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국인 일본은 멀쩡한데 왜 한반도가 분단됐을까

강윤주 2019. 3. 1.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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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직전 연합국인 미국 영국 중국 수뇌부가 독일 포츠담에 모여 개최한 회담이다. 아랫줄 왼쪽부터 애틀리, 트루먼, 스탈린. 윗줄 왼쪽부터 레이히, 베빈, 번스, 몰로토프. 메디치미디어 제공.

“짐은 깊이 세계 대세와 제국의 현상을 감안해 판단하건대 비상한 조치로써 (중략)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국에 대해 그 공동선언(포츠담선언)을 수락하겠다는 뜻을 통고한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이 일본인에게 낭독한 종전 조서다.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도, 피해국에 대한 사과도 일절 없었지만, 어쨌거나 항복 선언이었다. 조선은 독립을 맞았지만, 광복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반도는 미국과 옛 소련의 분점으로 허리가 동강 났다. 전쟁을 도발한 가해자 일본은 멀쩡한데, 식민지배 피해자인 조선은 왜 거듭 비극을 만난 것일까.

러시아사를 전공한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 하세가와 쓰요시 워싱턴대 명예교수가 쓴 ‘종전의 설계자들’은 다각도의 고증을 통해 새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의 백기 투항을 끌어냈다는 사학계 통설과 달리, 소련의 뒤늦은 참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를 편다. 미국의 원폭 투하 정당성을 흔드는 주장이어서 2005년 미국 출간 때 큰 논란을 불렀다.

종전의 설계자들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한승동 옮김

메디치미디어•720쪽•3만3,000원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전후 처리 과정을 놓고 미국, 소련, 일본 등 당사국들은 한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협상을 벌인다. ‘종전의 과실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서다. 전세는 일찌감치 기울었지만 전후 질서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저마다 머리를 굴리느라 종전은 ‘지연’됐다. 책은 일본의 항복 조건을 놓고 팽팽하게 맞선 당사국들의 각축과 암투를 긴박하게 그려낸다. 진주만 공습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미국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연달아 투하한 것은 일본을 옥죄기 위한 최후통첩이었다.

일본은 그러나 바로 무릎 꿇지 않았다. 민간인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 천황을 전쟁 범죄자로 만들지 않는 것, 궁극적으로는 천황제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일본은 소련의 중재 아래 천황의 지위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낸다는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항복 선언을 미뤘지만, 헛된 기대였다.

미국의 원폭 투하 직후, 소련은 보란 듯이 일본과 맺은 중립 조약을 깼다. 만주국 침공을 시작으로 대일 선전포고에 나섰다. 쿠릴 열도를 비롯한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미국 편에 서서 뒤늦게 숟가락을 얹은 것이다. 외톨이가 된 일본은 연합군의 항복 요구를 받아들이고 백기 투항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점령국에 포함되면 천황제를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본의 계산이었다.

종전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왔다. 전후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 즉 냉전의 시작이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거인이 주고받기 협상을 벌이는 동안 식민지배 피해국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한반도의 분단 역시 이 같은 ‘정치적 흥정’의 결과였다. 저자에 따르면, 소련은 일본의 홋카이도 분할 점령을 미국에 요구했다. 독일의 전후 처리 방식을 적용, 도쿄를 4개 구역으로 분할해 연합국이 나눠 갖자는 제안도 했다.

미국의 계산은 달랐다.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막는 게 먼저였다. 그래서 일본을 방패막이로 삼고자 했다. 38도선 이북을 내주는 선에서 소련의 불만을 달랬다. 그게 바로 한반도 분단의 시발이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자 전쟁범죄 가해국인 일본이 받을 응징을 한국이 엉뚱하게 받은 꼴이었다.

일본은 갑자기 피해자 행세를 시작했다. 과거사 반성도 나몰라라 했다. 일본이 ‘패전’ 대신 ‘종전’이란 표현을 고집하는 것도 전쟁 책임을 물타기 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인들은 피해자 의식에 빠져 군국주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책임은 외면해 왔다”면서 “당시 일본 정부가 전쟁 종결 요구를 서둘러 수용했다면, 트루먼의 원폭 투하도 스탈린의 참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리품에 눈이 멀었던 미국과 소련 등 전승국의 책임이 큰 것은 물론이다.

“태평양전쟁은 각자의 욕망, 공포, 허영심, 분노, 편견을 지닌 채 결정을 내린 인간들의 드라마였다. (중략) 지도자들은 다른 결정을 내리고 다르게 종결 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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