로 처리됐다.
이 시신들의 일부가 가족을 찾을 수 있게 된 건 2002년 시립묘지에서 5·18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전자분석을 통해서 였다. ‘행방불명자’ 신고를 한 가족들과 DNA를 비교해 6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일부는 공수부대가 사살 후 암매장 하면서 일부러 신분증 등을 회수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5명은 여전히 가족을 찾지 못했다. ‘북한군’으로 지목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가족을 찾는게 중요하다. 2002년 전남대 법의학교실의 유골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무명열사 5명을 추적해 봤다. 유품과 유골에는 가족이라면 알 수 있는 일부 단서가 남아있다.
이들의 나이는 유골의 치아 마모도 분석 등을 통해 4세, 16세 전·후, 20대 초반, 30대 중반, 50대 중반 으로 추정됐다. 법의학자들은 “치아 마모를 이용한 나이 추정은 어릴수록 정확하다”고 했다.
4세 남자 아이의 사망 원인은 ‘총상’ 이었다. 광주 남구 효덕동 야산에 묻혔다가 1980년 6월7일 발견됐다. 시신을 검안한 의사는 “발견되기 10∼12일전 목 왼쪽 뒷부분에 총을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이는 분홍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이의 매장 경위는 당시 검찰 등이 작성한 희생자들의 시신 검시 서류에 일부 남아있다. 발굴에 참여했던 경찰관은 “30대 여성이 군 지프차에 싣고 와서 인성고등학교 앞산에 매장하고 돌아갔으며 사망자는 여자용 밤색 스웨터에 쌓여 있었다. 그 안에 1000원짜리 1장이 들어있었다”고 진술 했다.
16세 전·후로 추정된 두 번째 무명열사는 총탄이 복부를 관통해 숨졌다. 유품은 붉은색 양말이 전부다. 하지만 유골에서 특징이 있었다. 앞니가 빠진 것으로 추정됐고 윗니에서는 금니 1개가 발견됐다. 유골을 분석했던 법의학자들은 “충치 등이 심한 청소년을 치과에 데려가 치료해준 가족이 있었던 것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20대 초반으로 추정된 세 번째 무명열사는 파란색 체육복 상의와 교련복 등이 유품으로 남아있다. 체육복 가슴 부위에는 학교 마크가 찍혀있다. 당시 광주의 숭의실업고 체육복으로 추정된다. 마크의 둥근 원은 공업계 고등학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톱니바퀴다.
30대 중반의 네 번째 무영열사는 별다른 유품이 없다. 다만 그의 유골을 감정 과정에서 척추에서 4∼5개의 가느다란 스테인리스 철사가 발견됐다. 철사의 끝은 돌려 묶여 있었고 연결부위는 가는 고무관이 감싸고 있었다. 법의학자들은 스테인리스 철사가 의료용 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생전에 척추 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섯 번째 무명열사는 50대 중반으로 추정돼 가장 나이가 많다. 군복바지를 입고 있던 이 남성은 왼쪽 팔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 금속 재질의 이 시계는 몸체와 줄의 브랜드가 달랐다.
몸체 뒷면에는 ‘ELIDA’ 라는 영문이 확인됐다. 시계 전문가들은 “ ‘ELIDA’는 1970년대 프랑스 시계 브랜드”라고 했다. 하지만 금속 줄은 국산인 ‘오리엔트’ 제품이었다. 1980년 시계는 고가였다. 시계 주인은 프랑스 시계의 줄이 끊어져 수리를 못하게 되자 당시 국산인 오리엔트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무명열사 5명의 유품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보관중이다. 이들의 DNA도 보관돼 있다.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다면 DNA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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