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본 속 '작은 한국' 신오쿠보는 지금..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입력 2019.02.24. 13:02 수정 2019.02.2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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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교 신주쿠 인근에 있는 ‘코리아타운’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적 한일 관계는 냉각됐지만 일본 내 작은 한국으로 불리는 신오쿠보에는 3차 한류 바람이 불며 냉각된 한일관계에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일본 내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 모습.
사진=마이니치신문 캡처
◆일본 속 작은 한국 신오쿠보는 지금

최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 방송 매체 등에 따르면, 일본 내 한인 밀집지 신오쿠보는 평일임에도 길을 걷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 북새통을 이룬다. 한국어 간판이 즐비한 이곳은 한국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 목소리를 시작으로 우리 유학생, 교민들이 밀집해 서울 명동처럼 한국의 번화가를 연상케 한다.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최근 유행 중인 ‘핫도그 치즈 늘리기’를 하고 있다.
사진=ATV 방송화면 캡처
요즘에는 한국식 ‘치즈 핫도그’가 유행이다.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코리아타운을 찾아 구매한 핫도그 등의 음식 사진이나 먹는 모습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리면 ‘좋아요’ 세례를 어렵지 않게 받는다.

신오쿠보를 찾은 일본 여학생들은 “치즈가 길게 늘어날수록 재밌고 인기 사진으로 인정받는다”며 “SNS에서 유행이라 음식도 먹고 사진 찍을 겸 이곳에 왔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 제품과 비교해 값이 저렴하면서도 기능이 뛰어난 화장품도 인기다. 한 20대 여대생은 “한국 화장품은 저렴하고 디자인이 예쁘다”며 “구매를 위해 이곳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신오쿠보를 찾는 이들은 한일 관계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마이니치신문 기자는 “신오쿠보를 찾은 일본 청년들에게 냉각된 한일관계에 관해 묻자 다수로부터 ‘관심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며 “이곳을 찾은 10대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아무렴 어때’ 등 정치적 한일관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한 여성 모델이 ‘핫도그 셀피’ 유행에 합류하며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SNS 캡처
◆코리아타운…“한류는 죄 없다”

신오쿠보는 2003년 ‘겨울 연가’ 등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시작으로 한국인 차별·증오 연설 등 반한집회가 열리면서 피해를 우려한 일본 거주 한인조차 이곳을 멀리해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어두운 감정과 모습을 모두 회복해 한국 아이돌 그룹을 시작으로 한국 음식이 인기를 얻으며 이른바 ‘3차 한류 붐’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일명 ‘미남거리’라는 곳이 생겨 일본 여성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미남거리는 ‘한국 미남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거리에는 밴드로 활동하는 아이돌 뒤를 따라 카메라를 손에 쥔 일본 여성들이 셔터 세례를 퍼붓곤 한다.

이들 여성을 따라가면 100석 정도 넓이의 라이브 하우스가 나온다. 여기서 일본 여성들은 한국 밴드가 공연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국어로 팬심을 전한다. 공연장을 찾은 한 18세 여고생은 “SNS에서 인기인 코리아타운과 이들 밴드를 보기 위해 멀리 홋카이도에서 비행기 타고 이곳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아이돌은 모두 상냥하고 얼굴도 기억해 준다”며 “이들을 눈앞에서 만나면 수개월 아르바이트한 수고를 모두 잊게 된다”고 자랑했다. 이 여학생도 지난해부터 악화한 한일 관계에 대해 “뉴스를 봐서 알지만 그건 나라(정부)간 문제”라며 “아이돌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유튜버가 신오쿠보 미남거리를 리뷰한 영상.
사진=동영상 캡처
◆누군가에겐 “생활의 일부”

과거 히로시마현에 살던 A씨(21)는 “한국 아이돌을 쫓아 이곳 신오쿠보로 이사 왔다”고 말한다.

A씨는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집단따돌림 당한 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 외톨이가 된 A씨는 ‘(일본에서) 살 곳이 없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지만 부모 설득과 한류에 마음을 되돌렸다.

그는 한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생활했다. 특히 신오쿠보에서 활동하는 한국 아이돌 팬이 되면서 은둔 생활에서 벗어났다. 마음을 다잡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취직한 뒤 신오쿠보에 살며 번 돈의 상당액을 한국 아이돌 그룹의 라이브 공연 관람과 앨범 구매에 쏟아부을 정도다. A씨는 “한국 아이돌이 나오는 라이브 하우스는 내 집 같은 곳”이라며 “히로시마에서는 사람을 불신하고 미워했지만, 코리아타운에 온 후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과 어울리고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등 지금은 스마트폰 메신저에 등록된 친구만 400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은 한국 사회에 사는 지금이 만족스럽지만 여기 한국 사람들에게 ‘빨리 한국에 돌아가라’라는 차별 발언에 가슴 아팠다”며 “한국에 이러한 소식이 전해질까 봐 걱정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신오쿠보 미남거리에서 쇼핑하는 일본 여성들.
사진=니피 캡처
◆동전의 양면 같은 곳…혐오와 친밀함 공존

A씨의 아쉬움처럼 신오쿠보에는 한국과 한국 문화를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사람들만 오는 게 아니다. 반한 감정으로 가득한 극우 성향 일본인들이 반한시위를 위해 자주 집결한다.

지난 22일 일본 시마네현은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를 열며 또 도발했다. 우리 정부도 가만 있지 않았다. 행사 철폐를 엄중히 촉구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같은 날 신오쿠보를 찾은 한 일본인은 “핫도그가 한일 관계를 악화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한국 음식을 먹었다고 관계가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지 않을 거다. 정치와 문화는 별개”라고 선을 그은 뒤 핫도그 먹는 모습 촬영에 열중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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