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은, 베트남 국부 묘소 헌화..호찌민은 누구?

최종일 기자 2019. 3. 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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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베트남을 공식 친선 방문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마지막 일정으로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묘를 찾아 헌화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 전 주석과 평양과 하나이에서 세차례 만난 적이 있는 호찌민은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30년에는 중국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조직해 이끌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베트남으로 돌아가 항일 독립 전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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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김일성 전 주석과 평양과 하노이에서 세차례 회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겸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노동신문) 2019.3.2/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베트남을 공식 친선 방문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마지막 일정으로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묘를 찾아 헌화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 전 주석과 평양과 하나이에서 세차례 만난 적이 있는 호찌민은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호 아저씨'로 친근하게 불리며 오랫동안 존경을 받고 있는 호찌민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1890년 베트남 북중부 응에안 성 호앙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응우옌신꿍이며 호찌민이란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에 부친 밑에서 한자와 유학을 공부했고, 이후 프랑스 학교에 진학했지만 민족주의 사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호찌민은 성인이 된 뒤 1911년 프랑스 배에 요리사로 취직해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가 식민지 해방운동을 벌였다. 세계 제 1차 대전 종식을 위한 파리 평화협정에 베트남 대표로 참가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호치민은 공산주의가 베트남 독립에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고 프랑스 공산당 창당 멤버가 됐다. 이어 프랑스 식민지 인민연맹을 결성하고 기관지를 편집, 발행하기도 했다.

1923년에는 모스크바로 가서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익혔다. 1930년에는 중국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조직해 이끌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베트남으로 돌아가 항일 독립 전쟁을 벌였다.

전쟁이 끝난 뒤 1945년 9월 응우옌 왕조의 황제 바오다이를 폐위시키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자신은 정부 주석에 올랐다. 이후 프랑스와 독립 협상을 진행했지만 프랑스가 남부에 임시 정부를 설치하자 전쟁을 감행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최종 승리해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면서 북베트남의 최고 군사 지휘관으로서 전쟁에 임했지만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 그가 염원했던 베트남 통일은 사후 6년 만인 1975년 4월 말 성취됐다.

호찌민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중국의 유교문화와 민족주의, 실용주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자유주의적 사고를 결합한 것이다. 그의 사상은 개혁개방 조치인 '도이머이(쇄신)'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을 통치하는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찌민 사상을 행동지침과 이념의 기반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 경제 도입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점차 기능이 약화되면서 호찌민 사상이 공산당의 운영기반이 되고 있다.

호찌민은 생전에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시신은 방부 처리돼 거대한 묘에 전시됐다. 호찌민이 타계했을 때 유산으로는 옷 몇 벌과 낡은 구두가 전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하노이 바딘광장에 있는 호찌민 주석의 묘에 헌화하고 “국민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 호치민 주석님의 애민정신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외교 관계를 설립했다. 이후 1957년 7월 호찌민은 평양을, 1958년 11월과 1964년 11월 김일성(당시 내각 수상)은 당시 북베트남을 방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방문은 북한 지도자로선 55년만이다.

allday3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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