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론 쇼에 불과" 북핵 증인 갈루치, 조셉 윤, 주펑 3인 전망

전수진 2019. 2. 18.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2차 북ㆍ미 정상회담까지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간이다. 북핵 협상에 관여해온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와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그리고 중국에서 북한의 속마음을 잘 읽는 것으로 유명한 주펑(朱峰)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을 만나 전망을 물었다. 갈루치 전 특사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국면에서 제네바 합의를 이뤄내며 해결사로 등장했었다. 윤 전 대표는 현재 북핵 실무협상을 총지휘하는 스티븐 비건 대북 특별대표의 전임자다. 이들은 14~15일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진행한 최종현 학술원 출범 기념 한ㆍ미ㆍ중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전수진·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특별대사가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진행된 최종현학술원 창립기념 세미나 계기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양측 모두 준비 작업이 안 돼 있다. 미식축구에선 경기 시작 직전 ‘2분 훈련(two-minute drill)’이란 걸 하며 주장 격인 쿼터백이 기합을 넣는다. 지금 스티븐 비건이 그 쿼터백 같다.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에서 혼자 맹활약하면서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로드맵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일이 잘못될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왜 실패했는지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데 그럴 물리적 시간이 없다.
-그래도 갈루치 전 특사가 직접 했던 제네바 합의는 내실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지만 내가 한 협상도 결국은 실패였다. 약 9년간 북한의 핵 가동을 멈추게 했을 뿐, 비핵화를 막지는 못했다.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정상 레벨이 아닌 실무 레벨에서 보텀업(bottom up)으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탑다운(top down)이 비핵화 협상에선 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만남은 어떨까.
트럼프는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가 없으면 회담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 기준은 언론이 정할 것이다. 언론이 합의문을 보고 ‘알짜는 어디 있어요?(Where’s the beef?)‘라고 묻는 경우가 또 발생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 비해 하노이에선 비핵화에서 실질적(substantive)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를 북한이 했다고 강조하지만 그건 쇼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조치란 영변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우라늄과 플라토늄 농축과 관련한 모든 시설을 폐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경우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상응조치는.

우선 종전선언 등의 관계 정상화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은 선언이되, 정치적 선언이다. 국제법적으로 어떤 구속력도 없는,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 가능한 것은 제재 완화인데, 미국으로서는 남북 관계에 관련된 것이 우선일 것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인가.
그렇다. 한국이 요청을 하고 미국이 받아들여 주는 방식이 되면 미국으로서도 부담이 덜하다.
-개성공단 재개는.
금강산과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하겠다. 미국이 할 수 있되 한국도 도울 수 있는 방안으로서 적합하기 때문이다. 미국 때문에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입지가 어려운 상황 아닌가.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특히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말인 ‘해를 끼치지 말지어다(Do no harm)’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기하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면보고도, 전문가들도 싫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 그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와 협의도 없이, 당시 국방장관이던 제임스 매티스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ㆍ미 군사훈련을 취소했다. 이건 실질적 진전이 아니라 실질적 양보(substantive concession)다. 이런 일이 하노이에서 재발하면 안 된다. 한ㆍ미동맹을 해치는 일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축을 할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normal)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사장을 맡았던 한미연구소(USKI)가 한국의 지원 중단으로 폐쇄됐는데.

아직도 (자금지원을 중단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그리고 청와대 등 한국 정부에 섭섭하다.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한국학에 대한 열정을 모독하다니 수치스러웠다(ashamed). 다행히 (USKI 산하) 38노스는 스팀슨센터로 옮겼다.
-인터뷰 직후 청와대 방문 예정인데, 관련 아쉬움을 전달할 생각인가.
마음이 너무 아파 그러고는 싶지만 예의에 어긋난 일이기에 참겠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조셉 윤 전 6자회담 수석대표가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진행된 최종현학술원 창립기념 세미나 계기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다. 양 정상의 관계는 진화를 해왔다. 하노이에서도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합의문에 담겨야 할 내용은.
하노이 회담은 지난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의 후속이다. 그만큼 상징성에 그치지 말고 북ㆍ미 양자 관계 개선과 평화와 번영을 위한 분위기 조성,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실질 조치들을 담아야 한다.
-비건 대표가 6~8일 평양 방문 전 강조한 ‘영변 그 너머(beyond Yongbyon)’ 즉 ‘영변+α’까지 가능할까.
영변엔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이 모두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선행해야 할 것은 ‘영변’을 어떻게 정의를 할 수 있는지다.
-윤 전 대표는 어떻게 정의하나.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포함해야 하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지만.
-북한이 그 카드까지 쓸 수 있을까

