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뿔난 빈 살만, 中에 31조원 투자 약속
'러시아판 사드'까지 도입.. 일각 "트럼프 일방 외교 실패"
빈 살만은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인도와 중국을 차례로 방문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빈 살만이 사우디 외교의 중심축을 (미국에서) 중국 및 아시아로 옮겨가는 외교적 전환(pivot)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후 미 의회를 중심으로 사우디를 겨냥한 비난과 외교적 공세가 이어지자 빈 살만이 기존 친소(親疏) 관계를 뒤집고 '오일 머니'를 앞세워 중국·아시아와의 협력 강화에 나섰다는 얘기다.
사우디가 18일 파키스탄에 총 200억달러(약 22조5100억원)를 투자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도 파키스탄뿐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우디가 약속한 200억달러 중 80억달러가 파키스탄 남부 과다르항(港) 건설에 투자되는데, 과다르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핵심 요충지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가 이날 빈 살만과의 회담에서 "중국과 파키스탄의 협력 관계에 사우디가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간 국제 유가(油價) 협력에 머물던 사우디·러시아 관계도 경제·군사 등 다방면으로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지난 19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갖고 무역·경제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러시아 정부는 사우디 정부와 '러시아 사드(THAAD)'로 불리는 첨단 방공 미사일 'S-400' 수출 계약을 2017년에 체결했다고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으며, 세부 이행 조건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러시아 두 나라는 미국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한 공세에 맞서 새로운 산유국 기구를 창설하는 방안도 물밑 논의 중이다. WSJ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이끄는 OPEC·비OPEC 산유국이 오는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새로운 산유국 기구 창설 방안을 공식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달 초 미 하원 법사위를 통과한 'NOPEC' 법안 또한 사우디와 러시아 관계를 개선시키는 재료다. NOPEC 법안은 OPEC 회원국을 미국의 반(反)독점법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전직 대통령들은 NOPEC법이 의회를 통과할 때마다 사우디와의 우방 관계를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과거부터 OPEC을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우디의 행보를 놓고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동맹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만 관철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세계 곳곳에서 우방국의 반발을 낳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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