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미성년 성학대 방지회의'..교황 "구체적 치유책 내야"(종합)

2019. 2. 22.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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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바라는 젊은이들 외침 경청하라"..미성년 보호 위한 21항 지침 발표
피해자 단체 반응 엇갈려..김희중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한국 대표로 참석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미국, 칠레, 호주 등 서구 사회 곳곳에서 과거 사제들이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 학대 사례가 속속 드러나며 가톨릭교회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계가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역사적인 회의에 돌입했다.

교황청은 21일 세계 114개국의 주교회의 의장, 가톨릭 수도회의 대표, 교황청 미성년 전문가 등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바티칸에서 '교회 내 미성년자 보호'에 관한 회의의 막을 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바티칸에서 개막한 '가톨릭 미성년자 보호' 회의 개막식에서 기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24일까지 나흘 간 이어지는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 연설에서 참석자들에게 "정의를 원하는 젊은 사람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문했다.

교황은 "신자들은 우리가 단순히 죄악을 비난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내놓기를 원하고 있다"며 가톨릭 역사상 전례 없는 이번 회의를 통해 미성년자 성 학대라는 교회 내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할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어 "이번 회의를 (성직자들에 의한 미성년 성 학대라는)죄악을 이해와 정화의 기회로 변모시키기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미국을 비롯해 칠레, 호주, 독일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성직자들이 과거에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의혹이 속속 제기되며, 가톨릭교회에 대한 신뢰가 급락하자 해결책 마련을 위해 각국 각국 가톨릭교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주교회의 의장들이 모이는 초유의 미성년자 보호 회의를 소집했다.

21일 미성년자 보호 회의를 앞두고 교황청 성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두 남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자리에 모인 전 세계 가톨릭 지도자들은 회의 첫날부터 피해자들의 사례를 듣고, 그동안 세계 여러 곳에서 미성년자 보호에 실패한 가톨릭교회의 과거를 반성하는 한편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과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국에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광주대교구의 김희중 대주교가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황이 직접 작성한 교회 내 미성년자를 성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21항의 지침도 공개됐다.

해당 지침은 미성년 성 학대 사건이 드러났을 때 취해야 하는 조치를 담은 안내책자를 각 교구마다 갖추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현지의 법 체계에 맞춰 가해자의 구체적인 혐의를 사법 당국에 알리고, 학대 사건에 대한 교회의 조사에 성직자가 아닌 일반인도 포함시키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아울러,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성직 지망자들을 상대로 전문가들의 정신 감정을 거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교황청의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회의가 세계 각국 주교들과 수도원 대표 등 약 200명이 모인 가운데 21일 바티칸에서 개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회의의 조직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보인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는 이 같은 지침을 참석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성년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 우리 삶을 내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아울러 최근 주교와 추기경 등 교회 내 고위 성직자 상당수가 미성년 성학대 사건에 연루돼 당사자들은 물론 가톨릭 전체의 이미지까지 훼손한 일을 염두에 둔 듯, "주교 후보자들에 대한 (성 추문)정보를 교황청에 전달하지 않는 것은 '무거운 범죄'"라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와 중미 등 서로 다른 대륙 출신의 피해자 5명의 진술이 영상으로 방영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신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소개된 이들 피해자 중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은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접근한 가톨릭 사제와 15세부터 성관계를 맺기 시작해 이런 관계가 13년 동안 이어졌다. 해당 신부가 피임 도구를 쓰지 않아 그 동안 3차례 임신했지만, 3번 모두 낙태하도록 강요받았다"고 고백했다.

칠레 출신의 남성 피해자는 "사제로부터 성적으로 학대당한 사실을 교회 당국에 보고했지만, 그들은 나를 거짓말쟁이 혹은 '교회의 적'으로 몰고 갔다"고 고발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러 분들은 '영혼을 치유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영혼의 살인자'나 '믿음의 말살자'들로 전락했다"고 절규했다.

