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누가 사형을 집행할 것이냐" 존치 여론이 말하지 않는 것 [뉴스+]

이창수 기자 2019. 2. 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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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교도관 정신적 고통 심각.. 인권 보호 인식 확산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품성을 가진 18세 이상 45세 이하 남성 2명.’

지난 6일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마약 사범에 대한 사형집행을 공언하면서 스리랑카 교정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1976년 이후 43년 간 중단됐던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선 ‘집행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마지막 사형집행인이 2014년 은퇴한 뒤 몇 번의 채용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한 사람은 교수대를 처음 본 순간 정신적 쇼크로 사직서를 냈고, 또 다른 사람은 채용이 결정됐지만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스리랑카 교정당국이 한 달 급여 최대 208달러(약 23만3000원)와 연금 지급까지 내걸며 사형집행인을 모집하는 신문 광고를 내게 된 배경입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2004년 사형집행을 중단했던 인도에서는 2011년 갑작스레 사형을 집행하는 상황이 되자 집행인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습니다. 당시 여러 우여곡절 끝에 간디 암살범의 사형을 집행했던 집행인의 손자가 “가업을 잇겠다”고 자원하면서 인도 교정당국은 간신히 집행인 1명을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누가 할 것이냐’ 집행의 딜레마

이처럼 한 번 사형을 중단한 국가가 다시 집행을 재개할 땐 ‘누가 집행할 것이냐’는 다소 현실적인 문제부터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간 범죄 억제력이나 범죄자의 생명권, 오판 가능성 등에 가려져 잘 다뤄지지 않지만 사형집행인과 관련한 문제는 사형제 존폐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됐습니다. 문명사회라면 사형집행인, 그러니까 사형을 집행할 교정당국 공무원들의 인권도 보호해야한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제도 살인’이라는 사형제의 차가운 현실을 새삼 일깨우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인구가 각각 13억명, 2억명이 넘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집행인을 구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은 이들 국가가 살생을 꺼리는 불교 문화권에 속한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실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크고작은 트라우마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형을 집행한 집행인(교도관)들의 경우엔 죄책감 등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고 합니다. 사형집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마약에 손을 대거나 심하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사형제 유지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최근 사형집행에 팔을 걷고 있는 일본에서도 사형집행을 참관한 신참 교도관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교도관들이 2만엔(약 20만원)의 수당을 받고 형을 집행합니다. 집행 방법은 교수형으로, 교도관 3명이 들어가 동시에 버튼을 누르면 나일론 밧줄에 목을 맨 죄수가 서 있는 발판이 열리는 방식입니다. 교도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어떤 버튼이 발판을 열리게 했는지 알 수 없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집행’의 잔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7월 ‘도쿄 지하철 가스 테러’의 주범인 옴진리교 교주와 신도 등 6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던 교도관들은 집행 이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도관이나 검사 등 참관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 이외에도 집행 후 시신을 치워야 하는 청소노동자, 응급 상황에 대비한 의료관계자, 사형수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종교인 등도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마주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떠오른 존폐 논란

지난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사폐소위)가 헌법재판소에 사형을 규정한 형법 제41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한다고 밝히면서 사형제 존폐 논의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폐소위 측은 “타인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하고 훼손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생명은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며 “사형 제도 목적이 강력 범죄 예방이라고 하지만 다른 형벌에 비해 효과적인 범죄 억제력이 있다는 가설은 입증되지 않고 있다”며 사형제가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기대와 달리 여론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형제를 당장 폐지하거나 앞으로 폐지하자는 비율은 각각 4.4%, 15.9%에 불과했습니다. 본지가 2016년 수행한 조사에서도 국민 10명중 8명(79.4%)이 사형제를 유지해야한다고 응답했고,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같은 비율이었습니다. 흉악범죄가 대두될 때면 이런 존치 여론이 한층 강화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 수치들에는 사형제와 관련한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이 녹아있을까요. 사형집행이 빈번하던 70∼80년대 교도관들은 ‘몸이 아파서’,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아내가 아이를 임신해서’ 등 각종 이유를 대며 집행에 나서길 꺼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명단에 자기가 들어 있음을 알고 졸도해 집행에서 빠진 교도관도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 전 펼쳐든 신문에서 ‘사형집행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거나 ‘교도관들이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혹은 ‘정부가 교수형을 유지할 지 전기의자형이나 약물주사형을 도입할 지 고민하고 있다’ 등의 소식을 듣는 게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란 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많은 나라들이 사형을 법률적으로 완전히 폐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헌재의 세번째 판단을 앞둔 우리사회도 한번 고민해봐야 할 지점 아닐까요.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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