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극복하고 다시 춤추는 무용가 "세월호 추모 살풀이 공연 잊지못해"

신영근 입력 2019. 2. 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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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함께 한국무용 그만둔 박소정씨, 20년 만에 '꿈' 펼치다

[오마이뉴스 신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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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씨는 지난해 4월 서산에서 있었던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식'에서 살풀이 춤을 공연했다. 박 씨는 "내 딸과 아들 같은 아이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달래고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췄다"면서 "춤을 추기 전부터 아이들 생각에 먹먹하고 눈물이 나 공연 내내 힘들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잊지 않겠다는 거다. 잊지 않고 내가 꼭 기억해줄게라는 생각으로 공연했다"고 말했다.
ⓒ 신영근
조심스레 사뿐사뿐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춤으로 표현한 태평무,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고운 한복을 입고 춤을 춘다. 박소정씨(46)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는 그동안 벗어놨던 한복을 20년 만에 다시 꺼내 입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춤꾼이 되는 게 목표였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우리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해 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다. 

대학생활 동안에도 이같은 꿈을 꾸었던 전망 밝은 무용가였지만, 이후 결혼 등으로 인해 그 꿈을 접었다. 이른바 '경단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가 다시 춤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2017년, 서산에서 한 한국무용 강습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동안 직장생활과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춤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들어있던 탓이다. 힘들 때마다 조용히 자신을 다스리기에는 춤만 한 것이 없더란다. 
 
필자가 박씨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4월 서산에서 있었던 세월호 4주기 추모식 때다. 당시 그녀는 '파랑새'라는 음악에 맞춰 하얀 소복을 입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해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 춤을 줬다. 
 
 박소정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우리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해 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결혼 등으로 인해 그 꿈을 접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가 다시 춤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2017년, 서산에서 한 한국무용 강습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박 씨는 전통 춤을 공연할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한다. 춤에 다라 공연의상이 다르다.
ⓒ 박소정 제공
24일 서산에서 태평무와 부채춤, 살풀이 춤 연습을 막 끝낸 박씨를 만나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그의 인생 1막 2장의 춤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박씨와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한국무용은 언제부터 했는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무용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한국무용이 너무 재밌고 좋았다. 이후 서산에서는 한국무용을 배울만한 곳이 없어 서울, 대전 등에서 춤을 배웠고 대학에서도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특히 당시에 엄마가 서산에서 한국무용 동아리 활동을 하셔서 그런지 제가 춤추는 것을 적극 후원했으며, 연세가 드셨어도 열정을 가지고 지금도 춤추고 노래하는 엄마가 롤모델이기도 하다.

- 그렇게 전공까지 했던 춤을 왜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는? 
대학 졸업 후 일찍 결혼을 하게 됐지만 임신을 하고서도 열심히 춤을 췄다. 하지만 이후 아이들 키우고 직장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춤을 추지 못했다. 그러나 난 하루도 춤을 그만둔 적이 없었다. 내 마음과 머릿속으로는 항상 춤을 추고 있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50살이 되면 춤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춤추는 꿈을 계속 꾸게 되면서 잠에서 깰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서산에서 한국무용 강습이 있다고 알려줘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을 듯 해 다시 시작하게 됐다. 당초 생각했던 시간보다 앞당겨진 것이다. 특히 대학 동기들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공연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했었다. 

- 특별히 한국무용을 하게 된 이유는? 
저의 성격이나 성향 그리고 정서적으로 한국무용이 좋았으며, 우리나라 전통춤을 이어간다는 맥락에서 자부심과 뿌듯함이 있어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서산에서는) 서양춤을 배울만 곳이 없었을뿐더러, 배워보긴 했지만 흥미기 없었다. 전통무용은 우리의 한이 담겨있는 것 같다. 전통가락에 맞춰 한발 한발 다리를 굽혀주면서 호흡으로 추는 춤이라,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무용을 다시 시작하면서 박 씨는 "어머니와도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여러번 했다"면서 "연세가 드셨어도 열정을 가지고 지금도 춤추고 노래하는 엄마가 롤모델"이라고 전했다. 박 씨가 인터뷰중 자신의 공연 영상을 보면서 웃고 있다. 특히 박씨의 스마트폰에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붙어있다.
ⓒ 신영근
- 어떤 생각을 가지고 춤을 추나? 
춤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는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지만, 요즘은 사람들에게 기쁜 상황, 슬픈 상황 등을 춤으로 보여주면서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 춤 그대로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다. 얼마 전에는 제 춤을 보고 울었다는 분도 만났었다. 최대한 춤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생각한다. 춤은 기쁠 때만 웃으면서 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슬플 때 더 슬프게 만들 수 있는 게 춤이고 그 마음을 위로해 줄 수도 있는 게 춤이다. 같은 춤이지만 보는 이들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보는 이들에게 순간이라도 감동을 주길 바라며 춤을 춘다.

- 춤을 다시 시작한 것에 대해 가족들은 어떤 반응인가? 
두 딸은 엄마가 무용을 전공했다는 정도만 알고, 최근들어 춤에 대한 대한한 열정을 지녔는지 요즘 알게된 정도다. 반면, 남편과 엄마, 언니 등은 예전의 저의 모습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격려와 응원을 해주고 있다. 춤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족들 앞에서 무용 시연을 한적도 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여유로운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뒷바라지 해준 엄마가 가장 기뻐하고, 지금도 가끔 엄마와 같이 공연을 한다. 

-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식에서 살풀이 춤을 추는 것을 봤다. 어떤 생각이었는지?(관련기사:  [영상] 세월호 희생자 위한 살품이 춤... "아이들과 함께 파랑새가 되어 날아") 

내 딸과 아들 같은 아이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달래고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췄다. 춤을 추기 전부터 아이들 생각에 먹먹하고 눈물이 나 공연 내내 힘들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잊지 않겠다는 거다. '잊지 않고 내가 꼭 기억해줄게라는 생각으로 공연했다. 

특히, 처음 밝히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해 '살풀이' 공연 후 그날 밤 세월호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이 꿈에 찾아와 잠을 한숨도 못 이뤘다. 자신들을 위로해준 아이들이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왔었구나라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 이때까지 춤을 추면서 그런 적이 처음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그동안 쉬었던 춤 실력을 더 향상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주변에서 전통춤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봉사단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무용인인들과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서산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는 내가 학창 시절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무용 관련 대학원 공부와 함께 전공을 살려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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