21일 교황청 셍베드로 광장 주변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직자들의 성 학대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젊은이들 [EPA=연합뉴스]

성직자들에 의해 성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나, 이들을 돕는 피해자 단체들은 이번 회의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제들에 의한 성 학대 사건을 추적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bishopaccountablity.org'의 앤 배럿-도일 대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교황이 피해 방지를 위해 구체적인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가 가톨릭을 좀먹는 고질병으로 굳어진 사제들에 의한 미성년 성학대라는 병폐를 해결하는 것은 역부족일 뿐 아니라, 훼손된 가톨릭의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홍보 행사'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소년 시절 신부로부터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피해자이자 피해자 지원단체를 이끌고 있는 피터 이슬리는 교황이 이날 공개한 21개의 조항을 담은 지침과 관련, "지금에서야 대응 지침을 내놓은 것은 우스운 일"이라며 가톨릭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12살에 미국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사제로부터 성 학대를 당한 피해자 필 사비아노는 전날 이뤄진 피해자들과 회의 조직위원들의 만남에서 "가해 사제들의 명단과 이들에 대한 조사 내용을 담은 자료를 전부 공개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이를 교회가 '침묵의 공모'를 깨고 투명하게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피해자 지원 단체를 이끌고 있는 사비아노는 미국 가톨릭 교회 성추문을 폭로한 2002년 보스턴글로브의 취재 과정을 그려 2015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 속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이날 교황청에서 회의가 개막되기 수 시간 전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에서는 미성년 성 학대 의혹을 받고 있는 저명한 사제 헨리크 얀코브스키 신부의 동상이 끌어내려지는 사건도 일어났다. 얀코브스키 신부는 2010년 선종했다.

한편, 가톨릭의 미성년 성 학대 문제는 30년 전 아일랜드 등에서 그 실체가 처음 드러난 이래 세계 각지의 교회에서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며 가톨릭 전체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아동 성 학대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그동안 성 추문에 연루된 사제를 처벌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제 해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인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 재위 내내 사제들에 의한 미성년 성 학대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공격에 시달린 것이 2013년 스스로 퇴위 결정을 내리는 데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교회 내 미성년 성 추문 사건은 교황청 관료 조직인 쿠리아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직접적으로 불똥이 튀며 교황청과 교황의 권위에도 흠집을 냈다.

교황과 교황청 국무원장에 이어 교황청 서열 3위로 평가되던 호주 출신의 조지 펠 재무원장(추기경)은 젊은 시절 본국에서 저지른 미성년자 성 학대 혐의로 현재 쿠리아에 휴가를 낸 채 호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1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스스로도 칠레를 방문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칠레에서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것으로 악명 높은 페르난도 카라디마 신부의 아동 성추행을 은폐한 의혹을 받고 있는 후안 바로스 주교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가 현지에서 거센 반발을 산 것이다.

교황은 이를 계기로 교황청 특사단을 칠레에 파견해 성추행 은폐 의혹을 재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특사단이 제출한 2천300여 쪽 분량의 보고서를 검토한 뒤, 그해 4월에 "신뢰할 수 있고, 균형 잡힌 정보가 부족해 상황을 판단하는데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며 피해자들에게 깊이 사과했다.

작년 8월에는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 출신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가 교황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맹렬히 비판해온 보수파의 일원인 비가노 대주교는 당시 가톨릭 보수 매체들에 편지를 보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직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추기경의 성 학대 의혹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고 주장하며 교황 퇴위를 촉구했다.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매캐릭 전 추기경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여러 건의 성 학대 혐의가 확인되며 지난 주 사제직에서 면직된 인물이다.

미국 가톨릭 교회는 작년 8월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사법당국이 1940년대부터 70년에 걸쳐 가톨릭 사제 301명이 1천명이 넘는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함에 따라, 2002년 보스턴글로브의 폭로 이후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미국 가톨릭 교구는 성직자들이 저지른 성 학대로 피해자들에게 현재까지 30억 달러를 배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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