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장관 보고' 폴더서 나왔다
"사표 안내면 철저 조사해 고발조치"
김은경 前장관에게 수차례 보고 정황
김 전 장관 "표적감사는 보고받지 않아"
감사 이유도 허위 "구내식당 간것도 털어"
중앙일보 취재 결과 지난달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가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산하기관 임원 조치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환경부 감사관실 컴퓨터의 '장관 보고용 폴더'에 담겨 김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됐다고 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와 관련해 환경부가 작성한 문건이 김 전 장관 등 윗선에 보고된 정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말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산하기관 임원 사퇴 동항 등이 장·차관님까지 보고되진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문건에는 임기를 남기고 사퇴를 거부했던 김현민 전 환경공단 상임감사와 강만옥 전 환경공단 경영기획본부장에 대해 "철저히 조사 후 사퇴 거부 시 고발 조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달말 김 전 장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며 김 전 장관에 대한 혐의를 좁혀가고 있다. 장관에게 '표적 감사' 내용이 담긴 문건들이 보고된 '디지털 증거'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또한 김 전 감사와 강 전 본부장에 대한 감사가 시작된 계기도 허위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김병준 환경공단 노조위원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안 차관을 만나 두 임원에 대한 기강해이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 전 차관도 메시지를 보내 "당시 감사가 있었는지도 몰랐고 노조위원장을 면담한 기억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검찰 조사에서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환경공단 문건에는 또한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감사''감사 대상자의 대응 수준에 따라 고발 조치 등 적절한 조치 예정''관련 부서 직원에게도 책임 추궁 가능'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환경부 감사관실의 '압력 행사'또는 '직권 남용'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상임감사는 "구내식당에서 업무 추진비를 사용하고 직원들과 간담회를 했던 내역까지 털어와 사퇴 압력을 가했다"며 "오죽했으면 감사를 맡은 박모 서기관이 '이렇게까지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었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에서 시켰던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왜 우리만 당해야 하냐"며 억울함을 표한다고 한다. 박 차관과 김동진 환경부 대변인은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임원들을 몰아내고 새 정권의 낙하산을 꽂는 것이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적폐' 아니냐. 연장선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적폐 청산' 수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임기를 1년 앞두고 퇴진한 이헌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표적 감사 후 사퇴를 강요당한 과정이 정말로 모욕적이었다"며 "현 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내로남불'의 가장 전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조만간 김 전 장관을 추가로 소환해 표적 감사 지시와 청와대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검찰은 지난 15일 피고발인 신분으로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을 조사했다.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과 조국 민정수석도 소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릴 수 없다"며 "국민적 관심과 의혹이 있는 사건인만큼 철저히 수사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