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일본 외무상의 막말

서의동 논설위원 입력 2019. 2. 21. 20:37 수정 2019. 2. 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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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학생들이 쓰는 은어인 급식체에는 ‘낫닝겐’이란 말이 있다. 영어 단어 ‘not’과 일본어 ‘닝겐(人間·인간)’을 합성한 말로 직역하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인간을 초월한 듯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거나 인간 이하의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쓰인다.

일본어 ‘닝겐’이 한국에 자리잡게 된 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크다. 인간과 대립하는 존재로 신이나 외계인 등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인류를 경멸하는 내용의 대사들도 많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닝겐’은 ‘인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를 경멸하는 뉘앙스가 입혀지면서 한국의 ‘덕후’들 사이에서 은어로 탄생했다.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닌겐’이 맞지만 은어의 세계에서는 실제 발음에 가까운 ‘닝겐’이 통용된다.

‘닝겐’은 소셜미디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대체로 반려동물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려놓고 ‘의인화’할 때 많이 쓰인다. 고양이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 주인의 몸 근처를 맴도는 동영상에 ‘일어나라 닝겐!’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거나, 주인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자판에 발을 올려놓고 방해하는 영상에 ‘닝겐 방해하는 것도 귀여움’이라는 댓글이 붙어 있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닌겐(인간)’이란 말은 자신을 낮출 때나 자기 회사 사람들을 상대방에게 소개할 경우 등에 주로 많이 쓰인다. 일종의 겸양표현인 셈이다. 반대로 상대방이나 타인에 대해 ‘인간’이라고 할 경우 비판이나 냉소를 담은 뉘앙스가 느껴지는 만큼 보통은 쓰이지 않는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지난 20일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일왕 사죄’를 요구한 문희상 국회의장을 가리켜 “한·일의원연맹 의장까지 한 인간이…”라고 발언했다. 고노 외무상의 거친 언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회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인간’이란 표현까지 동원한 것은 무례한 일이다.

한·일관계는 레이더 공방과 뮌헨 회담의 진실공방에서 나타나듯 수습불능의 갈등과 불신에 휩싸여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외교수장 답지 않은 품위 없는 언행이다. 양국의 현실이 참담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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