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관전법

송영규 기자 입력 2019. 2. 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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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검증 없이 제재 해제땐
사실상 '북핵 용인'으로 갈 우려
성급하게 남북경협 말할때 아냐

[서울경제]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스톡홀름 안보개발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시론- 이상현
국내외의 큰 관심 가운데 드디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α’와 ‘종전선언’ 맞교환의 가능성이 높이 점쳐지는 가운데 한반도는 비핵화의 성공을 가늠할 진정한 테스트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북미 양국이 아직 비핵화의 정확한 개념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회담 결과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하노이 회담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이에 답하려면 우리 나름대로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맞춘 손익계산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모든 거래의 셈법이 그렇듯이 적게 주고 많이 받는 거래가 최상의 거래겠지만 북한의 특성상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때문에 최소한 주고받는 것이 대략 균형을 이루면 그럭저럭 실패하지는 않은 거래라고 하겠다. 반대로 많이 주고 적게 받는 거래라면 그것은 실패다. 예를 들면 구체성이 결여된 공허한 비핵화 약속에 평화협정이나 제재 해제 등의 과도한 보상을 제공하는 한편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게 되는 경로로 갈 경우 이는 실패한 회담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즈음에는 많은 전문가가 소위 ‘빅딜’ 가능성에 큰 기대를 가졌다. 빅딜이란 북한이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비핵화를 완수하면 국제사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포괄적 패키지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간 적대관계 해소를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후속 실무회담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CVID 대신 ‘스몰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체로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집중하면서 핵 동결로 상황의 추가적 악화를 막는 대신 종전선언이나 제재 일부 해제 같은 약간의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동결의 일종인 ‘포괄적 검증 가능한 핵봉인(CVC)’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만일 하노이 회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한국으로서는 이제 ‘배드딜’의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핵 문제는 동결에 그쳤는데 주한미군 감축, 한미연합훈련 추가 중단 등 한국의 안보 여건은 악화되는 한편 비핵화 진도보다 앞서 가는 제재 해제로 비핵화가 사실상 물 건너 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한 회담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싱가포르 선언보다는 진전된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은 북한이 폐기를 약속한 영변 핵시설과 몇 가지 실험장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약속과 이행이다. 더 나아가 완전한 비핵화까지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출범시킬 수 있다면 긍정적인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또다시 ‘완전한 비핵화 약속’만으로 그친다면 실망스러운 싱가포르 회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하노이 회담의 성패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지만 최근 미국의 비핵화 의지가 약화되는 추세가 뚜렷하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트럼프가 먼저 ‘서두를 것 없다’고 하는데 북한이 비핵화를 서두를 이유가 있겠는가. 게다가 한국은 비핵화 과정은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벌써 대대적인 남북경협을 말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에 희망을 가져야 하겠지만 이번 회담이 다시 세계 최대의 리얼리티쇼, ‘트럼프-김정은쇼 시즌 2’가 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의 종착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남북경협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허망한 구상일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핵과 경제회생 두 가지를 다 갖게 만드는 길이다. 공허한 ‘비핵화 약속’만 믿고 엄청난 국민 혈세가 들어갈 비핵화 청구서를 성급하게 떠맡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 진도보다 남북경협이 앞서 가면 북한의 비핵화 동기를 약화시켜 비핵화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하노이 회담이 비핵화의 ‘입구’가 될 것을 전제로 이제 비핵화의 ‘출구’로 나갈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북한이 상투적인 ‘비핵화 살라미’ 전술로 나오면 우리도 보상을 쪼개는 ‘보상의 살라미’ 전술로 맞서야 한다. 지금은 성급하게 남북경협을 말할 때가 아니라 비핵화 완수 시 북한이 받게 될 혜택을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의 길을 가도록 만드는 데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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