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렸던 사할린의 '칼바람'.."유해라도 찾고 싶다"

조희형 2019. 3. 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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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일제시대 사할린으로 끌려갔던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로 인해 운명이 바뀌어버린 그 후손들은 여전히 악몽같은 기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사위원회가 있었지만 4년 전 활동을 종료했고, 생존해 있는 피해자 규모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희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매주 화요일 청와대 앞 집회를 찾아가는 신윤순 할머니, 신 할머니의 아버지는 강제징용 피해잡니다.

[신윤순(75살)] "나 사할린 유족, 신윤순은 아버지 얼굴도 이 세상에 나와서 본 적이 없는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는 1943년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한 신 할머니, 유품이라곤 사할린에서 날아온 편지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신윤순(75살)] "할아버지를 붙잡아다 진짜 죽도록 매를 때렸어요. 그랬는데 10월에 이게 (징용통지서) 또 나온 거야. 이제는 도망가면 '우리 아버지가 죽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가시게 됐다고…)"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할머니는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를 들고 사할린으로 건너갔습니다.

수소문 끝에 한 벌목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인사기록부를 발견했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신윤순(75살)] "우리 아버지가 1919년생이니까. 100살인데 살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그럼 뼈라도 찾아달라. 내가 얘기하는 건 그거 거든요."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에는 강제 징용 피해자 가족 50세대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성기선/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러시아에서) 버스 타고 이렇게 가면..그런 김치 냄새 난다, 마늘 냄새 난다…"

꼭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부모님의 유언에 따라 지난 2014년 한국으로 건너온 김정희씨.

[김정희(73살)/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아버님 그 말씀하시더라고. 나중이라도 조선으로 가게 되면 꼭 자기 고향을 찾아가봐라."

일본군 비행장을 만드는 데 끌려가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입니다.

[김정희(73살)/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맞을 대로 맞아서 속에 안에 핏덩이가 생겨서..그 핏덩이가 곪아서 곪아서…(돌아가신 거예요)"

일제 시대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조선인 숫자는 3만 명 정도.

이 가운데 1945년 이전에 태어난 1세대 피해자는 약 3,500명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식 통계는 아닙니다.

강제징용피해자 실태를 조사했던 대일항쟁기피해조사위원회가 4년전 활동을 종료하면서 정부차원의 조사가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김정희(73살)/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위로금) 신청을 못하고 있잖아요. 우리도 피해자인데 생각하면 그렇죠..그거라도 좀 받아서 (러시아에 있는) 애들도 도와주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죠…"

국회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뒤늦게 위원회 활동을 재개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김동철 의원/바른미래당] "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다시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하자는 거죠. 지금은 현지에 있는 유족회라던가 일반 민간 기구들에 의해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타지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 정확한 기록이라도 찾아 달라는 게 이들의 바람입니다.

MBC뉴스 조희형입니다.

조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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