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일보

[기고] 일본의 고문헌들, 한 목소리로 "독도는 한국 땅"

대구한국일보 입력 2019. 03. 03. 00:40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지금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침략한 영토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문헌 속에는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증거는 단 한군데도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해의 섬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공임집(公任集)에 드러나 있다. 책에는 "신라 우루마도 사람이 이르렀다. 우루마도는 곧 芋陵島(울릉도)이다", “1108년 일본사 고려전(日本史 高麗傳)에 우릉도인(芋陵島人)이 이나바(因幡)에 표류하여 비용과 식량을 공급해주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등의 기록이 실려 있다. 또한 1425년(세종7) “우산(독도), 무릉 등처 안무사 김인우 일행 46명이 파견되었다가 36명이 익사하고 10명은 일본 이와미주(石見洲)에 표류되었다가 귀향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도 일본이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작은 암초로 된 무인고도(孤島) 독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일본의 오야, 무라카와 두 가문이 1620년부터 1693년 안용복사건이 발발하게 전까지 막부로부터 도해면허증을 받아서 격년제로 번갈아 울릉도에 70여 년간 도항하여 어패류, 인삼 등 섬의 산물을 수탈해갔다. 울릉도는 당시 1403년부터 쇄환정책으로 섬이 비어 있었다.

그 시대에는 일본도 쇄국상황이었기 때문에 막부가 도해허가증을 발급했다. 도해면허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때에 독도는 일본의 오키섬에서 157km, 울릉도에서 87km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국 울릉도의 속도로서 울릉도 도항의 이정표로 삼았다.

이 사실에 대해 1667년 돗토리번주(도지사격)의 명령으로 번사(공무원) 사이토 호센이 기술한 ‘은주시청합기’에 “일본의 서북경계는 오키섬이고, 그 서북지역에 울릉도(竹島)와 독도(松島)가 존재한다”라고 했다. 이들이 70여 년간 왕래하면서 울릉도는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죽도(竹島)”라고 했고, 길운을 상징하는 “송죽(松竹)”의 의미에서 독도는 송도(松島)라고 호칭했다.

1693년 부산 출신 어부 안용복이 몰래 울릉도에 도항하였는데, 이때 독도를 경유하여 울릉도에 들어와 있던 일본인들과 조우하였다.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라고 주장했고, 일본인들은 70여 년간 자신들의 소유처럼 도항해왔기 때문에 양자 간에 두 섬에 대한 영유권 시비가 생겼다.

이때에 안용복 일행이 수적으로 열세하여 일본에 납치되었다. 안용복 일행은 일본에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주장하여 막부로부터 조선영토임을 인정하는 서계(확인서)를 받았다. 대마도를 경유하여 귀환하는 과정에 대마도주가 서계를 빼앗고 울릉도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결국 일본의 막부와 조선 조정 사이에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발생하였다. 1695년 막부는 돗토리번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소유가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고, 더불어 안용복이 2차로 도일하여 영유권을 주장한 결과,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내리고 오키섬 이북지역으로 도해를 금지했다.

이런 사실은 1836년 하치에몽이라는 자가 불법으로 독도를 경유하여 울릉도에 도항했다가 발각되어 막부에 의해 사형을 당하고 이듬해 재차 도해금지령을 내렸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에도시대에 오키섬 이북 지역인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로서 일본의 도해가 금지된 구역이었다.

1868년 봉건국가였던 막부가 멸망하고 새롭게 성립된 중앙집권 국가인 메이지 정부도 1869년 조선국과의 국경을 명확히 하려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가 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밀탐하였다. 이때 “조선국과의 교제시말 내탐서”를 작성하여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이고, 독도는 조선의 문헌기록에 없다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보고했다. 그후 1877년 지적을 편찬하면서 1696년의 막부 도해금지령을 토대로 ‘태정관지령’에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다”라고 조선영토임을 명확히 했다.

그런데 일본이 1876년 조일수호조규를 강제한 이후 일본어민들의 조선 연안 출몰이 빈번해지면서 1903년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자가 독도에서 강치를 포획하다가 이를 독점하기 위해 1904년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알고 일본정부를 통해 조선정부에 섬의 대여원을 제출하려고 했다. 이때에 일본군함 니이타카호가 독도의 소속을 조사하여 울릉도에서 ‘독도(獨島)’라고 표기하는 조선영토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러일전쟁 중인 1905년 1월 내무 외무 농상무성의 주축으로 각료회의에서 무인도를 ‘죽도(竹島)’라는 명칭으로 편입시키기로 결정하고, 2월 22일 ‘시마네현고시 40호’로 대한제국영토인 독도를 강탈해갔다.

이 사실은 1906년 2월 시마네현 관리가 울릉도를 방문하여 간접적으로 전하여 알게 된 심흥택 군수가 “본군 소속 독도(獨島)가 일본에 강탈당했다”고 바로 중앙정부에 보고했고, 내부대신은 “1900년 칙령41호로 울도군을 설치”하여 “울릉전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는 법령을 시행하여 관할통치하고 있는 섬이라고 일제 통감부에 항의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36년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연합국최고사령관 명령서 SCAPIN 677호로 “제주도, 울릉도, 독도”를 관할 통치하는 국경선을 인정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독도는 러일전쟁 중에 일본이 몰래 불법적으로 강탈하려 한 적은 있었지만 유사 이래 일본 영토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