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 슈베르트,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이유진 기자 2019. 2. 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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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드라마 OST ‘장르 실험’ 눈길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남녀 주인공인 하선(여진구)과 소운(이세영)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마다 슈베르트의 대표곡 ‘세레나데’가 흘러나온다. tvN 제공

탕약을 지어 서고를 찾은 중전 소운(이세영)이 잠들어 있는 왕 하선(여진구)을 발견했다. 잠든 하선의 곁에 앉은 소운은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더는 감출 길이 없습니다. 제 마음이 이리 떨리는 이유. 전하를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리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소운은 조심스럽게 하선에게 입을 맞췄다.

tvN에서 방영 중인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 5회 마지막 장면이다. 소운과 하선이 입을 맞추는 순간 ‘따라라라라~ 따라라라~’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TV를 보던 시청자 이모씨(28)가 말했다. “어,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소운과 하선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마다 등장한 이 음악은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세레나데’였다. 이씨는 “사극에서 클래식이 나올 줄 몰랐다.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았지만 소운과 하선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좋은 곡인 것 같다”고 말했다.

‘왕이 된 남자’ 클래식 편곡하고 ‘왜그래 풍상씨’엔 추억의 가요 “음악, 드라마의 옷…구미 당기게”

서양 음악인 세레나데는 어떻게 사극으로 들어왔을까. <왕이 된 남자>의 박세준 음악감독은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세레나데를 드라마에 사용한 건 연출을 맡은 김희원 PD의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가사가 있는 노래곡보다는 멜로디만 있으면서 쉽고 익숙한 곡을 사용하자는 의도였다. 원곡은 클래식 느낌이 강했다면 편곡을 통해 멜로디를 추가해 슬픈 감정을 더 강조했다”고 말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리메이크한 <왕이 된 남자>는 원작과 달리 왕의 자리에 오른 광대 하선과 중전 소운의 사랑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그린다. 박 음악감독은 “<왕이 된 남자>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러브 테마곡 역시 마냥 밝기보다도 슬픈 곡조를 담은 세레나데가 제격”이라고 덧붙였다.

슈베르트의 작품이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쓰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SKY캐슬>에서는 슈베르트의 ‘마왕’이 입시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테마곡으로 등장했다. 마왕은 슈베르트가 18세 때 괴테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가곡이다. 한밤중 아버지가 아픈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말을 타고 집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말발굽 소리를 묘사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긴박하게 전개된다. 시청자들은 아픈 아들을 입시전쟁을 치르는 학생, 아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마왕을 김주영 선생, 마왕의 유혹을 애써 부인하는 아버지를 학부모로 해석했다.

클래식이 드라마에 쓰이는 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밀회>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클래식 연주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넘어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서 클래식이 등장하는 건 최근 두드러지는 추세로 볼 수 있다.

한쪽에선 클래식이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았다면, 다른 한편에선 ‘추억의 가요’가 드라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가족 드라마의 대가’ 문영남 작가의 KBS 2TV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는 조용필의 ‘꿈’,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같은 흘러간 인기 가요를 안방으로 소환했다.

<왜그래 풍상씨>는 부모 대신 동생 넷을 보살피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던 장남 이풍상(유준상·사진)이 간암에 걸리면서 벌어지는 가슴 찡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그래 풍상씨>의 배경음악은 가사를 통해 주인공 이풍상이 겪는 삶의 풍파를 극대화한다.

<왜그래 풍상씨>의 주제곡을 책임지고 있는 강동윤 음악감독은 전화인터뷰에서 “노래 멜로디는 물론 가사도 중요하게 고려해 선정했다”며 “조용필·김광석 노래는 진형욱 PD가 추천했다. 가사에 맞는 상황에 적절히 음악을 쓰고 있다. 원곡 느낌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드라마 전체적인 색깔과 톤을 맞추는 방식으로 편곡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드라마 주시청층이 연령대가 좀 높다 보니 이분들이 들었을 때 예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곡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과거의 명곡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왕이 된 남자>와 <왜그래 풍상씨>의 두 음악감독은 공통적으로 드라마 배경음악을 ‘옷’에 비유했다. 강동윤 음악감독은 “잘 만들어진 영상에 옷을 잘 입혀 사람들의 구미가 당기게 하는 것이 음악 작업”, 박세준 음악감독은 “음악은 드라마의 옷이다. 연출이 좀 부족하면 옷을 화려하게 입혀 보완을 하고, 연출이 좀 과하게 됐다면 옷을 가볍게 입혀 부담스럽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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