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아이가 사고 칠까봐" 10대 아들 정관수술시키는 부모들

권승준 기자 입력 2019. 2.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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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의균

"부모가 아무리 감시해도 사고 칠 애들은 다 쳐요. 그럴 바에야 예방하는 게 낫죠."

서울 강남권에서 비뇨기과를 운영 중인 A원장은 "지난달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2명의 정관수술을 집도했다"며 "방학 때면 이런 문의가 몇 건씩 들어오는데 보통은 만류하지만 이번엔 부모와 학생들 본인의 의지가 강해서 수술해줬다"고 말했다. 정관수술은 남성의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차단하는 수술이다.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은 정자 없는 정액을 사정하게 된다. 복원 수술을 받지 않으면 반영구적으로 피임할 수 있는 방법이라서 주로 자녀를 갖길 원치 않거나 충분히 아이를 생산(?)한 남성들이 이 수술을 받는 사례가 많다. 미혼에다 성인도 되지 않은 남성들이 이 수술을 받는 건 극히 드문 사례.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서울 각지의 비뇨기과에선 방학만 되면 아들의 정관수술 시술을 문의하는 부모들의 전화가 밀려들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비뇨기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39)씨는 "심지어 지난달엔 초등학생 아들을 둔 부모가 문의해온 경우만 3건이 있었다"며 "그때마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 아들을 둔 한모(50)씨는 "아들이 여자친구를 만나는데 그 친구가 좀 개방적인 것 같아서 걱정되더라"며 "요즘 애들은 못하게 막는다고 될 게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안전하게 즐기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게 부모가 할 일 같아서 정관수술을 알아봐줬다"고 말했다.

미성년자 아들을 둔 부모들이 정관수술에 관심을 가지는 건 최근 10대들의 성문화가 좀 더 개방적으로 바뀐 탓이다. 10대에 성관계하고 그러다 임신까지 하게 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 10대 임신에 관해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추정한 집계에 따르면 2015~2017년 사이 18세 이하 미성년자 분만은 1399건으로 하루 한 건꼴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 낙태까지 합하면 그 수는 최소 서너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 서울에서 초등학생이 또래 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뒤 임신한 일이 맘카페 등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면서 정관수술 문의가 폭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맘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10대의 임신 뉴스에 "아이들이 학원 화장실이나 옥상에서 만나는데 그것까지 막을 순 없다" "어떤 아이는 돈을 받고 성매매를 하더라"는 등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덧붙여져 부모들의 걱정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한국 정서상 10대 자녀들에게 콘돔 사용 등 제대로 된 피임법을 가르치는 부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비뇨기과 의사 이씨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콘돔 사용법 같은 피임법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포경수술과 비슷한 수술'이라고 대충 넘어가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원천봉쇄(?)하려고 정관수술을 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사자인 10대 자녀보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정관수술을 권하거나 알아보러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비뇨기과 의사가 "미성년자의 정관수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정관수술을 하더라도 나중에 복원하면 별문제 없이 임신이 가능하지만, 늘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복원 수술의 실패 확률도 10% 가까이 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영구적으로 불임이 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정관을 차단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복원 역시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A 원장은 "이렇게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해도 수험생인 고3 기간만 넘길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정관수술을 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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