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내부 "전략물자 수출제한 블랙리스트, 한국 포함시켜라"

도쿄/이하원 특파원 2019. 2. 1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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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맞대응땐 日도 타격.. 보복 현실화 가능성 낮지만
아베, 4월·7월 선거 앞두고 있어 강경 분위기 몰아갈수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최근 일본에서 거론되는 '대(對)한국 보복 조치'는 우방국 간에 생각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신일철주금의 압류 재산 매각 절차에 실제 착수할 경우 한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본 언론을 통해서 시사하고 있다.

특히, 자민당이 반도체산업에 이어서 방위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자의 수출 규제까지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을 금지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이 방위 관련 물자 수출을 제한하더라도 한국의 주요 협력 대상은 미국이기 때문에 우리 방산 업체가 받을 타격은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항공 전자장비나 각종 정밀 부품 등에서 일제(日製)가 일부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며 "미국조차도 이런 정밀 부품은 일본 제품을 상당수 사용한다"고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아베 총리가 지난달 6일 외무성을 비롯한 각 부청(部廳)에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대응 조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부의 모든 기관이 동원돼 한국을 제재할 수 있는 조치를 구체화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아베 내각의 이 같은 움직임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역사적인 문제로 상황이 악화됐는데 이와 무관한 경제 제재를 가하려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현재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이 경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해 불법 점령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제시대 징용 피해자들의 움직임은 삼권분립이 돼 있는 사법부 판단에 따른 것인데, 이와 관련이 없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제재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일본은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일·중 간 갈등이 일 때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과거 한·일 간에는 숱한 갈등이 있었지만, 아베 내각처럼 노골적으로 경제 제재를 위협한 경우는 없었다.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면서 한·일 관계가 냉각됐다. 이에 대해 당시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같은 해 10월 위급한 시기에 서로 돈을 빌려주는 통화 스와프 협정을 종료하는 대응 조치를 했을 뿐이다.

실제 아베 내각의 대한(對韓) 경제 제재 조치가 취해질 경우 우리도 맞대응 조치를 취하면 일본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한국 반도체산업에 필수적인 불화수소 수출을 막으면, 반도체 설비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 자민당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대응 조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변수는 아베 정권이 오는 4월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두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강경 분위기를 몰아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재일 교포들은 '눈에 보이는 보복 조치'보다 '보이지 않는 보복 조치'가 더 무섭다고 말하고 있다. 도쿄의 다른 소식통은 "재일 교포와 단기 체류자를 합칠 경우 약 10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에 살고 있다"며 "일본의 경찰·국세청·소방청에서 한국인에 대해 엄격하게 나올 경우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취업난으로 일본 기업에 취업하려고 하는 젊은 층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회자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미국의 공동 동맹국인 한·일의 관계가 악화하면 결국 중국·러시아·북한으로 연결되는 강권주의 대륙 세력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면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면서 한·일 관계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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