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 '백수의 왕'이었던 곰, 프랑스·독일서 씨마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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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작 다큐 '곰' 통해 곰과의 공존을 화두로 던진 김진만 PD
북극·시베리아·캄차카 등 13개 지역 로케이션, 이동거리 9만㎞, 5000시간과 300TB에 달하는 촬영분량.
그리고 시베리아 벌판과 험난한 산길 등 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발길을 내디뎠던 2년의 세월. MBC 5부작 다큐멘터리 ‘곰’은 이런 역경 속에서 탄생했다.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역사를 함께 해 온 ‘신화적 동물’ 곰의 다양한 생태를 생생한 UHD 화면에 담아낸 다큐는 인간과 곰의 공존, 이를 가능케 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화두로 던지며 18일 막을 내렸다.
특히 오랜 잠복 끝에 카메라에 담아낸 지리산 올무 반달곰의 ‘기적’은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올무에 한쪽 다리를 잃은 어미곰이 두 새끼를 낳아 키우는 장면은 위대한 자연의 치유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이 밖에 연어를 사냥하는 불곰, 굶주린 채 마을을 배회하는 북극곰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위험천만한 작업은 곰에 미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2년의 세월을 곰에 미친 채 지냈던 김진만 PD(48)를 만났다.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곤충, 위대한 본능’ 등 많은 명품 다큐를 만들어온 그가 또 다른 모험의 대상으로 곰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Q : 왜 곰이었나.
A : "공동제작 건으로 만난 영국 PD가 북극곰 복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고 해서, 우리나라는 반달곰 복원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곰 관련 신화로까지 대화가 이어지다 문득 곰 다큐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 살아온 곰을 통해 환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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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백수의 왕은 곰, 유럽서 사악한 이미지 씌워 대대적 학살
Q : 러시아 소수민족인 우데게족이 곰을 사냥한 뒤 죽은 곰에게 사과하고 신에게 용서를 비는 장면이 있었다.
A : "우대게족은 과거 여진족이다. 세종실록에도 여진족과 곰에 관련한 기술이 나온다. 곰에 납치된 여자가 곰이 된다는 신화가 남아 있다. 곰을 신으로 생각하고 숭배하지만, 생존을 위해 사냥해야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의식으로 발전했다. 그런 의식은 유럽에도 있고, 아이누족에도 있다."
Q : 프랑스와 독일에서 곰의 씨가 마른 것에 대해 언급했는데.
A : "백수의 왕은 사자가 아닌 곰이다. 로마시대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들여와 곰과 싸움을 시켰는데, 대부분 곰이 이겼다. 유럽에선 오래 전부터 곰을 숭배해왔는데, 기독교 관점에서 곰 숭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곰을 이교도 문화의 근원으로 보고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성직자들은 곰에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곰 대신 유럽에는 없는 사자를 동물의 왕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프랑스와 독일에는 자연상태의 곰이 한 마리도 안남아있다."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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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피폐해지는 북극곰의 삶, 포악한 습성 탓에 사람도 해쳐
Q : 일본 홋카이도 시레토코 어촌마을도 곰과 함께 살아가던데.
A : "인간과 곰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유일한 땅이다. 네네츠 부족은 곰과 생활근거지가 겹치지 않지만, 여기는 함께 살아간다. 생활영역이 겹치지만 서로 무시한다. 인간은 음식물을 철저히 관리하고, 곰은 풀과 고동을 먹으며 살아간다. 50년간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
A :
Q : 이미지와 달리 북극곰은 포악하다. 굶주린 북극곰이 주민들에 해를 끼치기도 하겠다.
A : "그렇다. 몸무게가 800㎏까지 나가는 북극곰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포악한 맹수다. 북극곰이 귀엽게 묘사된 코카콜라 광고가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줬다. 북극곰은 배 고프면 마을에 올라와 쓰레기통을 뒤지고,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A : "곰을 가까이서 찍을 기회가 많지 않다. 반달곰은 예민하고 빨라서, 북극곰은 너무 위험해서 그렇다. 불곰은 연어사냥에 열중할 때만 가까이서 찍을 수 있다. 길 안내와 경호를 해주는 레인저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자고 부탁했다."
A : "불곰은 배 고프면 동족끼리 잡아먹는다. 사고는 중국 촬영팀이 왔을 때 일어났다. 비바람에 날아간 가방을 찾으러 레인저 한 명이 숲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동족을 잡아먹느라 극도로 예민해진 불곰이 갑자기 나타난 레인저의 얼굴을 앞발로 내리쳤다. 때문에 우리도 잔뜩 긴장한 상태로 촬영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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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곰보다 무서운 엄마곰의 모성, 때 되면 매몰차게 새끼 떼어내
A :
Q : 그랬던 엄마곰이 새끼를 독립시킬 땐 매몰차게 떼어놓더라.
A : "매몰차게 보이지만 새끼를 위한 거다. 새끼는 엄마곰과 있는 동안 사냥법을 배워 독립해야 생존해갈 수 있다. 엄마곰이 계속 돌봐줄 순 없으니까. 사람도 자식을 너무 끼고 돌면 자식 인생을 망치지 않나. 다 큰 새끼가 엄마곰과 함께 있는 걸 봤는데, 덩치가 커서 짝짓기하는 숫놈인 줄 알았다. 제 때 독립을 못한 건데, 앞으로 생존이 쉽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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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 잃은 채 두 새끼 키우는 지리산 올무곰의 기적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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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 때문에 미쳐가는 사육곰의 비극, 대안은 없나
A :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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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살지 못하는 지구,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사실 깨달아야
A :
Q : 곰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있다면.
A : "곰의 양면성이다. 귀엽고 매력적인 대상이지만, 실제 만나면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다. 왜 옛날 사람들이 숭배했는지 알게 된다. 촬영을 통해 곰의 생존이 환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됐다. 기후변화 때문에 지금은 곰이 고통받고 있지만, 최종적으론 인간도 고통을 겪게 된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됐구나 느낄 땐 이미 늦는다. 기후변화가 그렇게 무서운 거다. 힘들지만 불편을 감수하자. 그게 곰도 살리고, 인류도 살리는 길이다. 하나 더. 미련 곰탱이란 말은 쓰지 말자. 곰은 절대 미련하지 않다.(웃음)"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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