실질적 협의를 만들기 위해선 그러길 바란다.
-북한 실무협상 전면에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가 나왔다.
좋은 사인이라고 본다. 외무성 출신으로 국무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 등 배경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특성상 결국은 모든 것은 지도자(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있다.
-후임자인 비건 대표는 어떻게 평가하나.
한 번 정도만 만나봤다. 최근 상황은 나도 신문을 보고 안다.
-선배 아닌가.
정부 일이니 비공개로 하는 게 맞다. 비건 대표가 잘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이 이번엔 좀 다른 거 같나.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북한은 언제든 협상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이 어떻게 다를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단, 비관하는 건 이르다고 말하고 싶다. 두 정상이 함께 만나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비관적이라면 왜 만나겠는가. 8개월만의 만남. 우리는 낙관적일 권리가 있다. 얼마나 구체적 합의가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미국이 상응조치로 금강산 관광 재개도 내놓을 수 있을까.

북한이 비핵화 조치로 뭘 제시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문제는 한국인 관광객인 박왕자씨가 북한군에게 피격당해 사망한 사건으로 멈춘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미국이 주도한 제재가 아니라는 점을 차별화해서 접근해야 한다.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 정상화 상응조치는.
두 아이디어 모두 좋다고 보지만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제재 완화다. 북한 연락사무소가 워싱턴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생긴다면 좋긴 하겠다. 그러나 종전선언도 그 정의에 따라 여러 가지가 가능할 수 있다. 우선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로드맵을 구체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


주펑(朱峰)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

주펑 난징대 교수가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진행된 최종현학술원 창립기념 세미나 계기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최소 조건은.

북한이 동창리ㆍ풍계리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에 동의했고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 해체에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관건은 ‘측정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북한은 영변 우라늄 시설 해체와 핵 신고ㆍ사찰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인가.

핵을 통한 통치 정당성 확보라는 근본 입장이 김정은 정권에서 달라졌다는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 대의 ‘협상 게임’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비핵화의 단계를 나눠 보상을 챙기는 ‘살라미 전술’이다. 김정일 정권도 2007~2008년 6자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에 비핵화를 약속하고 영변 냉각탑을 폭파했지만 1년 만에 후퇴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핵 능력은 더 고도화됐고, 아버지에 비해 김정은 앞에 놓인 살라미는 더 커졌다. 핵이 없다면 북한은 체제 보장은 물론 통치의 정당성, 세습을 위한 도구를 잃게 된다.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는다고 느끼기 전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란 얘기다.
-북한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정은은 비핵화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만큼의 인센티브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계속 정상회담만 해서는 핵 폐기로 가는 문을 열 수 없는 이유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정책의 의미를 가지려면 경제적 인센티브가 뒤따라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할 때마다 미국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해 북한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제재 완화에 있어 미국이 완강한 입장이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미ㆍ중 무역분쟁이 북한 비핵화에 미칠 영향은.

중국의 대북 정책은 현재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당장 미국과의 무역분쟁이 북한 이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북한과 관련해 미국이 중국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미국은 중국을 경쟁자로 여긴다.
-비핵화 동력을 하노이 회담 이후에도 이어가려면.

비핵화는 하룻밤에 이뤄질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이를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북한의 비핵화는 중국, 한국, 일본, 미국 등 역내 다수 국가의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다. 한ㆍ중 관계도 냉각된 상태인데, 정상 차원의 높은 레벨의 정치적 공조가 이뤄지길 바란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