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비출산, 이젠 '탈연애'..'페미' 칼럼니스트가 탈연애 선언한 이유 [아! 젠더]

글 이보라 기자 · 영상 유명종 PD 2019. 3. 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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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페미니즘 칼럼니스트 도우리씨가 최근 경향신문 사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런 연애는 그만두겠습니다.”

여기 ‘탈연애’를 선언한 여성이 있습니다. 페미니즘 칼럼니스트 도우리씨입니다. “비혼·비출산에 이어 이제는 탈연애를 할 때가 왔다”고 도씨는 주장합니다. 탈연애 선언은 연애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기존에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상 연애’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애 방식을 인정하자는 얘기인데요. 이성간 연애, 일대일로 서로를 소유하고 독점하는 연애, 정해진 성별 역할을 수행하는 연애 등 정상이라 불려온 연애 각본을 찢어버리고 자신만의 연애를 하자는 것이죠.

도씨는 세계여성의 날인 3월8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탈연애 선언 퍼포먼스를 벌입니다. 정상 연애를 강요 받으며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돼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섭니다. 도씨가 말하는 정상 연애란 무엇일까요. 누구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연애란 어떤 것이 돼야 할까요. 경향신문이 최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도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도우리라고 합니다. 나이를 밝히는 문화를 안 좋아해서 30대라는 것만 말씀드려요.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된 지는 1년째인데요. 미디어스라는 매체에서 페미니즘 칼럼 ‘도우리의 미러볼’을 1년째 연재 중이고 여성주의 웹진 쪽에서 ‘탈연애 선언’이라는 칼럼을 연재 중입니다. 쓴 글은 인디밴드 검정치마의 노래와 작가 이외수가 쓴 시의 여성혐오 논란 등이 있어요. 페미니즘이 제 삶을 설명하고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메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갖고 주로 이런 글을 썼어요.”

-비혼·비출산과 달리 탈연애는 아직 공론화된 게 아닙니다. 연애는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개인의 선택에 머무르지 않고 공론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애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운동이든 간에 ‘뭐 뭐 하자’고 고정하는 게 굉장히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연애 역시 사회가 말하는 정상 연애가 있고 이걸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기준에) 벗어나면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피해를 받게 되죠. 정상 연애에서 벗어나는 측면에서 탈연애를 말한 거예요. 연애가 저 혼자만의 일, 즉 개인이 자존감을 높이고 꾸밈노동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연애 전체의 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공론화를 결심했어요.”

-비혼·비출산에 대해서도 동의하나요.

“출산이나 결혼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결혼과 출산을 꼭 해야 한다는, 소위 말해 4인 핵가족 정상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흐름으로 비혼과 비출산을 지지해요. 결혼을 안 하고 싶은데 자꾸 부모님이 명절 때 그런 이야기를 하고 큰 불편감을 느끼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는 것에 문제의식이 커서 그런 담론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이런 의미에서 비혼과 비출산과 많이 연결된 연애에서도 벗어나보자는 말이에요.”

-탈연애는 정상 연애를 벗어나겠다는 의미라고 했는데요. 정상 연애와 비정상 연애란 무엇인가요.

“‘저거 너무 이상해’ 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비정상 연애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다 성격, 취향, 나이, 사정이 달라 각자마다 다양하게 연애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랑 가장 맞는 선택인데 ‘너 이상해’라고 누군가 말하고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참견할 때 정상 연애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것이 되죠. 30대가 다 되도록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그거 자체가 정상 연애 잣대에서 바라본 이상한 게 돼요. 연애하게 됐는데 상대방이 동성이면 그거대로 이상해하고, 여성이 10살 이상 차이나는 연하 남성을 만난다면 이상하다고 해요. 진도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고, 기념일도 이벤트로 챙겨줘야 하고 여자는 도시락을 싸가야 하고 동거해선 안 되고. 이런 것들에서 벗어났을 때 손가락질을 하는데 이런 것들이 정상연애가 규정한 비정상 연애라고 봐요.”

-정상 연애로 겪는 피해나 문제가 있었나요.

