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우린 일부 제재 해제 원했다"..이용호, 트럼프 회견 심야 반격

정용수 입력 2019.03.01. 06:39 수정 2019.03.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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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북 외무상 회담 결렬 12시간만에 심야 긴급 회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기자회견 조목조목 반박
향후 회담 위한 포석? 회담 재개 제스처?
북한의 반격이 시작됐다. 2차 북ㆍ미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베트남 하노이를 찾은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오전 12시 30분쯤 호텔 로비에 등장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통역을 대동하고서다. 그는 로비에 마련된 책상 앞에 앉아 양복 상의 왼쪽 속주머니에서 A4용지를 꺼내 적혀 있는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현지에서 정상회담을 취재중이던 서방 언론을 향한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영어 통역을 포함해 7분 동안 진행한 회견에서 그는 “2차 북ㆍ미 회담과 관련한 우리(북한)의 입장을 말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우리는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도 했다. 이날 회견은 회담 결렬 이후 12시간만에 진행됐는데, 충분한 검토 끝에 밝히는 공식입장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내용에 집중했다. 북한이 제안한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요구 범위, 핵과 장거리 로켓 실험을 영구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서면 확약 등이다. 그는 회견에서 “신뢰조성과 단계적 원칙에 따라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며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제안한 영변의 비핵화 대상과 사찰 방법, 미국에 요구한 상응조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북한의 핵개발 심장으로 꼽히는 영변 지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물질 생산 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미국이 북한의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에 대한 대북제재를 풀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는 부분도 담았다. 이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라며 “구체적으로는 유엔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 지장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 하라는 것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북한이 영변의 핵시설에 국한해 비핵화를 할 용의가 있으니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자 반박인 셈이다. 이날 회견이 ‘심야의 반격’으로 불리는 이유다.

북한이 각종 회담을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먹히지 않거나 열세에 놓일 경우 번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자신들과 상대의 제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건 이례적이다. 그런만큼 이날 회견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사실로 굳어지는 걸 막기 위한 차단막 차원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상반된 설명중 어느쪽의 주장인지는 사실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현준 한반도 평화포럼 부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각종 언론에 소개되면서 그의 설명이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라며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오해를 막고, 자신들의 정당성과 억울함을 알리는 게 향후 회담 지형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 외무상은 “비핵화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안보담보”라며 “하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비핵화를 추진해 신뢰를 쌓기 위한 ‘통큰 결단’이었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여기에 북한에서 신(神) 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김 위원장이 ‘등판’한 회담이 깨지자 파탄의 원인을 미국에 두려는 일종의 공세적 장치일 수도 있다. 북한에선 최고지도자는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성’을 주민들에게 학습하고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과 관련된 홍보는 여러차례 시험을 거쳐 성공한 것에 집중하는게 관례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김 위원장의 평양 출발때부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없이 빈손으로 귀국할 경우 김 위원장의 위상에 흠집이 생길 우려에 대한 안전장치가 필요했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회담을 이어가자는 독촉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고존엄의 흠집’에도 불구하고 회담 결렬 선언이나 미국에 대한 날선 비난 대신 ‘사실은 이러이러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현 상황에서 더이상 어떻게 하겠냐’는 식의 주장이라는 점에서다. 이 외무상이나 최 부상이 “우리의 방안에는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회담 중단 선언 대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미국측에 차려 지겠는지(확보할 수 있을지) 여기 대해선 장담 힘들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 않겠다”는 단정형 표현이 아니라 ‘우리는 할 생각이 있으니 너희가 택일을 하라’는 독촉이자 압박이라는 것이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북한은 더이상 대화가 필요없다고 판단할 경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며 “즉각 대응에 나선 건 뭔가 만들어 보려는 의지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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