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society

[3·1운동 백년과 여성]①임시정부 '맏언니'..20년만에 애국부인회 재건하다

안채원 입력 2019.02.24. 06:00
김순애, 재건된 대한애국부인회 주석
1919년 4월 상해 부인회 대표도 역임
1923년 임정 노선 두고 갈등 후 떠나
중경시절 각계 연대에 부인회도 규합
재건대회서 '남녀동권향유강령' 발표
【서울=뉴시스】1909년의 김순애 모습. (사진 = 독립기념관)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1943년 2월23일 중경 임시정부 집무실은 다소 어수선했다. 조금만 있으면 '대한애국부인회 재건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상해 대한애국부인회로 시작해 우여곡절 끝 뿔뿔이 흩어진 지 20여년, 이날 여성독립운동가 50여 명은 다시 손을 잡고 부인회 활동을 시작하려했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기대가 반반씩 뒤섞여 있었다. 임시정부 여성들의 '맏언니'이자 부인회 주석 김순애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김순애에겐 특히 남다른 날이었다. 1919년, 처음 상해 대한애국부인회가 결성됐을 때 회장을 맡은 게 김순애였다. 그가 이끈 부인회는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에 영향을 받아 중국 곳곳에 있던 여성들도 지역에서 뭉쳤다. 차례로 혼춘, 천진, 간도에 부인회가 발족했다.

4년간 이어온 부인회 활동은 1923년 잠시 접어둬야했다.

당시 김순애는 상해 대한애국부인회 대표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독립운동의 방향과 관련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각 계파들이 모였다. 내부에서는 임시정부의 진로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에서는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기관을 만들자는 '창조론'을 제안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임시정부를 확대 개편하는 '개조론'을 주장했다.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리자는 목표는 같았으나 방법이 달랐다. 고민 끝에 김순애가 입을 뗐다.

"목적은 같으나 방법은 다르다. 나는 계통을 주장하려다가 창조라도 할까 했다. 개조도 난하고 창조도 난하나 딴 기관을 또 세우면 좋겠다."

그러나 조직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임시정부의 '개조론'을 지지했다. 뜻이 달랐으니 누군가는 떠나야 했다. 조직의 결정에 따라 김순애는 부인회 회장직을 내려놨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서울=뉴시스】1943년 재건대한애국부인회 회원들. 왼쪽부터 차례로 최선화, 김현주, 김순애, 권기옥, 방순희. (사진 = 한국사데이트베이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투탄 의거'로 일제의 감시가 심해졌다.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중경으로 거처를 옮겨야했다. 그 어느 때보다 세를 모으는 게 절실했다. 각계 각층에서 의견 차이로 흩어졌던 조직들이 모였다. 부인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중경 곳곳에 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다시 뭉치기로 했다. 그게 한 달 전이었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옛동지'들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해방된 조국이 남녀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민주주의 공화국'이길 바랐다. 50여 명이 머리를 맞댔고 강령 하나하나를 만들어갔다. 그 노력의 결과가 오늘 대회에서 발표될 터였다.

이윽고 대회가 시작됐다. 결연한 표정의 여성들이 한마음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7개 항의 남녀동권향유강령을 발표했다.

1. 국내외 부녀를 총 단결하여 전민족해방운동 및 남자와 일률 평등한 권리와 지위를 향유하는 민주주의 신공화국 건설에 적극 참가하여 공동 분투하기로 함.

2. 혁명적 애국 부녀를 조직 동원하여 국내외 전체 부녀동포의 각성과 단결을 촉성하며, 나아가 전민족의 총단결과 총동원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함.

3. 전민족해방운동을 총영도하는 혁명적 권력구조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옹호함.

4. 부녀의 정치·경제·교육·사회상 권리 및 지위 평등을 획득하기에 적극 분투하기로 함.

5. 부인의 정치·경제·지식의 보급 향상과 문맹퇴치 및 문화수준의 제고와 특히 아동 보육사업에 노력함.

6. 직업상 부녀의 권리 및 지위의 남녀평등과 특별 대우 향유의 획득에 노력함.

7. 전세계 반파시스트 부녀의 국제적 단결을 공고히 하여 전세계 부녀의 해방과 전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공동 분투하기로 함.

그렇게 중경의 집무실에서 대한애국부인회는 다시 닻을 올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순애가 있었다.

【서울=뉴시스】1943년 2월 발표된 한국대한애국부인회 재건 선언문. (사진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참고자료: 독립기념관 <한국여성독립운동>(1989), (사)3.1여성동지회 <한국여성독립운동가>(20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newkid@newsis.com

뉴시스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추천 뉴스 1

연령별 많이 본 뉴스

전체
연령별 많이 본 뉴스더보기

추천 뉴스 2

추천 뉴스 3

추천 뉴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