“여자로서 ‘조신해야 한다’ ‘청순하되 섹시해야 한다’ ‘곰 같기도 여우 같기도 해야 한다’ 등 하나도 어려운데 가운데 줄타기를 해야 하는 명제에 맞추려 굉장히 노력했어요. 남자를 찾을 때는 너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애교도 안 좋아하는데 ‘애교 부려라’, 머리 짧은 것 좋아하는데 ‘머리를 길러보라’ ‘주변 남자 지인을 정리해라’ ‘너 옷이 야한 거 같다’ 등 얘기를 들으면서 연애할 때 답답하고 힘든 게 많았어요. 제가 호감이 가는 남성이 있었는데 여자가 먼저 다가가면 안 되는 문화가 있고요. 그렇다보니 저를 자제하고 저를 매력적인 대상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저를 그 사람 앞에서 꾸민다거나 조신하되 어느 정도 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식으로 연출한다던가, 성관계에서도 신음 연기 같은 것을 하느라 저답지 못하게 연기를 해왔고 힘들었죠. 연애 역할극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줘야 하고 여자는 예쁘게 꾸미고 애교를 부려야 한다는 것도 있어요. 관계라는 게 결국 자유롭고 재밌으려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깊은 친밀감을 느끼려고 하는 건데요. 정해진 루트가 있고 정상연애 각본이 존재하며 여기에서 어긋나면 이상한 취급을 받습니다. 서로 좋은데 동거하면 또 이상하게 생각해요. 상대가 동성이면 그거대로 문제로 봅니다. 또 연애는 소유되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해요. 데이트 폭력, 이별 살인은 여성을 내 소유물로 보는 경향이 커서 그런 것인데요. 상대가 서로 주체가 되면 관계를 끊을 때 존중해주거나 유혹하거나 그럴 텐데 폭력을 가하고 스토킹하고 그런 것이죠. 이어지는 게 이성 지인에 대한 연락을 구속한다던지 치마 길이를 구속하는 것도 있어요.”

-남성도 정상 연애로 겪는 문제가 있지 않나요.

“남성도 역시 관계를 친밀하게 맺기보다 관계에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남성 역할을 해야 하고 여성을 좀 더 도와줘야 한다는 것인데요. 여성이 더 보호자 역할을 하면 자신이 남성성을 잃은 거 같아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껴요. 서로 사정이 달라 도움받을 수 있는데 남성 역할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고민하는 남성도 있어요. 또 남성은 예쁜 여자를 얻는 걸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남성 지인들은 자신이 성적, 감정적으로 끌리는 여성이 있지만 그와 사귀면 친구들에게 ‘너 그 여자 왜 만나냐’는 말을 듣기 싫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을 들었어요. 정상 연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서로를 친밀하게 평등하게 인간대 인간의 만남을 하는 것을 많이 방해하는 것 같아요. 연애에서 어느 정도 정해진 스트레오 타입, 연애 데이트 각본의 문제라고 봤어요.”

-이런 문제가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자는 (연애를 할 때)남자의 능력, 재력을 외모보다 더 신경쓰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봐요. 이는 가부장제 문제라 생각해요. 여자는 사회 경제적인 자본으로 얻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에요. 임금차별이 있고 최고 주요 요직은 남성이 대다수 차지하고 있어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도 있고요. ‘여자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면 뭐하냐. 예쁘면 고시3관왕을 딴다’는 말도 있죠. 이처럼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자본(획득)이 협소하니까 여자가 남자 능력을 많이 보는 거 같아요. 남자들은 이런 것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니까 여성 성적 매력을 최고로 꼽아요. 이런 현상들이 가부장제와 남녀차별과 연관이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남성에게 선택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고 자신의 능력이나 성격적 장점보다는 성적 매력을 부각하게 되는 게 연관이 되는 게 보였어요. 페미니스트들도 연애하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 연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다같이 바꿔야할 문제라 생각하게 됐죠.”

페미니즘 칼럼니스트 도우리씨가 최근 경향신문 사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페미니스트가 연애하는 건 왜 더 힘들다고 보나요.

