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유관순 열사 유해는 묘연한데 친일파 63명은 양지 바른 현충원에 [김기자의 현장+]

김경호 2019. 3. 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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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는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 선열들의 안식처 /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 서울시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군 1묘역에 안장 / '친 일반민족 행위자' 버젓이 현충원에 묻혀 / 김구 선생의 어머니 묘 인근에 김구 암살 배후범 김창룡까지 / 친일파 신태영·이응준 '발밑'에는 임정 묘역·애국지사 묘역 / 애국선열은 근린공원·북한산 등에 뿔뿔이 흩어져

지난달 24일 오후  찾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 묘역에는 친일파로 지적받은 신응균· 김백일·신태영·이응준 등이 안장돼 있었다.


"현충원에서도 친일파 묻힌 묏자리가 명당이에요. 볕도 잘 들고, 저 멀리로 서울시가 한눈에 보이니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일찍 찾아온 봄 날씨에 햇살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지난달 24일 찾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은 움츠렸던 겨울잠을 끝내고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빛나는 봄 햇살은 따스하게 현충원 묘역을 비췄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중 서울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는 잘 정돈된 김백일의 묘가 있다.


현충원에 들어서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진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묘비가 줄지어 서 있다. 생몰 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과 열아홉, 스무살, 스물하나다.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손에 쥔 소총 한자루에 의지한 채 어린 나이에 나라를 구하고자 뛰어든 순국 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비록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으나, 그들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서울 현충원 제일 높은 곳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다. 그 다음 높은 지역이 '장군 제1묘역'이다. 이곳에서 육군 중장 김백일의 묘는 서울시가 내려다보이는 터에 잘 정돈된 채 기자를 맞았다. 이날 미세먼지가 서울을 뒤덮어 시계는 흐렸는, 맑은 날씨에는 잠실부터 남산을 지나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서울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라고 한다.

묘 앞에는 무궁화꽃이 놓여 있고,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김백일 장군은 고향인 함북 명천을 떠나 조국 광복에 생애를 바친 조부모를 모시고 만주 간도 연길에서 태어났다. 6·25 사변이 돌발하자 제1군단을 지휘하고 북진의 선봉이 되어 그 용맹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함흥 지구에서는 십만의 피난민을 보살펴 남하케 하는 등 실로 지·인·용을 겸비한 장군이었다."

마지막으로 "승전의 상징인 님을 추모하여"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전쟁 영웅'인 그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립된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 공식 발표한 친일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장군 1묘역'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김백일의 묘.


앞서 2005년 설립된 이 위원회에 따르면 김백일은 일제 강점기 간도특설대에서 7년간 복무하며 독립운동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다. 

당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한 간도특설대는 당시 조선인이 조선인을 상대로 토벌에 나서 가장 큰 악명을 떨친 부대였다.
 
항일운동가를 탄압한 3대 조직 중 하나로 꼽힌 간도특설대에서 김백일은 1938년부터 7년 동안 복무했고, 그런 활동 공로로 1943년 일제로부터 만주국 훈장인 '훈5위 경운장'까지 받았다.

김백일뿐만 아니라 현충원에는 김홍준과 김석범, 송석하, 신현준 등 간도특설대 간부로 복무했던 5명이 묻혀있다.
 
김백일은 광복 후 군에 들어가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숨진 김백일은 육군 중장으로 추서돼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현충원에 묻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이처럼 서울이나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이는 63명이다.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다. 이 가운데 김백일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 등 11명은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에서 공식 결정한 친일파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친일파 이응준(왼쪽 빨강원)과 신태영의 묘(오른쪽 빨강원)는 볕이 잘 드는 '장군 2묘역'에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장교로 복구했던 이응준의 묘와 중좌를 지낸 신태영 묘는 인근 '장군 2묘역'에 있다. 

그 아래에는 박은식과 양기탁, 이상룡 등이 안장된 '임시정부 묘역'과 '애국지사 묘역'이 조성돼 있다. 

