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무력화' 꼼수..30년차가 신입사원과 월급 똑같아졌다

입력 2019. 2. 21. 05:06 수정 2019. 2. 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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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0.9% 올랐지만 기업들 '꼼수'로 효과 무력화
'기본급 쪼개기' '상여금 월할 지급' 등에 임금동결
"이것은 임금인가 누더기인가" 반발 거세
지난 17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앞에서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무력화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경북 구미의 반도체 회사 케이이씨(KEC)에서 31년째 일하는 이미옥씨는 지난달 월급(설 상여금 제외)으로 신입사원과 동일한 174만5150원을 받았다. 정확히 2019년 월 단위 최저임금과 일치하는 액수다. 30년 넘게 회사를 다닌 이씨가 신입사원에겐 없는 ‘근속수당’(11만1500원)을 받고도 그와 같은 급여를 받게 된 건 회사가 최저임금제 위반을 피하기 위해 만든 ‘직능급3’ 수당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회사는 상여금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각종 수당을 더해 임금을 보전해왔다. 그러나 기본급이 터무니없이 낮다 보니 이씨와 같은 말단 직원들의 급여수준은 각종 수당을 더해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회사는 ‘직능급3’ 수당을 통해 최저임금 미달액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4만7940원을, 이씨보다 기본급이 훨씬 낮은 신입사원은 50만5910원의 ‘고무줄 수당’을 받게 되자 1년차나 30년차나 월급이 같아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올해부터 새로 적용된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이씨의 사례처럼 저임금 노동자의 급여인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5월 개정된 최저임금법에 따라 매월 정기적으로 받는 상여금과 식비·교통비 등 각종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범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원래 최저임금과 별도로 받을 수 있었던 수당과 상여금 등이 최저임금으로 계산되면서 기업들은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 없이도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꼼수’가 가능해졌다.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전국모임)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국지엠(GM) 부평공장 하청업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하청업체, 현대그린푸드, 케이이씨 등 4개 기업의 지난달 월급명세서를 분석해 ‘최저임금의 역습’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발표했다.

2019년 최저임금은 820원(10.9%) 올라 시간당 8350원이다. 지난해 5월 국회의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매달 1회 이상 지급되는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정기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를 넘는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이 비율은 매년 점차 줄어들어 2024년에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체가 최저임금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법률 개정 때부터 제기된 바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대표적인 꼼수는 수당을 활용한 ‘기본급 쪼개기’였다. 최저임금 인상률만큼 기본급을 올리지 않고 인상분을 각종 수당에 반영하는 식이다. ‘성과금’(사실상 상여금)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지엠(GM) 부평공장의 하청업체인 태호코퍼레이션의 경우 올해 기본급을 동결하고, 라인·보건·복지수당 등을 올렸다. 매월 기본급의 100%를 지급하던 성과금은 ‘분기별 성과에 따라 50%를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 결과 지난해 213만4017원을 받았던 이 업체 노동자는 지난달 215만1067원을 받아 최저임금 인상률 10.9%에 한참 못 미치는 1만7000여원 월급이 올랐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올해 기본급이 동결된 한국지엠(GM) 부평공장의 하청업체인 태호코퍼레이션의 월급명세서 비교.

2개월 단위로 받던 상여금을 매달 나눠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무력화한 사례도 있었다. 올해부터 매월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할 경우 이를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하청업체들의 경우 지난해까지 통상임금의 연 600%를 2개월 단위로 지급하던 것을 올해부터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최저임금과 관계없이 받던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면서 임금인상은 남 얘기가 됐다. 기아차 화성공장, 현대차 전주공장,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현대그린푸드 노동자들 역시 상황은 같았다. (▶관련 기사 :‘상여금 꼼수’로 최저임금 무력화한 현대그린푸드)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면서 최저임금 산입을 위해 2~3개월 주기로 지급하던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를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아닌 ‘의견 청취’를 얻도록 했기 때문이다. 취업규칙에서 상여금 월별 지급은 노동자 입장에서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만, 노동자가 사쪽과 대등하게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상의 원칙이 무력화한 것이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역습’에 대해 이청우 전국모임 집행위원은 “지난해 정부와 여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2500만원 전후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 “연봉 2500만원이하 최저임금 불이익 없다”?…사실과 달랐다) 김현제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역시 “숙련노동자의 근속이 인정돼야 하는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회사는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임금을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2024년에는 최저임금에 맞춰 상여금이 지급되는 사업장에선 기본급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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