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부터 조용필까지..'왕이 된 남자' '왜그래 풍상씨' 이유있는 OST 실험

이유진 기자 2019. 2. 27. 11: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 5회에서 중전 소운(이세영)이 왕이 된 광대 하선(여진구)에게 입을 맞추고 있다. tvN 제공

탕약을 지어 서고를 찾은 중전 소운(이세영)이 잠들어 있는 왕 하선(여진구)을 발견했다. 잠든 하선의 곁에 앉은 소운은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더는 감출 길이 없습니다. 제 마음이 이리 떨리는 이유. 전하를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리 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소운은 조심스럽게 하선에게 입을 맞췄다.

tvN에서 방영 중인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 5회 마지막 장면이다. 소운과 하선이 입을 맞추는 순간 ‘따라라라라~ 따라라라~’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TV를 보던 시청자 이모씨(28)가 말했다. “어, 이 노래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소운과 하선이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마다 등장한 이 노래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세레나데’였다. 이씨는 “사극에서 클래식 음악이 나올 줄 몰랐다.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았지만 소운과 하선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좋은 곡인 것 같다”고 말했다.

tvN <왕이 된 남자>는 러브 테마곡으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사용하고 있다. 박세준 음악감독은 “편곡을 통해 멜로디를 추가, 슬픈 감정을 더 강조했다”고 말했다. tvN 제공

세레나데는 슈베르트가 생애 최후 시절 작곡한 14곡의 노래를 묶은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에 담긴 곡이다. 슈베르트가 우연히 어느 술집에서 세익스피어의 시를 보고 즉석에서 악상을 얻어 메뉴판 뒷면에 작곡했다는 일화가 있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우울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 특징인 사랑노래다.

서양 가곡인 세레나데는 어떻게 사극으로 들어왔을까. <왕이 된 남자>의 박세준 음악감독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세레나데를 드라마에 사용한 건 연출을 맡은 김희원 PD의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가사가 있는 노래곡보다는 멜로디만 있으면서 쉽고 익숙한 곡을 사용하자는 의도였다. 김 PD가 아예 첫 회의 때 세레나데를 언급하며 ‘이 곡을 편곡해서 쓰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원곡은 클래식 느낌이 강했다면 편곡을 통해 멜로디를 추가해 슬픈 감정을 더 강조했다”고 말했다.

tvN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리메이크했다. 원작과 달리 왕의 자리에 오른 광대 하선과 중전 소운의 사랑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다. tvN 제공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리메이크한 <왕이 된 남자>는 원작과 달리 왕의 자리에 오른 광대 하선과 중전 소운의 사랑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다. 박 음악감독은 “<왕이 된 남자>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러브 테마곡 역시 마냥 밝기보다도 슬픈 곡조를 담은 세레나데가 제격”이라고 덧붙였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쓰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SKY 캐슬>에서는 슈베르트 ‘마왕’이 입시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테마곡으로 등장했다. 마왕은 슈베르트가 18세 때 괴테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가곡이다. 한밤중 아버지가 아픈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말을 타고 집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말발굽 소리를 묘사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긴박하게 전개된다.

JTBC <SKY 캐슬> 5화의 한 장면. <SKY 캐슬>에서는 입시코디네이터 김주영의 테마곡으로 슈베르트의 ‘마왕’이 등장했다. JTBC 캡처

시청자들은 아픈 아들을 입시 전쟁을 치르는 학생, 아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마왕을 김주영 선생, 마왕의 유혹을 애써 부인하는 아버지를 학부모로 해석했다. 본래 마왕 역은 묵직한 음색의 바리톤이 주로 부르지만, 드라마에서는 소프라노 목소리로 대체해 김주영과의 연관성을 높였다.

클래식 음악이 드라마에 쓰이는 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밀회>,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클래식 음악연주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넘어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서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건 최근 두드러지는 추세로 볼 수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는 조용필의 ‘꿈’,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과 같은 흘러간 인기 가요를 안방으로 소환했다. KBS 제공

한쪽에선 클래식 음악이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았다면, 다른 한편에선 ‘추억의 가요’가 드라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가족 드라마의 대가’ 문영남 작가의 KBS 2TV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는 조용필의 ‘꿈’,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과 같은 흘러간 인기 가요를 안방으로 소환했다.

<왜그래 풍상씨>는 부모 대신 네 명의 동생을 보살피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던 장남 이풍상(유준상)이 간암에 걸리면서 벌어지는 가슴 찡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이 된 남자>에서 클래식이 가사 없이 장면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 <왜그래 풍상씨>의 배경음악은 가사를 통해 주인공 이풍상이 겪는 삶의 풍파를 극대화한다.

<왜그래 풍상씨>는 부모 대신 네 명의 동생을 보살피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던 장남 이풍상(유준상)이 주인공이다.배경음악은 이풍상이 겪는 삶의 풍파를 극대화한다. KBS 제공

<왜그래 풍상씨>의 주제곡을 책임지고 있는 강동윤 음악감독은 전화인터뷰에서 “노래 멜로디는 물론 가사도 중요하게 고려해 선정했다”며 “조용필·김광석 노래는 진형욱 PD의 추천이었다. 가사에 맞는 상황에 적절히 음악을 쓰고 있다. 원곡 느낌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드라마 전체적인 색깔과 톤을 맞추는 방식으로 편곡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드라마 주시청층이 연령대가 좀 높다보니 이분들이 들었을 때 예전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곡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과거의 명곡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적절히 쓰인 배경음악은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나타내는 데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왜그래 풍상씨>의 애청자라는 이범석씨(56)는 “풍상이가 간암 판정을 받고 혼자 강가에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조용필의 꿈이 느리게 흘러나오는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며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제 꿈 한 번 못 펼치고 산 풍상이가 너무 불쌍해보였다”고 말했다.

따로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왕이 된 남자>와 <왜그래 풍상씨> 두 음악감독은 공통적으로 드라마 배경음악을 ‘옷’에 비유했다. 강동윤 음악감독은 “잘 만들어진 영상에 옷을 잘 입혀 사람들의 구미가 당기게 하는 것이 음악 작업”이라며 “웃긴 장면에선 더 웃기게, 슬픈 장면에선 더 슬프게 만들어주는 게 음악”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음악감독은 “음악은 드라마의 옷이다. 연출이 좀 부족하면 옷을 화려하게 입혀 보완을 하고, 연출이 좀 과하게 됐다면 옷을 가볍게 입혀 부담스럽지 않도록 한다. 음악감독은 스타일리스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