이날 볕이 잘 드는 이응준 묏자리에서 임정과 애국지사 묘역을 바라봤다. 한눈에 들어와 마치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발밑'에 잠든 독립운동가의 기를 누르는 듯한 구조였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장군 2묘역'의 양지바른 곳에 잘 정돈된 친일파 신태영의 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묏자리 인근 '장군 3묘역'에는 이종찬의 묘가 있다. 일제로부터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을 받았는데,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이 훈장을 받은 이는 이종찬뿐이다. 그는 한·일합방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하영의 손자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공병 장교로 중·일전쟁에 참전한 이종찬은 무공을 인정받고 매월 연금까지 받았다. 해방 후 6.25 전쟁 당시 육군 지휘관으로 변신해 참모총장을 거쳤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 3묘역'에는 이종찬의 묘가 있다. 그는 일제로부터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을 받았다.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이 훈장을 받은 이는 이종찬뿐이다.


장군 3묘역에서 만난 한 시민은 "현충원을 둘러볼 때마다 눈에 띄는 곳에 친일파 흔적이 남아 있어 마음이 불편했다"며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국지사 묘역을 찾은 한 참배객은 "친일파 이응준 발밑에 애국선열이 잠들어 있다"고 언성을 높이며 비판했다.

그나마 유해를 찾을 수 있어 이곳에 안장된 애국지사는 다행인 축에 낀다.

◆ "유관순 열사·안중근 의사" 유해는 묘연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3·1운동을 주도해 일제에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외친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28일 18세의 나이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옛 이태원 공동묘지가 있던 서울 이태원부군당 공원에는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꽃다운 나이에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 열사의 유해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1920년 당시 유 열사는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묘비도 없이 묻혔다. 이어 일제는 군용기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태원 공동묘지를 중랑구 망우리공원으로 이전했다. 당시 유 열사의 무덤을 포함해 이름 없는 2만8000여개 분묘를 한꺼번에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가 유실됐다고 한다. 

옛 이태원 공동묘지가 있던 이태원부군당 공원에는 현재 유 열사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내가 죽은 뒤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한국에서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으로 압송돼 1910년 3월26일 순국했다.
 
순국하는 그날까지 독립된 조국에서 잠들기를 기원했던 안 의사의 유지는 국권이 회복된 뒤에도 실현되지 못했고,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그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 전경(왼쪽).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마련된 좌상.


안 의사가 매장됐을 것으로 에상되는 뤼순 감옥 일대에는 이미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안 의사가 묻혔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리는 표식조차 없는 상태다. 

일반적으로 사형수의 시신은 원통형으로 생긴 통관에 담기지만 안 의사는 특별히 누운 채로 잠들 수 있는 침관을 통해 매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기만 하다.

◆ 애국지사 묘역, 관리가 미비하거나 뿔뿔이 흩어져

대전 국립현충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제 헌병대 정보원으로 50여건의 항일조직 색출에 앞장섰고, 백범 김구의 암살 배후로 지목돼 민족 반역자로 꼽히는 인물 김창룡. 대전 현충원 그의 묘비에는 해방 후 특무부대장으로 일했고, 기무사령부 주관으로 현충원에 이장됐다는 이력이 적혀 있다.
 
실제로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는 1992년 "특무대장 김창룡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고 밝히기기도 했다. 

김창룡의 묘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곳에는 김구의 어머니와 맏아들이 나란히 안장된 채 '불편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애국지사 신규식의 묘에서 바라본 '장군 제2묘역'(빨강원)


문재인 대통령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을 찾아 참배했다. 효창공원은 김창룡이 암살을 지시한 백범 김구를 비롯한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등 임정 주요 인사들이 묻혀있다.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묘역도 조성돼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있다.

효창공원은 문화재 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사적 공원'이자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근린공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담당 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청은 사적 330호인 효창공원을 근린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애국선열의 묘소임에도 '공원' 성격이 강해 국가적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친일파 이응준의 묘에서는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빨강원)이 보인다.


독립유공자와 애국지사의 묘소 절반 이상이 현재 소재를 알 수 없거나 실태 파악이 안 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준과 손병희, 이시영, 김창숙, 신익희, 여운형 등의 묘소도 북한산 자락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는 국립묘지 현충원에 잠들어 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애국 선열은 국가적 예우를 받지 못한 채 흩어져 있거나 구청에서 관리 하는 근린공원에 방치된 실정이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세워진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현재로서는 국립 현충원에 조성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민단체 나서서 지속적으로 "서훈을 취소하고 묘를 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거나 강제 이장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은 지금까지 모두 5번 발의됐지만, 통과된 적은 없다.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장군 1묘역' 양지바른 곳에 친일파 신응균의 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법의 미비로 국가보훈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법을 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방 실장은 "친일 인물 묘비 옆에 일제 강점기 때 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인정한 친일 인사가 안장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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