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꽃피는 무궁화'..사라질뻔한 안동무궁화 살린 '할배'

백경서 2019. 2.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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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때 애국심으로 심은
경북 안동 예안 향교의 안동 무궁화
2010년 고사하기 전 가지 잘라 심어
애기 나무 2그루 3년전부터 꽃 피워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꽃이 지는 일반 무궁화와 달리 한번 꽃이 피면 36시간동안 피어 있어 밤에도 꽃을 볼 수 있는 안동무궁화. [사진 안동무궁화보존회]
“밤에 핀 안동 무궁화 꽃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청초하고 경이로운지 한참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한때 예안향교를 관리하는 전교였던 박원갑(82)씨의 얘기다. 박씨는 3·1운동 당시 애국지사들이 심은 안동 무궁화를 오늘날까지 살아남도록 한 장본인이다. 21일 오후 안동시 화성동 경북향교재단 사무실에서 박씨를 만나 안동 무궁화를 살려낸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동 무궁화는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지는 일반 무궁화와 달리 한 번에 36시간씩 꽃을 피우는 우리나라 재래종이다. 그래서 밤에도 청초한 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안동 무궁화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예안향교에 한 그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415년 지어진 예안향교는 조선 시대 유학 교육기관으로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다. 1919년 예안향교에서 이동봉·이용호·김동택·신응한 네분이 3·1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뒤 애국심의 상징으로 심었다는 것이다. 안동 무궁화는 이러한 내력 덕분에 2004년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됐다.

예안향교에 있었던 안동무궁화 한그루.[사진 안동무궁화보존회]
잘 자라던 이 무궁화는 2010년 말 말라 죽을 위기에 처했다. 박씨는 “무궁화가 최대 100년 정도 산다는 점을 고려해 무궁화 보전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안동 무궁화의 가지와 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예안향교를 관리하는 전교였던 박씨는 부전교였던 고(故) 이기용씨와 함께 시들어가던 무궁화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냈다. 가지를 심어서 식물을 키우는 삽목을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향교 서재의 처마 밑에 모래를 뿌리고 2~3줄로 가지 50개를 심었다. 무궁화가 건조한 음지에서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안동무궁화에서 가지를 잘라 키워낸 박원갑(82) 전 예안향교 전교. 백경서 기자
삽목한 무궁화는 의외로 잘 자랐다. 박씨는 삽목에 성공한 무궁화 대부분을 분양하고 두 그루만 원래 안동 무궁화가 있던 예안향교 명륜당 뜰에 심었다. 이 무궁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권오진(87) 현 예안향교 전교는 “2세 무궁화가 잘 자라 3년 전부터 꽃을 피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박씨는 “안동 무궁화는 7~10월 한 번 꽃을 피우면 36시간 동안 피어 있고, 하늘하늘한 꽃잎이 각자 떨어져 있는 형태”라며 “밤에 핀 꽃을 보면 청초해 눈을 떼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동 무궁화의 존재 사실은 1992년 처음 학계에 보고됐다. 안동시 임동·임하면 일대에 임하댐 건설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75호)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1991년 서울대 임경빈·이영로 교수와 문화재청 관계자가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는 은행나무를 뭍으로 옮겨심었다.

현재 예안향교에 있는 애기 안동무궁화 두 그루. 백경서 기자
교수들은 당시 “안동 무궁화로 불리는 특별한 나무가 있다”는 제보에 따라 예안향교도 찾았다. 두 교수는 예안향교에서 안동 무궁화를 발견한 뒤 자신들의 이름을 딴 ‘이영로·임경빈 무궁화’로 학명을 등록했다. 꽃의 크기가 작다는 뜻에서 별칭은 ‘애기 무궁화’로 지었다.

요즘 애국심이 깃든 안동 무궁화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안동 무궁화보존회가 대표적이다. 안동 무궁화보존회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진구 영남예술대학장은 “수소문 끝에 91년 임경빈 교수가 안동 무궁화의 가지를 잘라 산림청 산하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삽목했다는 사실을 3년 전 알고 연구소에서 세 그루를 분양받아 현재 번식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권오진 예안향교 전교도 “애국심이 깃든 무궁화인 만큼 향교에 있는 무궁화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안동=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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