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드는 외국인.. 조국 버리는 한국인 [심층기획]

정필재 입력 2019. 2. 18. 09:52 수정 2019. 2. 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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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왜 오나..첨단 IT기술 등 글로벌 시장서 인정.."BTS의 나라" 외국인들 호기심 커져..최저임금 인상 등 일자리 영향도 한몫 / 한국인 왜 떠나나..국내 산업구조 기술집약적으로 변화..일자리 양극화 심화 '탈출현상' 확산..공직자 자녀 등 이중국적 논란도 계속

외국인은 우리나라로 몰려드는 반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국민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1만4254명이었고, 우리 국적을 포기한 국민(국적이탈+국적상실)은 3만3594명에 달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이방인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 체류 인원은 236만7607명으로 10년 전인 2009년(116만8477명)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외국인 체류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수치다.

국적변경신청도 증가세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귀화 신청을 한 외국인은 모두 2만5014명으로 집계됐고, 이 가운데 56.9%는 한국사람이 됐다. 혼인을 통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이방인도 12만9028명에 달했다. 귀화를 신청한 사람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의 숫자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관광이나 여행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단기 체류 외국인은 10년 전 24만7590명에서 지난해 67만9874명으로 많아졌고,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도 2013년 8만1847명에서 지난해 16만671명으로 증가했다. 우리 정부의 허가 없이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불법체류자 숫자도 24만명으로 역대 최다이다.

정작 우리 국민의 국적 포기는 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적을 이탈한 국민은 모두 6986명이었다. 국적 이탈이란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이 한국인임을 포기하고 해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국적이탈자는 2015년 937명에서 △2016년 1147명 △2017년 1905명 △2018년 6986명으로 해마다 증가추세다. 

반재열 법무부 국적과장은 지난해 국적이탈자 급증에 대해 “재외동포법이 제정되면서 병역·취업 등의 문제로 우리 국적을 유지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복수국적자의 이탈신청이 몰렸고 이를 한번에 처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상실한 국민은 2만6608명이다. 국적상실이란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이 그 나라 국적을 얻어 우리나라 국적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경우다.

◆“한국 살기 좋아 호감” 국내로… “선진국서 기회 찾자” 해외로

#1. 미국 영주권자인 진스타 최(35)씨는 이달 중 미국 정부에 시민권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최씨는 낯선 외국생활에 지쳐 몇 번이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결국 미국인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최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도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현지 회사에 취업했다. 최씨는 국내 대기업 수준의 급여를 받았고 미국의 식품이나 전자제품, 자동차, 집 등의 가격은 한국보다 저렴해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정원과 차고가 있는 2000ft²(스퀘어피트·약 185㎡) 크기 빌라를 40만달러(4억5000만원)에 구매했다. 최씨는 “미국에서 공부해 서울에 취업하려고 했는데 이제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다”며 “막 태어난 아들 역시 미국 국적을 선택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 인도인 코히누르(33)씨는 미디어 속 한국이 좋아 서울 취업을 꿈꿨고 결국 서울 서대문구의 한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다. 코히누르는 한국어를 배워 우리나라에 정착하길 희망했지만 비자 문제에 발목을 잡혀 지난해 인도로 출국했다. 그는 비자 없이 머무르고 싶은 유혹도 강하게 느꼈으나 ‘재입국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경고에 불법체류를 포기했다. 코히누르는 한국의 장점으로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과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 빠른 통신환경, 깨끗한 거리와 수려한 자연, 신속한 업무처리 등을 꼽으며 입이 마르도록 우리나라를 칭찬했다. 코히누르는 “한국어를 못해도 직원들이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걸어줬고,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해 불편하지 않게 생활했다”며 “반드시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 국민이 떠나는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밀려온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산업구조가 기술집약적으로 진화했고 일자리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한국탈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의 자녀가 발 빠르게 한국을 떠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첫 통일부 장관 후보에 오른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딸과 부인이 미국 시민권을, 아들이 미국 영주권을 가진 점 등이 문제가 되자 자리를 포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사람인 큰딸의 국적 논란이 불거졌고 딸의 국적을 한국으로 변경하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청문회를 통과했다. 현재 강 장관 딸은 우리나라 국적을 회복했고 미국 국적 포기 절차를 밟고 있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딸까지 한국을 떠났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원이나 국민의 사랑을 받은 유명인들도 한국을 떠났다. 최초의 한국 우주인인 이소연 박사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았고, 인기 연예인인 스티브 유(유승준)는 물론 아키야마 요시히로(추성훈), 빅토르 안(안현수) 등 엘리트 체육인들도 병역 등을 이유로 국적을 버렸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버린 한국인의 절반 이상(56.2%)이 미국 국적을 택했다. 우리나라 국적 포기자 가운데 일본을 택한 비율이 16.7%, 캐나다 12.2%, 호주 6.3%로 나타났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좋은 직장과 그렇지 않은 업무의 격차가 벌어졌고, 청년들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만 바라보지만 이런 직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한국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선진국에 나갔고 이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인구 유출이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국민이 한국을 떠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국인은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우리나라 외국인 입국자는 2011년 976만6000명에서 지난해 1563만1000명까지 늘어났고,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과 귀화신청자,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심지어 불법체류자 수도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한국산 첨단 정보기술(IT) 기기는 세계인의 가정에 스며들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방탄소년단(BTS) 데뷔 이후 우리나라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연평균 79만6000명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BTS의 나라’를 직접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단기취업 비자를 받아 우리나라에 입국한 외국 근로자들은 2014년 9302명에서 △2015년 1만2218명 △2016년 1만2920명 △2017년 2만617명 △2018년 2만2618명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고 느끼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고, 우리 국민이 한국보다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아시아 국가들의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최근 성장이 더뎌지면서 이 국가 출신들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려는 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 “고령화 대비 노동력 확보” vs “혜택 많아 역차별”…갈라진 여론

외국인 유입 규모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향한 국민 여론도 갈라지고 있다. 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유입은 노동력 확보와 경제 활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외국인 우대정책에 우리 국민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17일 법무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취업 외국인은 88만4300명으로 조사됐다. 90만개에 육박하는 일자리를 외국인에 빼앗겼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취업한 일자리는 광·제조업(45.8%)이었고, 이어 도소매·음식·숙박업(18.5%)과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16.0%), 건설업(12.5%), 농림어업(5.6%) 등 순이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업종에 취업자가 몰렸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는 외국인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다문화 특별전형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고, 공무원 채용은 물론 어린이집과 산모 신생아 관리 프로그램 등에도 다문화가정을 위한 일부 지원책이 마련돼 있다.

건강보험에서도 외국인이 혜택을 보고 있다. 직장이 없어도 6개월 이상 국내에 머문 이들은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 수혜자가 된다.


외국인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외국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3D 업종에 외국인 노동자가 몰리면서 이들에 대한 평가가 낮아졌고 결국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 늘어나는 불법체류자와 이들의 흉악범죄도 나쁜 이미지를 남겼다. 독일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처럼 외국인 고급인력 유치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관계자는 “외국인 전문인력이라고 해봐야 회화강사나 요리사가 전부일 뿐 연구자나 교수 등 우수 인재 비율은 전체 외국인 근로자의 12%에 불과하다”며 “외국인 고급인력 유치를 위해 가족 동반 입국을 돕고, 이들이 한국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리 정책 보완도 필요하다.

강동관 IOM(국제이주가구)이민정책연구원은 “외국인 유입이 국민경제적인 측면과 노동시장 측면 외에 국민의 삶과 복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다문화 사회 진입에 따른 비용을 고려한 정책개선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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