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손님 역차별.."명동 안 갈래요"

차창희 2019. 3. 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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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1번지 명동 가보니
외국인만 최대 50% 할인
한국 손님엔 불친절·홀대
북적이는 명동에서는 쇼핑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상점들도 `외국인만 50% 할인` 정책을 펼치며 외국인 고객 모시기에 적극적이다. [김호영 기자]
"저기요…저기요!" 명동에 위치한 한 대형 의류매장 내 한국인 손님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항상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정작 한국인 손님들은 찬밥 신세다. 입장부터 퇴장할 때까지 그들을 신경 쓰는 점원은 아무도 없었다. "환잉광린(어서 오세요)." 반면에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손님이 입장하면 점원들은 빠르게 다가가 밀착 케어했다. 제품을 많이 구입하면 추가 할인까지 가능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매장 한편에선 중국인 BJ가 인터넷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친절히 상품을 안내해 주는 전담 직원까지 붙어 있었다.

한국 대표 관광지인 명동, 그곳에서 정작 자국민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매장들이 노골적으로 한국 손님을 차별 대우하기 때문이다.

명동의 일평균 유동인구는 13만5716명(2017년 12월 기준)에 달한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7년 서울 방문 외래 관광객 여행실태'에 따르면 서울을 방문한 중국·일본 등 아시아계 관광객은 가장 만족한 관광 장소로 명동을 꼽았다. 특히 30.9%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곳은 바로 명동 '큰손'인 중국인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동 매장들은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할인 제공, 서비스 질 향상 등 다양한 판촉전략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혜택이 철저히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서만 행해져 '한국인 역차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 할인·이벤트는 외국인만

명동 소재 일부 매장은 노골적으로 외국인 대상 할인이나 사은품 증정 혜택 안내문을 매장 정문에 부착해 놓고 있다. 해당 안내문은 한국인은 알 수 없게끔 외국어로만 작성돼 있다. 호객행위를 하는 매장 직원들은 외국인 관광객만을 바라보고, 웃고, 그들의 손을 잡고 매장 안으로 이끈다.

한 화장품 매장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4+1, 3+1 등 사은품 증정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다른 매장은 'Tourist Day'라며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최대 50%까지 할인해 줬다. 뷰티 업체들도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면 10~30% 할인 혜택을 줬다. 심지어 일부 유명 의류 브랜드 업체들은 한국어로도 '외국인 대상 할인' 문구를 명시하고 있었다.

정작 매장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은 외국인에게만 이러한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명동 주변에서 거주 중인 A씨(50)는 "이 근처에서만 몇 년을 살았는데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홍 모씨(30)는 "보편적 혜택이 아니라 명동에서만 외국인에게 특별한 혜택을 준다면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외국인 우대 행태는 업체 고유의 판매전략이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 업체로서는 한국인보다 큰 매출을 안겨주는 외국인 관광객을 우대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매장마다 마케팅의 일환으로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며 "점주가 손익을 안고 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직영 브랜드가 허용하는 선에서 충분히 판촉활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한국인 손님 신경도 안 써"

가격 차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나 친절도 측면에서도 차별이 있다.

특히 화장품 매장에서의 서비스 차별에 불만을 토로하는 여성 고객이 많다. 매장을 가득 메운 외국인 관광객을 신경 쓰느라 정작 한국인 손님을 홀대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한 모씨(25)는 "계산하기 위해 먼저 줄을 섰는데 외국인을 우선 결제해 주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며 "내가 줄을 잘못 선 것인가 싶었는데 다른 한국인 손님에게도 그러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서울로 여행 온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최근 명동 내 한 불고기 식당을 방문한 김 모씨(54)는 불쾌한 일을 겪었다. 식당에 들어갔으나 자리를 안내해 주는 점원이 없었고, 주문하려고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반면에 자리를 가득 메운 중국인 단체 손님에게는 점원들이 지나치게 친절했다는 것. 김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차별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며 "친구에게 명동을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조금 민망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홀대에 줄어드는 한국 손님

노골적인 차별 대우에 명동 방문을 꺼리는 한국인이 많아지고 있다. 명동 근처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김 모씨(27)도 "화장품 쇼핑을 할 때마다 호객이 외국인한테만 붙는다"며 "화장품 가게가 명동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가깝다고 명동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장병권 호원대 호텔경영학부 교수는 "일반화할 순 없지만 외국인을 타깃으로 하는 명동 내 일부 매장이 한국인을 홀대하고 있다는 건 많이들 아는 사실"이라며 "세계 어떤 나라를 가도 자국민을 무시하고 외국인만 우대하는 매장은 없다는 점에서 한국인을 차별하는 행태는 도의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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