“연애하다가 페미니즘을 자각해 ‘이런 게 문제가 있어’라고 하면 ‘너도 메갈인 거니?’라고 하던가, 남녀 임금차별이나 성폭력 등을 말하면 의견에서 부딪히기 시작해요. 그동안 여성이 꾸밈노동하던 것에서 벗어나 ‘숏커트하고 화장 안 해야지’‘내가 편한 옷 입어야지’ 하면 남자 쪽에서 ‘꼭 그렇게 해야 돼?’ 라든가 갈등이 생기는 것인데요. 연애라는 게 평등한 주체끼리 만남일 때 가장 서로 친밀감을 길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재 남녀가 평등한 건 아니잖아요. 서 있는 위치가 다르고 성적으로 여성이 좀 더 위험한 상황인 건 맞으니까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등한 관계맺기가 문제적일 수밖에 없어요. 많은 남자가 다 그러지 않겠지만 여성에게는 성적 매력이 전부이고 그런 여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보는 남성들은 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연애하고 있나요. 하고 있다면 어떤 연애하고 있나요. 안 한다면 앞으로 어떤 연애를 하고 싶나요.

“지금은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요.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앱)도 우선 설치했고요.(웃음) 제가 만약 연애를 하게 된다면 연애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저게 연애야?’ 싶은 정도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누가 단둘이 술을 마시든지 존중해준다거나. 제게 친한 이성 친구들이 있어요. 예전에는 이들과 친밀한 감정을 자제했던 거 같아요. 연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요. 친구들은 오래 친밀한 관계를 쌓아온 것인데 이제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면서 연애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연인을) 만나다 보면 ‘또 다른 사람에게 성적으로 끌릴 수 있다. 내가 어떤 옷을 입든지 간섭하지 말아달라. 당신도 나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가질 수 있다. 끌림을 존중해주겠다’고(말하고 싶어요). 서로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감정 같은 것을 최대한 존중하는 연애를 해보고 싶어요. 안 해봐서 굉장히 힘들 것 같아요. 질투라는 게 어느 정도 크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그런 쪽으로 시도해보려고 해요.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아직 경험은 없지만 동성인 여성도 한번 만날 수 있을 거 같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있어요.”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에는 어떤 퍼포먼스를 할 계획인가요.

“퍼포먼스로 정상연애 공개처형식을 할 거예요. 그전에 선언문을 낭독하고요. 광화문광장에서 오가는 시민들에게 피켓을 나눠주고 피켓에 있는 문구를 같이 낭독해요. ‘1대1 소유 관계에서 벗어나자, 역할극 연애 벗어나자, 연애 각본에서 벗어나자, 이성애중심 연애에서 벗어나자’ 등이에요. 정상 연애 상징물인 하트를 크게 만들어 정상연애라고 적고 처형대에 달아 이를 활로 쏠지 칼로 자를지를 고민 중이에요.(웃음) 처형한 다음에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상징물에 색칠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연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서로가 각자 느낌과 자기다움에 많이 집중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이트 폭력을 당했는데도 못 벗어나는 이유는 ‘이건 아닌데’라는 감각을 잊게 됐기 때문이에요. 꾸미는 것에 있어서도 남녀가 서로 만나는 데 꾸밈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꾸밈에 시간을 쓰고 충분히 꾸몄는데도 자꾸 더 해야할 것 같고 부족한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면서 코르셋을 쓰게 되고, 원나잇도 해보고 싶은데 창녀 같은 인식이 찍혀서 연애를 못하게 될 것 같아 그런 감각을 닫아버린다던가(하지 말았으면 해요). 이런 걸 꼭 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씩 삐져나온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감정을 자꾸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들이 있어요. 이 느낌에 좀 더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사실 이런 게 모두 회피할 것들이 아니고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 어떤 억압을 받고 있는 건 아닐지, 자신의 고유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떤 연애를 해야 할까요.

“어떤 구체적인 걸 하나로 고정하면 폐해가 크다고 생각해요. 정상 연애라는 것도 고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죠. 정상 연애가 요구하는 연애 각본이 있는데 연애 각본이 아니라 각자가 작가가 돼서 자신만의 연애각본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어렵죠. 기존에 정해져 있는 걸 따라가면 편한 게 커요. 사랑받을 만한 남자 만나서 적당히 사랑 받고 또 그런 것에서 오는 즐거움과 편함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나다움과는 거리가 크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해 차별이 가해지죠. 각자가 이런 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 자신만의 연애 각본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자신의 감정에 많이 귀기울였으면 좋겠어요. 이상하다 싶은 것들에 대해.”

[이보라 기자의 '아! 젠더']

'아! 젠더'는 젠더 관련 아젠다나 화젯거리를 알게 됐다는 감탄사가 담긴 의미입니다. 편견없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만한 젠더 이슈를 전합니다.』

글 이보라 기자 · 영상 유명종 PD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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